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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보살과 민바람 Oct 16. 2024

초면에, 내가 사랑하는 얼굴들

편의점 일의 은근한 매력

'편의점'이라고 하면 늘 똑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곳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편의점에서도 사계절은 뚜렷하게 흐른다. 이전에 일했던 점포는 더욱 그랬다. 점포 앞에 벚나무 가로수가 많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벚꽃철이 되면 문이 열릴 때마다 꽃잎이 날려 들어왔다. 돌개바람에 몰아쳐 들어오는 꽃잎을 보는 것이나 바닥에 쌓인 꽃잎을 쓸어내는 것은 나름대로 낭만적인 일이었다.


 그 점포가 위치한 곳은 심한 바람골이기만 한 게 아니라 바닷가이기도 해서, 장마철과 한여름 태풍에는 마치 머리채를 쥐고 흔들듯 문이 흔들렸다. 결국 문이 내려앉아 밖에 나가지 못한 적도 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점포 밖에 쌓아놓은 상품들을 안으로 들이고 문앞에 모래주머니 쌓는 일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늦여름. 그때부터는 냉장칸 청소가 내 몫이었다.


 불빛을 따라 냉장칸에 들어가서 고이 생을 마감하는 크고 작은 날벌레들을 치우며 왜 나오질 못했니, 왜 때를 놓친 거니, 묻곤 했다. 그들이 춥다고 느꼈을 땐 이미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인가, 그렇다면 그건 인생이랑도 비슷한 게 아닌가 따위의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다가, 가을이 깊어지면 날려들어오는 낙엽을 쓸어내며 속으로 무덤덤하게 읊조렸다. 올해도 벌써 다 갔네.


 점포에 있는 게 제일 좋아지는 계절은 여름이다. 이때는 냉장제품이 많이 나가기 때문에 워크인 냉장고에 들어가서 물건을 채울 일도 많아진다. 냉장고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 있을 수 있다니, 생각해 보면 어릴 적에 꿈만 꾸던 피서법의 현실화다. 돈도 벌고 피서도 하는 원 플러스 원 상품 같은 아르바이트. 출근이나 퇴근시간이 한낮이면 땀을 흘릴 수밖에 없지만, 단 20분을 이동해서 예닐곱 시간 동안 전기세 걱정 없이 시원한 시간을 보내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꿀이다. 손님들이 "어후~ 더워"하면서 벌개진 얼굴로 들어왔다가 공감에서 멀어져 있는 내 말간 얼굴을 보고서 "여기 계시니까 안 덥죠?"라며 얄미움과 부러움을 담아 묻기도 한다.


 지금 일하는 점포에서 가장 강렬한 계절은 겨울이다. 앞선 글에서 우리 점포가 겨울에 온갖 길거리 간식을 다 취급한다고 썼는데, 그래서 겨울에는 제일 정신없으면서도 신나게 일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간식을 다 파는 시기에는, 계산을 하다가 손님 줄을 끊고 매대에서 빠져나가 빨리 꺼내라고 알람이 울리는 오븐에서 군고구마를 꺼내고 대신 붕어빵을 넣고 다시 달려와서 계산을 하다가 택배 기계를 열어 용지를 갈고 다시 뛰어와 튀김기에서 튀김을 꺼내고 기다린 손님에게 사과를 한 뒤 계산을 하다가 증정품을 찾아주러 워크인으로 달려가면서 천수관음처럼 일한다.


 이 와중에 축지법을 써서 시식대로 가 쓰레기와 흘린 음식을 정리하고 뜨거운 물을 받아다 어묵통에 계속 채우고 사장님께서 상세히 적어 붙여두신 '컵에 어묵 담는 법'을 준수하지 않아 어묵통 주변에 국물을 뚝뚝 흘리거나,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먹어 삼각김밥 밥알이나 튀김부스러기를 여기저기 흘리는 아이들, 자리가 없다고 아이스크림 냉장고 위에 컵라면을 올려놓고 먹는 아이들이 있으면 빠르게 다가가서 제지하고 치워야 한다.


 바빠서 힘들기도 하지만 오히려 기력이 솟기도 한다. 이 다양한 일을 쉴새없이 쳐내는 것에서 오는 재미와 신명이 있다. 길게 늘어선 손님 줄을 줄여나가다 보면 익을 대로 익은 손놀림에 스스로 으쓱해지면서 내가 정말 유능한 사람인 듯한 기분이 든다.


 어느 계절보다 사람 냄새도 많이 느낀다. 가게 안을 채운 군고구마 냄새에 홀려 주문을 하려다 다 굽기까지 한참 남았다고 하면 어린애처럼 실망하는 손님들 모습이 귀엽다. 어묵을 포장해 가면서 어묵이 진짜 맛있더라고, 주변에 어묵 파는 데가 없었는데 생겨서 좋다며 신나하는 모습이나 시식대에 앉아 언 몸을 어묵 국물로 녹이는 모습, 붕어빵이 막 나왔을 때 사가는 손님에게 딱 좋을 때 오셨다고 얘기하면 해맑게 웃는 모습 같은 것들이 일하는 몸놀림에 흥을 더한다.


 어쩌면 편의점은 늘 비슷해 보여도 시간의 흐름이 가장 잘 보이는 곳 중 하나가 아닐까. 5월이 되면 꽃집처럼 카네이션 바구니들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채운다. 2월과 3월에는 점포 앞에 큰 매대를 추가로 설치해서 초콜릿과 사탕 바구니들을 잔뜩 늘어놓는다. 스무살 때는 내가 직접 포장해서 사탕과 초콜릿 바구니를 만들어야 했고 이렇게 만든 것들을 바깥 매대에서 호객을 하면서 팔았다. 지금은 상품이 전부 각양각색으로 포장되어 나오고 호객을 할 필요도 없어서 참 살기 편해졌다는 생각을 하다가, 공장에서 이걸 포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려나 궁금해지기도 한다.


 10월쯤 되면 슬슬 삐삐로 상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해서 11월에는 엄청난 삐삐로 물결을 볼 수 있다. 지금 일하는 점포에서는 몇 백 개나 되는 삐삐로 상자를 입고한다. 자본주의 상술의 힘에 새삼 기가 눌린다. 가래떡데이를 아무리 외쳐도 삐삐로의 아성은 무너지지 않나 보다. 아무래도 통통한 가래떡보다 삐삐 마른 삐삐로가 11월 11일에 더 어울리는 게 문제일까. 언젠가 편의점에서 여러 가지 맛의 가래떡을 색색깔로 포장해서 팔 일도 생길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삐삐로가 차지하는 매대 칸은 점차 줄어들고, 크리스마스를 맞아 와인 할인 행사 포스터가 붙는다.


 진하게 풍겨오는 자본주의 상술의 냄새가 거북하기는 하지만, 아이들 나눠준다며 삐삐로를 잔뜩 사가는 학원선생님이나 선생님 드릴 거라며 상기된 얼굴로 초콜릿과 커피를 계산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한 가지 사실이 떠오른다. 자본주의의 상술도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어서 성공하는 거라는 사실. 사람들은 의미란 게 정해져 있지 않은 삶을 무언가로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본질이 공허한 삶을 가장 따뜻하게 채워주는 의미는 바로 사람 사이의 관계니까.


 편의점에서는 관계를 향한 갈망이 오고가는 것이 정말 잘 보인다. 선물할 음료수 상자 여러 개를 두고 뭐가 나을지 오래 고민하는 아주머니에게서도, 어린이집 하원을 같이 시키는 길에 서로 카드를 들이밀며 "아이, 저번에 사주셨잖아요"라고 조심스레 아웅다웅하는 아이 엄마들의 마음에서도 나는 갈망을 읽는다. 그게 편의점 일이 주는 소소한 재미 중 하나다.




 내가 편의점에 오는 사람들을 가장 사랑하는 때는 바로 명절이다. 오랜만에 손주를 만나 손을 잡고 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거면 돼?" 조카에게 츤데레처럼 굴며 한턱 쏘는 삼촌과 이모/고모들, 서로 닮은 얼굴들이 농담잔치를 벌이며 와글와글 들어와 냉장고 술칸을 털어가는 것도 보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내가 명절에 정말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얼굴은 혼자 오는 얼굴들이다. 명절에도 평소와 다름 없이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사가는 아파트 보안 요원, 비옷을 입고 헬멧을 쓴 채 담배와 에너지 드링크를 사가는 배달 기사, 근처에서 작업을 하다가 우유와 빵을 사가는 정비 용역이나 청소 용역, 재택근무를 하는 듯 '추석 차례상 도시락'과 소주를 사가는 남자얼굴. 그들의 무감하고 지친 듯한 얼굴.


 남편도 시댁도 없는 '정상 서포터'(작가 이반지하가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에서 소개한 개념. 구정이나 추석처럼 정상가족들이 모여야 하는 명절에 그들이 부재한 자리를 채워주는 비정상들을 일컫는 말. 24시 편의점을 비롯한 다양한 서비스와 노동의 현장에서 그들을 대신해 자리를 지켜 국가와 사회가 한시라도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한다)로서 명절과 관계없이 편의점을 지키는 나는 그들에게 내적 친밀감이 든다. 할말도 없으면서 괜히 한마디라도 붙이고 싶다. 질문을 한다면 성심껏 답해주리라는 마음가짐으로, 내 딴에는 결연하지만 들킨다면 음침해 보일지 모르는 눈으로 그들을 지켜본다.


 명절이면 편의점은 평소보다 좀 특별한 공간이 되는 것 같다. 십 년 넘게 마트에서 일했던 나의 전 동거인은 타지에서 일을 시작한 후로 한 번도 가족들과 명절을 보낸 적이 없다고 했었다. 명절 당일에는 일하는 마트도 쉬었지만 연휴라 갈 만한 곳이 없어 혼자 집에서 시간을 죽였다. 그러다 보니 명절마다 찾아오는 우울은 명절특선영화만큼이나 익숙했던 모양이다.


 그런 날도 편의점만은 문을 열었다.  애는 자취생답게 주 4일은 편의점 밥을 먹으며 지냈는데, 명절 당일은 좀 특별한 편의점식을 먹었다. 평소에는 원터치로 뜯어서 해결하는 핫바나 삼각김밥 같은 걸 주로 먹는 만큼, 명절에는 비싼 정찬도시락 고르고, 물을 붓거나 뜯어서 전자레인지에 돌리 다소 복잡한 요리법이 필요한 것들을 샀다. 나름대로는 차례상 차리는 마음과 비슷하다고 했다. 이런 게 자취생들(중에 실제로는 전혀 '자취'를 하지 않는 자취생들)의 흔한 명절 풍경일지도.


 그래서 나는 명절 연휴에 좀더 사명감을 가진다. 명절에 편의점을 찾는 당신에게 나는 어쩌면 연휴에 유일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놓을 수 없는 생업에 묶인 사람에게도, 만날 만한 정상가족이 없는 사람에게도 편의점은 항상 열려 있으니까. 그들이 공동체 안에서 느껴야할 소속감과 안정감을 내가 대신하지는 못해도, 조금 더 눈맞추고 조금 더 환하게 웃고 조금 더 다정하게 인사해줄 수는 있다. 내가 너울가지와 재치가 더 있어서 손님들마다 파안대소하며 나가게 만들 수 있으면 좋았겠다 싶은데, 나의 내적 친밀감은 말 그대로 'I'인 녀석이어서 밖으로 나올 구멍을 잘 못 찾는다.


 어쨌거나 나의 명절도 좀더 해낙낙하게 만들어주는 내적 친밀감 녀석이 있어서, 쉬지 못하고 원가족들을 못 본다고 해서 딱히 서럽지는 않다(어쩌면 휴일마다 이렇게 무감한 것이 정상 서포터의 특징일지도). 잔돈은 됐다며 돌아서시는 어르신의 뒷모습만큼 거쿨진 명절, 주인 품에 얌전히 안겨 달랑거리는 반려견들의 다리만큼 앙증맞은 명절, 인사하는 게 이뻐서 선물로 준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며 영문도 묻지 않는 초등학생들만큼 천진한 명절을 보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예전에 나는 모든 것을 뒤져서 드러낼 밝고 하얀 편의점의 불빛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24시간 켜져 있는 불빛이라니. 마치 그게 현대인의 꺼지지 않는 욕망 같아 보였다. 요새는 편의점이 많아지면서 매출이 나오지 는 야간에는 장사를 하는 편의점들도 많지만, 원할 때면 언제든지 물건을 있는 곳이라는 편의점의 고정된 이미지다. 매일 같이 한층 참신하고 한층 흥미로운 물건들이 개발되어 들어오고, 1+1, 2+1, 3+1, 2+2, 반값 할인, 신용카드 쿠폰 할인, 페이백 행사 등 더 많이 팔기 위한 수많은 행사들이 기간별로 파도처럼 매대를 덮는 욕망의 바다. 마트나 백화점에 비하면 소박한 해변이긴 해도, 다달이 색깔과 대상만 달라지는 수백 개의 행사 카드를 갈아끼우면서 가끔은 배멀미를 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러면서도 편의점 일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해변으로부터 끝도 없이 펼쳐진 이 망망대해에서 각자의 배를 타고 물결을 넘는 사람들의 면면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각 타고 있는 배의 크기와 모양이 다르지만 모두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면서 나아간다. 나는 그 신호를 해독한다. 이 항해를 잘해 보고 싶다는 말. 이 바다가 너무 고독하다는 말. 그래도 선원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 그리고 다른 배의 불빛이 있어서 안심이 된다는 말. 어디까지나 자의적인 해석들이지만, 신호를 읽으며 노를 젓다 보면 나의 사계절은 조금 더 다채로워진다.


 


* 참고 도서

이반지하, <이반지하의 공간 침투>, 창비, 2024, 133쪽,

이반지하,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 이야기장수, 2023, 33-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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