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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보살과 민바람 Oct 05. 2024

손님에게서 미래의 내가 보일 때

나도 모르게 해온 세대 갑질과 '아홉앓이'

- 아, 옆에 사람이 없어가~!!


편의점에서 일하는 중, 노년의 여자 손님 두 분이 들어오시더니 날 보고 대뜸 살았다는 듯이 얼굴이 밝아지셨다. 편의점 옆에 생긴 무인 '아할', 그러니까 24시간 무인으로 운영되는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갔다 오신 거다.


- 거기 원래 그런 거 아니에요? 무인!

- 모올라, 우리는!!


웃으면서 묻는데 손님이 냅다 손사래를 치신다. 그리고 더위에 목이 탄다며 메로나를 찾으셨다. 나는 어쩐지 가격을 알려드리는 목소리에 군힘이 들어가, AI 같을 만큼 친절하고 정확하게 안내하고서 몰래 민망해졌다. 두 분은 계산을 마치자 아이스크림 포장을 찢었고 나는 그걸 자연스레 받아서 버렸다. 영수증을 달라시기에 "아, 영수증 드릴까요?" 하고 내밀었다.


- 여기 아가씨 있으니까 조옿네!!

- 사람이 없어서 답답하셨죠.


한 분이 다시 눈코입을 일그러뜨리며 "아후~" 하며 손사래를 치더니 헤헤 웃으며 이러신다.

- 뜯어서 묵었음 큰일날 뻔했네.


연세 있는 손님들은 계산을 마치기 전에 아이스크림을 뜯기도 하는데, 아까는 기계로 직접 계산해야 하는 것을 몰랐으니 상품을 먼저 뜯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뜻이다. 대형마트와 생활용품점에 셀프계산대가 생긴 뒤로 직접 바코드를 스캔하고 결제하는 일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많긴 해도, 누구나 그렇지는 않은 거다.

연신 손사래치며 학을 떼는 반응을 눈앞에서 마주하니 더 실감이 났다. 공급자의 입장에서 더 편리한 것을 도입했을 때, 잘못한 것도 없이 '낙오자'라는 오명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한 가지 고백하자면, 몇 년 전까지 나는 '권력'을 휘두르곤 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엄마가 "다시 알려줘 봐. 어떻게 한다고?" 하고 물을 때마다 노골적으로 짜증을 부렸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화를 내는 대신 늘 "미안한데..." 하며 부탁하셨다. 이 시대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갖지 못한 엄마는 이 권력 구조에서 '을'이었다.


엄마는 보험 서류를 어플로 접수하는 방법도 모르는데, 나와 5시간쯤 떨어진 거리에 살고 있어서 그때그때 도와드릴 수가 없다. 엄마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팩스를 이용하며 매번 눈칫밥을 드셨다. 또, 좋아하는 트로트 아이돌의 SNS에 들어가는 데는 어찌어찌 성공했는데, 조작이 생각처럼 안 돼서 집앞 휴대폰 가게에 물어보기도 여러 번이다. 평소 툭하면 짜증을 부리는 주제에 나는 그게 좀 마음 아팠다.


하지만 기본적인 개념들을 납득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그때까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시대 흐름에 뒤처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천지만물의 원리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편의점에서 한 노년의 손님을 지켜보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 했다. 엄마한테 미안해서.



freepik


간간이 오시는 그분은 매번 물건을 잘 찾지 못해 손녀에게 전화를 거셨다. 손녀는 영상통화로 매대를 보며 물건을 알려드렸다. 그런데 영상통화를 연결해 카메라로 매대를 잘 비추기까지가 쉽지 않았다. 먼저 일반통화로 시작해 영상통화로 바꾸는 데는 성공했지만, 손녀는 계속 매대가 안 보인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다이어리형 휴대폰 케이스의 앞장을 뒤로 접어 카메라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가서 알려드리기는 했지만, 할아버지가 아무리 오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도 손녀의 목소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시종 공손하고 다정했다.


- 할아버지, 먼저 빨간 버튼 눌러 보세요. 할아버지, 제 말 들리세요? 할아버지, 그럼 핸드폰을 뒤집어서 들어 보세요, 앞이 뒤로 가게요.


많게 봐도 중학생 정도의 나이였는데 디지털 정보 격차를 줄이는 다리 역할을 듬직하게 해 내고 있었다. 혼자서 얼굴이 화끈했다.




심너울 작가의 SF 단편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의 시대 배경은 지금의 MZ세대가 70살이 된 때다. 노인 '양윤'은 보청기 기능을 겸비한 블루투스 이어폰 '실버팟'을 구매하며 얼리어답터 노인이라는 자부심에 어깨에 힘을 준다. 그러나 여전히 터치스크린 방식에만 익숙한 자신과 달리 이제 사람들은 음성으로 기계를 조작하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이라는 가상현실방에 호기롭게 들어가서도 큰 낭패를 본다.


소설은 유쾌하고 재미있지만, 남는 뒷맛은 상당히 묵직하고 씁쓸하다. 왜 못 해 봤을까? 나 역시 언젠가 새로운 시스템이 버거워질 거라는 생각을.


사실은 벌써 그렇다. 블루투스 이어폰이 대중화되기 시작할 시기에도 나는 한참동안 유선 이어폰을 썼다. 나는 당시 블루투스 이어폰이 터치 방식으로 기능하는 게 앞서 언급한 근미래 배경의 SF에나 나오는 얘기인 줄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처음 살 때도 잘 고를 자신이 없어서 같이 살던 사람이 주문한 블루투스 이어폰을 보고 같은 걸로 샀다. 그런 나를 보고 가 말했었다.


- 와, 우리 엄마 같다.


관심 분야가 아니면 새 정보에 반응하지 않는 나는, 얼리어답터가 아니라 라스트어답터에 가깝다. 30년 후에는 이웃집 문 앞에서 한껏 몸을 수그린 채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아가씨, 자꾸 와서 진짜 미안한데, 이 스마트팜(스마트폰의 기능을 손바닥에 옮겨놓은 것. 이경희 작가의 소설 <테세우스의 배>에 나오는 가상의 유비쿼터스 장치)으로 혈당 측정이 잘 안 돼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처음 사고 3년이 지난 지금, 사회에서 느끼는 나의 위치는 그때와 다르다. 확실히 '주도하는 계층'의 왕좌는 내어준 느낌이라고 할까. 예를 들면 오픈채팅으로 취미 단체카톡방을 찾아 들어가면 내가 제일 나이가 많은 경우들이 있어서 생소하다. 거기서 20대나 30대 초반들끼리 대화를 하고 있을 때 끼어드는 게 또 은근히 민망하다.


오늘은 그 방에서 20대인 누군가 '엉까다'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얼른 검색해 보고 뜻을 아는 척했다(명령이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버틴다, 소위 '개긴다'는 뜻이었다).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면 사람들이, 역시 이 사람은 나이가 많아서 안 통하네, 같은 생각을 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분들이 들으면 우스울 수 있지만, 전까지 없던 나이 자격지심이 생긴 것 같다. 사실은 이 방에 들어갈 때도 나이를 만 나이인 '39'로 적었다. 어떻게든 30대에 끼어보려고. 소위 '윤석열 나이'인 만 나이가 공식 나이 계산법이 됐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하지만 내 나이에 이 계산법을 쓰면 두 살을(내 생일은 12월이다) 줄여보려는 속셈이 훤히 드러나보이는 것만 같아 혼자 찔린다.


찌르는 사람이 없는데 자격지심에 따끔거리는 걸까. 아니면 젊음을 찬양하는 이 사회가 나를 찌르고 있는 걸까. SNS에 '나이대별 SNS 게시물 올리는 방법'이라는 영상이 떴을 때도 잘못한 것 없이 움찔했다. 나는 영상을 유심히 보면서 내가 전형적으로 나이들어 보이게 게시물을 올리고 있는 건 아닌지 자기검열에 들어갔다. 그 후로는 고뇌하며 게시물의 스타일을 바꾸어 올린다. 글자는 작게, 배경색 없이 로고처럼. MZ들은 대체 어떤 기능을 써서 글자의 배경색을 뺀 것인가. 모르겠다. 짐작가는 대로 스포이트 기능을 써서 글자배경을 전체 배경에 맞춰본다. 그렇다고 너무 용써서 따라한 느낌이 들어선 안 된다. 하지만 역시 약간의 어설픔이 느껴진다. 배경색 빼는 기능을 찾은 것은 그로부터 한 달 뒤다. 


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나이듦에 대한 혐오가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이든 사람'으로 분류되어 소외되고 싶지 않은 욕망, 조금이라도 더 오래 젊은 사람으로 대접받고 싶은 욕망이 나도 뼛속에 스며 있다. '아홉앓이'(내가 만든 말이다)를 하고 있는 걸까? 요즘에야 조금씩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젊은이였을 나이 드신 분들이 "젊은 사람들 노는 나이 사람이 끼면 쓰나"하면서 빠지던 마음속에 소외감이 숨어 있었으리라는 것을. 노인들이 젊은이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로 "젊어서 이쁘다"라고 말하게 되기까지는 자신의 나이듦을 받아들여가는 지난한 과정이 있었으리라는 것도.


사회적 거리두기 실행 후 SNS와 화상앱, 메타버스 등을 이용한 비대면 소통이 활발해졌다. 나는 이 변화를 두 팔 벌려 환영했고, 신체와 정신이 취약한 많은 이들에게 참여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좋은 변화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변화에 대한 적응력에 있어서 사회가 개인에게 한층 높은 수준을 요구하게 된 것도 이 무렵부터이지 않았을까 싶다. 사회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대에 희생한 세대가 다시 시대에 휩쓸려 단절되는 것은 생각할수록 쓸쓸하다. 그럼에도 일상은 앞으로 더 빨리 변해갈 것이다.


새로 다가오는 변화를 밀어낼 수는 없어도, 나를 찾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목소리와 마음을 내어 주려 한다. 이미 기술의 갑질에 기가 눌린 분들에게 세대적인 갑질까지 하지는 말아야지. 매대에 꽂힌 가격표가 가격표 위의 상품에 대한 것인지 아래 상품에 대한 것인지 모르는 분들께, 편의점 앱을 어떻게 깔아야 되는 건지 물어오는 분들께, 휴대폰에 작은 글씨로 적힌 안내사항을 읽지 못해 쿠폰 쓰기에 실패하고 여러 번 재결제를 하는 분들께. 오랫동안 참는 마음으로 그분들을 대했지만, 이제는 그분들에게서 우리 엄마를 보고 나 자신을 본다.


ADHD를 가진 나는 뭔가에 익숙해지는 것도 결과물을 내는 것도 남보다 느린 편이다. 그래서 자주 이렇게 되뇐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속도가 있다고. 자신의 속도로 나아가자고. 사회가 요구하는 속도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고 폄하하지 말자고. 그런 내가 그분들에게 답답함과 짜증을 느낀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분들을 대하는 내 마음이 사회적 권력을 더 누리는 자로서 상대를 포용하는 오만함은 아니길 바란다. 우리는 이 시대에서, 그리고 삶 속에서 같은 어려움을 겪으며 연대하는 존재들이다, 그걸 기억하는 눈빛으로 손님들을 바라보고 싶다. 그게 바로 내 가족과 내면의 자아를 대하는 태도가 되기도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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