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집 딸'이라는 장래희망, 그리고 장래
어릴 적 내 꿈은 ‘슈퍼집 딸’이었다. 이유는 두말할 것 없이 맛있는 과자를 마음껏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가자 이 꿈이 이루어졌다. 우리 부모님이 작은 슈퍼를 인수해 운영하기 시작하신 것이다. 구멍가게나 점방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작고 낡은 가게였다. 이름은 ‘미미슈퍼’. 이름처럼 슈퍼가 손님을 끄는 힘은 미미해 보였다.
벽과 바닥재는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나 회색빛이었고, 철로 된 낡은 행거에 얇은 나무 판자가 깔려 있는 것이 선반이었다. 가게 안은 낮에도 저물녘처럼 어두웠다. 뭘 해도 일반 슈퍼처럼 세련돼 보이지는 않는 그곳을 엄마는 날마다 깨끗이 닦고 정리했다. 슈퍼 안은 좁았지만 입구에 테이블을 하나두어 술을 마실 수 있게 했다. 가게 안에는 작은 부엌과 방이 딸려 있었다. 엄마는 안주 주문이 들어오면 부엌에서 황태를 굽거나 계란말이를 부쳤고, 대부분의 시간은 방 문턱에 걸터앉아 담배를 팔았다.
외상값을 갚지 않고 술을 마시거나 엄마를 성희롱하는 아저씨들 때문에 엄마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좁은 가게 안에 종일 앉아 있어야 하는 걸 더 힘들어했다. 내 세상에 빠져 지내던 그때의 나는 엄마의 고충을 진지하게 생각지 않았다. 가끔 엄마가 볼일이 있어 내게 가게를 맡기면 겨우 몇 시간 가게를 보면서도 무척 지루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생각이 아예 없진 않아서, 과자나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으면 엄마에게 돈을 냈다. 그날 번 돈을 세어볼 때 엄마가 늘 한숨을 쉬었기 때문이다. 우리 딸은 깎아줄게. 원가로 줄게. 돈을 내면 엄마는 작은 동물을 바라보듯 웃으면 거스름돈을 내주었다. 그런 엄마의 표정 때문에 나는 어릴 적 생각하던 대로 가게에 있는 걸 원 없이 먹을 수 있는 슈퍼집 딸이 아니라도 좋았던 것 같다. 가게 셔터를 내리고 돈을 셀 때 엄마는 인건비도 안 나온다고 투덜거리다가 끝에 가서는 꼭, 이거라도 어디냐잉? 하며 날 보고 웃었는데, 나는 그걸 좋아했다.
몇 년 후 우리 가게가 없어진 건 바로 근처에 ‘대한슈퍼’가 생겼기 때문이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생긴 그 가게는 다른 슈퍼들처럼 깨끗하고 있어 보였다. 안 그래도 매출이 안 나던 우리 가게는 손님이 더 떨어졌고, 부모님은 곧 가게를 정리하기로 했다. 이제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나는 두 분이 답답해하며 가게를 지키는 모습을 더는 보지 않아도 되니 잘됐다 싶기도 했지만, 역시 대한슈퍼가 얄미웠다. 그래서 거기에 물건을 사러 갔을 때 내게 말을 거는 주인에게 “근처 살아요. 저 미미슈퍼집 딸이거든요.”라고 싸늘한 대답을 날리고 새침하게 뒤돌아나왔더랬다. 하지만 몇 년 후 엄마가 이런 말을 했을 땐 고소함보다 씁쓸함을 더 느꼈던 것 같다.
- 너 대한슈퍼 기억 나지? 우리 슈퍼 옆에 생겼던 데. 거기도 없어졌댄다. 그 앞 큰길에 롯데마트 있잖아. 거기 때문에 장사가 안 됐다 글드라.
본가에서 나와서 8년 전부터 살고 있는 이 도시에는 유독 미미슈퍼 같은 낡은 점방이 많다. 어느 저녁 나는 처음 지나는 골목에서 우리 가게를 닮은 가겟집을 발견했다. 한참 바라보고 서 있는데 예기치 않게 눈이 뜨거워졌다. 그 감정은 애틋함이었다. 사라져 버린 것에게 깊은 애정이 깃들어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을 때 찾아오는 감정. 나는 어쩐지 그 시절의 미미슈퍼라는 공간이 가여워져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또 어느 날은 좋아하는 스크류바를 사먹으러 편의점에 가다가 길목에 있는 점방을 보고 멈칫했다. 나는 왜 이 가게가 있는 걸 알면서 내내 편의점에 갈 생각만 했을까? 안에 들어서니 텔레비전을 보며 서 있던 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었다. 냉동고 안에는 온도차 때문에 생긴 하얀 얼음조각이 가득해서, 아이스크림들은 마치 만년설 속에 묻힌 화석처럼 보였다.
그 속에서 스크류바 하나를 캐내 값을 치렀다. 칠백 원. 편의점의 2+1에 대항하기 위해 싸게 매긴 값인 것 같았다. 자주 와요. 싸게 줄게. 사장님이 거스름돈과 함께 건네주는 웃음이 너무도 무해해서 나는 괜히 미안해졌다. 비닐 포장 안에 반쯤 차 있던 만년설을 털어내고 스크류바를 깨물면서 자주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일하는 편의점은 아파트 상가에 있다. 주택가라 가족 단위로 오는 손님들이 많다. 삼십 대의 여자와 남자, 네댓 살 꼬마애 한둘이 들어서면 으레 “자~ 먹고 싶은 거 골라.” 하는 말들이 먼저 들린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보지 않는 사이에 발돋움을 해 계산대 위에 물건을 올려놓고 천진함과 설렘이 넘치는 눈망울로 나에게 빨리 바코드를 찍으라는 사인을 보낸다. “안 돼! 하나만 사.” 엄마아빠는 연거푸 호통을 치는데 아이는 천진함과 설렘만을 간직한 채 이것저것 가져와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노년의 손님이 같이 온 경우에는 분위기를 보면 관계를 알 수 있다. 친정 엄마와 함께 온 딸은 세상 편안해 보이고, 장인과 함께 온 사위는 좀 머쓱해 보이는 게 각이 잡혀 있다. 어떤 관계든 공통점은 서로 결제를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제가 낼게요. 아이다, 내가 사주께. 대한민국 어느 가게를 가든 이런 모습이 없을까마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편의점이라는 말의 고독하고 현대적인 느낌은 단어가 주는 느낌일 뿐인가 싶다. 예전의 동네 점방을 대신해 일상 속에 촘촘히 끼어있는 장소이니 말이다. 사람들은 변한 듯 변하지 않았다.
붙임성 없는 내가 손님들과 나누는 말은 몇 마디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소소한 재미를 맛볼 수 있다. 손님들이 고른 상품을 보고 어, 이거 맛있더라구요, 한마디 건네는 것만으로 무표정하던 손님 얼굴이 확 핀다. 하이고, 느무 덥다. 날씨가 와 이라노. 맥락 없이 던져오는 말에 나도 얼굴을 구기며 능글능글한 맞장구 한번 던지면 적어도 그 순간은 한결 상쾌하다.
20여년 전 미미슈퍼가 대한슈퍼에 밀려 문을 닫고 대한슈퍼가 대형마트에 밀려 사라진 후, 이제는 마트에 무인계산대가 늘어 계산원이 줄고 있다. 머지않은 시점에 나같은 알바생활자들도 기억의 저편에서 찾는 존재가 될지도. 오늘은 NFC(Near Field Communication. 10cm 내의 근거리에서 두 전자기기가 무선으로 통신하는 기술) 기능을 이용해 스마트워치로 결제를 하고 나가는 손님을 보고는 다음 손님이 말했다. "발전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 그쵸? 이러다 사람 손이 하나도 필요없어질 거 같애."
내가 일했던 편의점에서 손님들은 그 전에 있던 슈퍼에 대해 묻곤 했다. 그 주인분들은 어디로 가셨느냐고, 이제 아예 장사를 접으신 거냐고, 그 양반들하고 참 가깝게 잘 지냈는데, 24시간 여는 깨끗한 가게가 생겨 좋다고 하면서도 주인과의 헤어짐을 못내 아쉬워하는 손님들의 표정이 마음에 남았다. 그들도 그리워하는 것이다. 동네 상가에서 소소하게 말을 섞던 경험과 그렇게나마 마음을 나누었던 대상을. 그 얼굴들을 볼 때마다 생각했다. 더 편리한 게 찾아와도 그게 꼭 편안한 건 아닌가 봐.
슈퍼에 밀려 사라진 구멍가게 딸이었고, 슈퍼를 밀어내고 생긴 편의점의 알바생활자였던 나는 지금의 내 자리가 앞으로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하다. 내가 있는 자리도 언젠가 사라진 후에는 지금의 손님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그리운 불편’이 되려나.
그러니 이제 다른 생각을 하는 멍한 눈이 아니라 초점을 갖춘 눈으로 찾아오는 분들에게 조금 더 눈을 맞출 수 있으면 좋겠다. 사무적 편리함이 아니라 편안함을 나누어 가지는 순간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
한 번은 반려견을 데리고 자주 오시는 여성분께 한마디 더 건네봤다.
- 근데, 저분은 성함이 뭐예요?
잠시 벙쪄 있다 반려견을 내려다 본 뒤 폭소를 터뜨리는 그분의 목소리. 나는 퇴근 무렵의 피로를 잠시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