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점포에서 일하던 초기에 있었던 일이다. 혼자 일하고 있을 때 점포에 자주 들르는 젊은 부부 손님이 왔다. 손님들은 큰 봉지에 한 가득 물건을 산 뒤에 영수증을 달라고 했다. 영수증을 뽑아드린 뒤 계산이 맞나 찜찜해서 나도 영수증을 뽑아보았다. 헛. 영수증을 들여다 보다가 깜짝 놀랐다. 수량이 3개인데 1개로 입력된 상품이 있었다. 후다닥 문 밖으로 뛰어나가봤지만 손님들이 사라진 뒤였다.
어떡하지. 초기부터 사장님에게 귀찮은 일을 만드는 직원으로 인식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실수가 많은 사람'이라는 자격지심에 어떻게든 실수하지 않으려, 무능해보이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는데 그런 일이 생기니 난감했다. 손님들이 연락을 받고 사장님에게 짜증을 낼까 봐 걱정도 됐다.
이런 경우 보통 나는 내 돈으로 조용히 추가 결제를 해둔다. 계산을 잘못한 건 내 책임이고 사장님과 손님을 번거롭게 하는 것보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손님들이 영수증을 받아갔다는 게 문제였다. 나중에 다시 와서 이야기하면 사장님도 알게 될 테니, 그럴 바에야 내 입으로 이실직고하는 게 나았다.
사장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리니 사장님은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보이셨다. 그냥 괜찮다고 해주시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실수는수습하면 되는 거고솔직하게 말해줘서 감동을 받았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거기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구나. 그때 사장님이 정직성을 굉장히 중시하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고, 오히려 내가 사장님의 태도에 감동을 받았다.
다음 번 출근했을 때 사장님은 정말 웃긴 일이 있다며 입가에 살짝 비소를 띠셨다. 사장님이 보여주신 CCTV 영상은 점포 밖을 찍은 것이었다. 화면 속에는 물건 봉지를 들고 걸어가는 부부 손님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내가 영수증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걷고 있었다. 아내가 갑자기 발길을 멈추고 남편에게 영수증을 보여주었다. 남편은 아내가 손으로 짚은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두 사람은 웃으며 다시 걷기 시작했고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사장님은 영수증에 나온 카드번호로 손님의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모르는 척 계산이 잘못되었다고 말했는데, 전화를 받은 남편은 전혀 몰랐던 것처럼 대답했다고 한다. 사장님은 단골 손님들이, 돈도 잘 버는 양반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실망스러워 하셨다.
나는 어쩐지 CCTV 화면에 찍힌 게 나 자신인 것처럼 부끄러웠다. 세상이 나의 일거수일투족도 CCTV로 비추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였다면 어땠을까. 솔직히 고백하면 나 역시 어렸을 때는 지불할 액수보다 더 적게 계산이 되면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곤 했다. 돈을 돌려주거나 재결제를 하기도 했지만, 나중에야 알게 됐을 때는 요행으로 생각하고 넘어간 적도 있다.
만약 내가 점포 바로 앞에서 알게 됐다면, 지금의 나는 다시 들어가서 말을 할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나도그때그때 작은 이익의 유혹과 싸우며 그날의 도덕성을 지켜낼 뿐이다. 그렇다고 사장님과 일했었다는 어떤 직원처럼 손님이 잘못 준 돈을 내 주머니에 넣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이런 충동이 들 때는 있었다. 1+1 상품인데 손님이 증정품을 사양하고 나가면, 어떤 때는 어차피 나가야 할 상품인데 내가 받으면 안 되나 하는 지질한 생각이 스쳐가는 것이다. 그러다 계산을 내가 맡았다고 그럴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며 그것도 절도라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합리화란 무서운 것이군, 깨닫는다.
두바이 초콜릿의 유행으로 점포에 진열된 작은 두바이 초콜릿을 훔쳐가는 아이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사장님은 메모지에 "CCTV 촬영중! 훔쳐가지 마세요"라고 적어 초콜릿 앞에 붙여두셨다. 처음 이 점포에서 일할 때는 아이들이 워낙 많이 오고 혼자 일할 때 아이들을 지켜볼 수도 없어서 도난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물건을 가방이나 주머니에 넣으려던 아이를 몇 번 잡아낸 적은 있지만, 생각보다 그런 경우가 별로 없었다. 사장님은 CCTV가 있어서 아이들이 물건을 잘 가져가지는 않는다고 하셨다.
자기 말고는 아무도 자기가 한 행위를 모를 때, 사람들은 어디까지 정직할까. 내 생활의 거의 모든 기록이 어딘가에 남는 판옵티콘(Panopticon, 철학자 미셀 푸코가 컴퓨터 통신망과 데이터베이스를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 또는 침해하는 대상으로 비유하여 사용한 말)의 시대라 사람들의 정직함이 순수한 정직함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알려질 수 있다는 두려움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진 것 같다.
하지만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세상에는 양심적인 사람들이 생각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상품을 빠뜨리거나 개수를 적게 찍어서 계산하면 많은 손님들이 그 자리에서 바로 말한다. "이거 계산 안 된 것 같은데요." 집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 추가 결제를 하는 분들도 종종 있다. 그게 기록이 남기 때문일까?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른 척 가게를 떠나고 나중에 얘기가 나오면 그때 돈을 더 줘도 그만인 거니까.
쉬는 날 사장님께 메시지가 왔다. 담배와 라이터를 사간 손님이 결제 알림 문자를 통해 라이터만 계산된 걸 발견하고, 다시 와서 담배를 결제하고 갔다고 했다. 내가 결제해 드린 손님이었다. 이전 결제가 끝나고 너무 빠르게 다음 상품 바코드를 찍으면 바코드가 잘 찍히지 않는데, 그걸 확인하지 못하고 결제를 해버린 모양이다. 유체이탈 상태로 일하는 걸 또 들키고 말았구먼. 부끄러웠다.
한편 아무도 그 실수를 모르는 상황에서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데 일부러 들러 담뱃값을 결제한 그분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산이 잘못된 게 자기 잘못은 아닐지라도부당하게 손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신념에서 나오는 행동일 것이다.
편의점에서 일하다 보면 나는 어떤 신념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계산을 잘못해서 사장님께 손해를 끼치게 됐을 때 가급적 내 돈으로 추가 결제를 하는 것은 내 부주의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만 원이 넘어가는 액수라면 나도 감당하기 어려워서 송구함을 감수하고 손님을 찾아내 재결제를 부탁하는데, 다행히 지금까지 그런 적은 한 번밖에 없다.
점포에서 제조하는 튀김을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도 아, 나 이런 고집이 있었네, 하고 의식하게 된다. 사장님은 폐기로 찍으면 된다고 하시는데 나는 굳이굳이 고집을 부려 내 돈으로 튀김값을 채운다. 버는 돈이 적은 알바생 입장에서 이게 권장할 만한 태도는 분명 아니다. 점포마다 의무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폐기 수량이 있어서, 그걸 넘지만 않는다면 폐기로 입력하면 되기 때문에 오히려 바보 같은 선택이다. 그래도 그게 나의 기준에 맞는 일이라 그쪽이 마음 편하다.
최근에는 이 원칙을 시험에 들게 하는 일이 있었다. 제조할 튀김을 보관하는 냉동고 문을 열었는데, 내가 넣을 때 잘 봉해두지 않은 비닐이 벌어지면서 튀김이 바닥으로 우르르 쏟아졌다. 바닥에 닿은 튀김은 5개였다. 하필 판매하는 튀김류 중 제일 크고 값이 나가는 녀석이었다. 나는 흰 바닥에 흩어진 노릇노릇한 치킨조각들을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그것들은 수치와 원망이 뒤섞인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바로 주워서 버리고 내 돈으로 결제를 하는데, 이번엔 금액이 훨씬 컸다. 고뇌에 빠졌다. 한시간 반분의 급여를 날리고 양심을 지킬 것인가. 딱 한 번 눈 감고 모른 척 다시 넣어둘 것인가.
중간 선택지가 있긴 했다. 사장님께 사실을 고하고 폐기로 찍어도 되는지 여쭤보는 것. 그런데 그날은 다른 실수도 있어 벌써 2개나 부탁드릴 거리가 있었다. 물론 사장님이라면 괜찮다고 하시거나 농담을 하며 째려보시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신경쓰게 할 일을 늘리고 싶지가 않았다. 의무 폐기량이 이미 넘었는데 괜찮다고 하얀 거짓말을 하실지도 몰랐다.
나는 그것들과 눈싸움을 하며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 입에 못 들어갈 것은 남에게도 안 판다는 대원칙을 무너뜨릴 것인가? 그런 점원은 되고 싶지 않아. 아아, 아까운 내 돈. 그래도 그건 식당에서 아깝다고 반찬을 재활용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짓인데! 만약 내가 사먹은 햄버거의 패티가 바닥에 떨어진 거였다면 내 기분은 어떻겠어? 게다가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튀기면 기름이 오염돼서 다른 튀김들도... 아니,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것부터 쪽팔리는 일이잖아! 내 실수의 결과는 내가 감당해야지.
나는 바닥에 누운 치킨들을 주워서 버렸다. 목숨의 가치를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된 것 같아 닭에게 미안했다. 그래도 작고 소중한 내 양심은 사수했다. 바닥을 치우고 결제를 하고, 안도했다. 후하, 바람아, 해냈다. 잘 넘겼어. 하루 식비로 정한 돈의 1.5배를 소비하게 되었지만 비로소 마음이 편했다.
사장님과 손님들이 내 이런저런 실수를 그럴 수 있는 일로 넘겨주는 건 내가 보이는 태도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되도록 그 신뢰에 보답하고 싶다. 가게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으로, 파는 물건을 믿고 살 수 있는 사람으로 있고 싶다. 구멍은 많지만 그 구멍으로 정직함은 새어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완벽한 성자까지는 못 되어도, 나 이렇게 살았다고 터놓고 얘기할 만한 신념들을 가지고 살 수는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