편의점에서 일하면서 새로운 부캐가 생겼다. 바로 이모, 동네이모다. 물론 스무살 때 처음 편의점 일을 하면서는 생각도 못 해 본 호칭이었다.
- 이모가 해 줄게.
30대 후반에 다시 편의점 일을 시작한 뒤 아이들에게 처음 그렇게 말했을 때는 무척 어색했다. 약간 닭살도 돋았다. 아이들이긴 하지만 잘 아는 사이도 아닌데 친한 척 하는 것 같고, 내가 어른이라고 우쭐대는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지금 일하는 점포로 옮긴 뒤로는 '이모'를 또 하나의 페르소나로 받아들이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점포는 아이들이 엄청나게 많이 온다. 주변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다 있고 주말로 내 근무시간이 바뀌기 전까지 일했던 오후 시간이 아이들 하교 시간과 학원 시간,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었으므로 내가 만나는 손님의 70~80퍼센트는 미성년자였다.
특히 오후 3시 반에서 4시 사이에는 학생들이 몰려 작지 않은 점포가 와글와글하다. 계산대부터 음료수가 진열된 냉장매대까지 쭉 계산 줄이 늘어선다. 아이들은 대부분 컵라면과 닭 튀김을 사간다. 최근에는 피자도 오븐에 구워 팔기 시작해 피자를 주문하는 아이도 있다. 겨울 간식이 들어오면 이 줄은 더 길어진다. 우리 점포는 팔 수 있는 모든 겨울 간식을 다 판다. 호빵과 군고구마는 기본이고 어묵, 물떡(부산에만 있는 시그니처 겨울 간식. 어묵처럼 가래떡을 꼬치에 끼워서 어묵 국물과 함께 판다)도 꽂아두기 무섭게 팔려나간다. 작년에는 팥 붕어빵과 슈크림 붕어빵까지 들어왔다.
아무튼, 그렇게 다양한 간식거리를 팔고 있는 나는 예전으로 치면 학교 앞 분식집 이모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거의 나를 '저기요'나 '저기'로 부르는데(간혹 조금 더 사회성이 발달한 학생들은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초등학생이나 미취학 아동들은 자연스럽게 이런 말을 건넨다.
- 이모, 이것 좀 찢어주세요.
- 이모, 병뚜껑 좀 따 주세요.
- 이모, 저 위에 있는 것 좀 꺼내 주세요.
- 이모! 쟤네들이 전자레인지에 사탕 넣고 돌려요!
어떤 아이는 나와의 친분을 이용해 자꾸 값을 깎으려 한다. "이모, 한 번만~!" 길고양이에게 줄 참치캔을 사려는데 돈이 없어 난감해하길래 "이번만이다. 소문내지 마" 하면서 내 돈으로 사 준 적이 있는데, 그 뒤로 그러는 것이다. "너 또 이럴 거야~"하면서 어깨를 잡아흔들면 "아이~"하면서 나를 폭 안는다. 그 온기에 괜히 뭉클해져서 정색까지는 못한다. 그랬더니 이제는 내가 진짜 이모인 것처럼 슬쩍슬쩍 반말을 한다. "존댓말 해야지~"라고 두어 번 으름장을 놓다가 아이가 빠진 앞니를 드러내며 웃고 이 얘기 저 얘기 붙이는 게 귀여워서 또 져주고 만다. 나에게도 지금 10살, 7살인 조카들이 있으니 이런 아이들을 보면 내 조카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진짜 이모다움을 뽐내는 나이가 됐다는 게 실감이 난다.
어떤 애들은 나를 뭐라고 부를지를 두고 아웅다웅한다.
- 저기요.
- 야, 사장님이라고 불러야지!
- 사장님 아니잖아!
- 그래도 알바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
- 사장님이 아닌데 왜 사장님이라고 불러!
듣다가 웃겨서 내가 정리해 줬다.
- 그냥 이모라고 불러.
그렇게 나는 이모 정체성을 확립했다. 넓지 않은 선택지 때문에 마지못해 받아들인 '이모'라는 호칭은 생각보다 편리했다. 친족 호칭을 쓰게 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색함을 누그러뜨리고 갈등을 피하는 데에 그만한 호칭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남남 아니잖아'라는 은근한 애살이 주는 효과는 달다. 가족주의와 우리주의의 단맛.
듣자마자 좋아하게 된 호칭도 있다. 바로 '이모야'다. '이모'에 글자 하나가 더 붙었을 뿐이지만 쓰는 사람이 전혀 다르다. 이 호칭은 노년의 여자 손님들에게서 들을 수 있다. 손주를 데리고 와서 계산대에 아이스크림을 올려놓고 하시는 말씀.
- 이모야, 이거 하나 주라.
점포에 들어오자마자 대뜸 던지는 말씀.
- 이모야, 여기 옥수수 찔 때 넣는 당원 어딨노?
왜일까? 나는 그 말이 무척 정겹게 들린다. 나는 그분의 이모가 될 수 없고 둘 중에 이모가 있다면 내가 아니라 그분일 것이며 내 이름이 '이모'도 아닌데 그 말이 좋다. 손아랫사람으로 부르는 말인데도 기분 나쁘지가 않다. "딸아" 했다면 무척 부담스러웠겠지만 "이모야"는 나와의 충분한 거리두기가 포함된 말이다. 나와 직접적으로 얽히지 않은 제3자로서 나를 지칭하면서도 호격 조사 '-야'를 붙여서 친근함을 놓치지 않은 호칭이다.
'이모님'이라는 호칭은 내게 정반대의 느낌이다. 신기하게도 '-님'을 붙여서 높여 부르는 말인데 낮아지는 기분이 든다. 나를 이렇게 부르는 손님은 딱 한 명이다. 나와 비슷하게 4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그 여성이 처음 나를 그렇게 불렀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모님이라고 불리다니. 게다가 동년배에게 말이다. 아무래도 그 말은 보통 자신의 어머니뻘 되는 여성에게 쓰는 말이지 않나.
그건 그렇고 이상했다. 왜 낮아지는 기분이 들까. 내가 손님으로서 가게에 가서도 노년의 여성 직원을 그렇게 부른 적이 있는데, 상대를 높이려는 마음이었지 낮추려는 마음은 결코 아니었다. 나는 그게 부적절한 쓰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나를 부를 때의 말투 때문이기도 하다는 걸 알았다. 무성의하게 툭 던지는 "이모님"은 그에게 입버릇인 것처럼 보였다. 그의 머릿속에서 '이모님'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집에 가사도움 서비스를 해주는 분이 계셔서 습관이 든 게 아닐까 상상해봤다. 그렇다 하더라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을 아래로 보는 느낌이 묻어나는 것을 무시하기 어려웠다.
'이모' 정체성에 젖어들어버리긴 했지만, 사실 나는 호칭이 어정쩡한 상대에게 친족 호칭 붙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길을 지날 때 누군가 나를 보자마자 "어머니!"라고 부른 적이 있다. 아동도서를 판촉하는 여성이었다. 내가 그 책을 읽을 자녀를 둘 만한 나이이긴 하다. 하지만 '아가씨'라는 말도 아직 종종 듣고 어찌어찌 '이모'에 적응해 가는 판국에 훅 들어온 '어머니'는 당황스럽다. 게다가 저 확신에 찬 음성이라니. 청춘예찬 사회에 푹 절여진 나는 '그만큼 내가 나이들어 보이는 걸까' 하는 자기검열 버튼이 눌렸다.
동시에 내 인생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무시하는 호칭에기습을 당한 기분이었다. 내 나이쯤 되면 마치 생리를 하듯 저절로 출산을 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한마디 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그가 느끼고 있었을 실적의 압박과 부족한 그의 상상력을 고려해 보며 자리를 떠났다.
또 한 번은 구청 주최로 태권도장에서 호신술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참여했다.
- 어머니는 이쪽에 서시구요.
태권도 사범의 말을 듣고 처음에는 내 앞에 있는 60대 여자분에게 하는 말인 줄 알았다. 나? 나 말한 거야? 나는 티 안 나게 그분을 째려보았다. 그러다가 이렇게 생각하고 털어버렸다. 그래, 여기 오는 내 나이대 여자는 다들 초등학생들 학부모일 테니까, 입에 붙어서 그러겠지.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어머니'는 여러 뜻 중 '자기의 어머니와 나이가 비슷한 여자를 친근하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는 뜻을, '아버지'는 '자기의 아버지와 나이가 비슷한 남자를 친근하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니 만일 나를 '어머니'라 부른 분들이 내 자식뻘이었다면 나를 그렇게 부를 수도 있지만, 그분들은 나와 비슷한 연배였기 때문에 그것은 그저 무례한 일이었다. 상대방이 가진 삶의 맥락과 다양성을 미리 잘라버리고 정상가족주의에 상대를 끼워맞추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나이든 여성이 모두 어머니는 아니다. 그 말을 듣는 상대가 비혼주의라면 듣고 기분이 나쁘기야 하겠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만일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못 가진 사람이라면, 가족을 이루고 싶었는데 아픈 사연으로 이루지 못한 사람이라면 무심코 뱉은 그 세 글자만으로 상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상대가 노년일 때, 왜 우리는 그가 결혼하지 않기를 선택한 사람이라 상상하지 못할까. 왜 그가 자발적으로 혹은 병이나 장애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레즈비언이나 게이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아무리 대다수가 정상가족을 이룬 사람이라고 해도, 사람의 삶이 폭포처럼 한 방향으로만 쏟아지는 게 아님을 모르지 않을 텐데.
정상가족주의에 기대어 아이들에게 '이모'로서의 친근감을 어필하고 있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모순이긴 하다. 하지만 처음에 이모라는 말에 거부감이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 꼭 상대와 나를 혈연으로 묶어야만 하는 건가, 다른 말은 없는 건가 의문이 들었다.
그럼 '아줌마'라는 말은 어떨까?
- 아줌마가 해 줄게.
이것도 나쁘지는 않다. 사전에서 '아줌마'는 "‘아주머니’를 친근하게 또는 낮추어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고, '아주머니'는 '남남끼리에서 성인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다.
그런데 '아줌마'라는 말에 나는 살짝 트라우마가 있다.
서른일곱이던 해의 어느 날 편의점 출근길에 한 남자와 실랑이를 하게 된 적이 있다. 한여름 한낮이었던 그때 나는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선글라스와 팔토시를 끼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채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평소처럼 길을 달리는데 고등학생쯤 되어보이는 남자아이가 나를 보지 못하고 뒤로 성큼성큼 물러나는 바람에 내가 휙 떠밀려 가드레일에 부딪쳤다. 당황스러움을 추스를 새도 없이 뒤에서 고함이 날아왔다.
- 아줌마!!!
다칠 뻔한 건 나였음에도 그 애의 아버지인 듯한 남자는 아이가 내 자전거에 부딪쳤다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 말에 담긴 경멸이 나를 강타했다.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때리듯이 '아줌마'라는 말을 던졌을 때 그 뜻은 '사리분별 못하고 민폐를 끼치는 무식하게 나이든 여자'라는 것을. 그게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아줌마라는 말이었다. 그는 내게 사과를 하라고 했고, 하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다. 누가 잘하고 잘못하고를 떠나 안 그래도 지각 위험에 놓여 있던 나는 상황을 빨리 마무리하기 위해서 사과를 했다. 그런데 내 입장의 이야기를 덧붙여 말하자 그는 사과가 진정성이 없다며 다시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했다. 나는 굴욕적인 기분을 억누르며 다시 사과했다. 이렇게 서로 소리를 지르며 싸우다 어찌어찌 상황은 종결되었지만 그는 뒤돌아가면서도 경멸 섞인 눈으로 나를 흘겨보았고, 그의 태도에 가득했던 경멸을 나는 오래도록 기억했다.
나를 향한 그의 시선에는 우리사회에서 나이든 여성을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이 투영되어 있었다. 대체로 남성은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위치가 공고해진다는 인식이 있지만, 여성은 나이 들어갈수록 입지가 낮아진다. 특히 노년의 여성, '할머니'는 계급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에 있다.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이 주요하게 요구받는 매력자원이 다르며, 여성에게 요구되는 매력자원 중 하나가 외적인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최하위 계급으로서의 대우를 피하기 위해서는 부나 사회적 지위, 명예를 갖추어야 한다. 젊지 않고, 아름답지 않고, 배움이 많지 않고, 부유하지 않은 여성은 '사장님'이나 '선생님'으로 불리지 않는다. 그는 '아줌마'이거나 '할머니'일 뿐이다. 그 호칭이 결코 본래부터 나쁜 뜻이 아님에도 점점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이 되고 멸칭에 가까워져가는 것은, 말이 쓰이는 맥락과 말에 담긴 감정이 부정적일 때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편의점 손님이 '노룩패스'를 하듯 무감정하게 던진 "이모님"에서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지워지는 느낌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중노년의 여성들을 더욱 사랑하고 존경한다. 사회의 악조건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삶을 일구고 주변을 살뜰히 돌보며 사회의 뼈대가 되어온 이들을. 그들이 사투리 리듬을 넣어 연주하듯 부르는 "이모야"에서 친근감과 연대감을 느끼는 데는 그런 연유가 있다. 내가 싫어하는 친족 호칭이지만, 누군가의 이모, 어머니, 아줌마, 할머니로서만 대우받으며 살아왔을 그들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말이라서.
나는 편의점에서 그녀들을 기다린다. 한 번 더 도와드리고 싶다. 한 번 더 웃어드리고 싶다. 고단함과 해맑음이 뒤섞인 그분들의 얼굴을 보면서 속으로 가만히 읊조린다. 당신의 삶을 모르지만 내 삶 속에 당신의 삶이 겹쳐 있음을 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