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익-' 하는 소리를 듣고 캔음료가 있는 냉장고 쪽으로 급히 다가갔다. 손님 발 밑에 떨어진 캔맥주 하나가 사방에 분수를 뿜고 있었다. 바닥이 끈적여 여러 번 닦아야 되겠지만, 까짓 거 닦으면 될 일. 그런데 문제는 손님이었다. 캔맥주를 떨어뜨린 일행이 미안해하며 터진 맥주 값을 계산하려는데, 키가 크고 체격이 다부진 다른 손님이 저지했다.
- 야, 우리가 돈을 왜 내. 나 여기 단골이야. 이거, 그냥 점장님께 말씀드려서 처리해 주세요.
코로나가 유행한 지 얼마 안 됐을 시점이었다. 코로나 시대의 자영업 점포에서 이게 무슨 캔맥주 뒤로 터지는 소린가. 적자 때문에 고민하시면서도 알바들 건강을 더 걱정하는 점장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순간 화가 났지만 팔자 눈썹을 그리며 동정심 유발 전략을 폈다.
- 계산 안 해주시면 제 개인 돈으로 메워야 해서요. 저도 알바라...
그러나 그는 자영업자나 저임금노동자의 고충 따위에 관심이 없는 듯, 심지 굳은 눈빛과 싸늘한 표정으로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 아 그래도 그냥 점장님께 말씀드리세요.
그렇게 그는 떠나버렸고, 나는 점장님이 신경쓰게 하고 싶지 않아서 포스에 내 돈을 채우면서 속으로 되뇌었다. 이게 사회봉사다. 이게 복 짓는 거야.
편의점에서 일한다고 하면 친구들이 "진상은 없어?"라고 걱정부터 할 만큼 편의점은 진상이 많다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일했던 두 점포 모두 단골고객이 대부분이라 다정하게 대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손님들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카드를 건네거나 "고마워요~"라고 눈웃음을 보여주며 돌아설 때마다 나는 촉촉해진 눈빛으로 뒷모습을 배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진상'의 자리를 꿰차는 고객들도 없지 않았던 거다.
요즘은 비닐봉투가 유상으로 바뀌면서 그런 사람이 없어졌지만, "봉투에 담아 드릴까요?"라고 상냥하게 물은 말에 "그럼 이걸 들고 가?"라며 어이없다는 듯 나를 보는 손님들에게는 호탕하게 웃어제낀 뒤 환경부담금이 왜 필요한지 무료 연설을 해 주고 싶었다. 신용카드가 일수명함처럼 날아오면 나도 부메랑처럼 되돌려 줄까 싶었고, 마치 계산대에 소원이라도 빌 것처럼 팅팅 동전을 던지면 가끔은 나도 투호 하듯이 손님 호주머니에 쏙쏙 던져 넣어보고 싶었다.
이런 경우는 불쾌해도 잠깐인데, 내 서비스 정신이 한계에 부딪치는 경우는 사실을 왜곡해서 우기는 손님을 만났을 때다. 특히 한 손님이 여러 번 그러는 경우에는 서비스직의 본분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게 된다.
- 담배 주세요. 모비딕 1미리.
- 모비딕 1미리 어떤 거 드릴까요?
- 거기 그거.
- 이거요? 아니면 이거요?
- 거기 노란 거.
- 얇은 거요, 두꺼운 거요?
- 얇은 거. 모비딕 1미리는 하나밖에 없는데 잘 모르시네.
- 손님, 모비딕 1미리 4종류 있습니다.
- 하납니다.
- (꽂혀 있는 것들을 가리키며) 손님 여기가 다 1미리예요...
'모비딕 옐로우 슬림'이라고 말해 주면 간단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가르치는 느낌을 줄까 봐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때 그냥 알려줄 걸 그랬다. 어느 날은 이 손님과 싸울 뻔했으니까.
- 모비딕 노란 거 주세요.
- (두꺼운 담배를 잡으며) 이거요?
- (흘긋 보고) 네.
- (바코드를 찍는다.)
- 아니 그거 말고, 얇은 거요.
이미 두세 번 나를 힘들게 했던 손님이라서 순간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변명을 덧붙였다.
- 방금 이거냐고 여쭤봤는데 맞다고 하셔가지구..
- (목소리를 낮게 깔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내가 안 한 말 했다고 하는 겁니다.
- 네? 정말로 아까 네, 라고 하셨어요.
- 내가 그런 거 제일 싫어합니다. 우리 직원들한테도 내가 말해요. 거짓말 \하지 말라고.
- ....
머리가 띵. 순간 튀어나올 것 같은 말을 참느라고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손님들이 줄 서 있는 상황이었다. 억울함이 몰려오고 사람들 앞에서 나를 거짓말한 사람으로 만드는 데도 화가 났지만 별것도 아닌 일로 손님과 언쟁하면서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사장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 정신 바짝 차리자. 나는 여기 직원이다. 그리고 웃으면서 논점을 피해 말했다. "피우시는 담배를 제가 기억 못해서 죄송해요. 다음엔 잘 기억할게요." 사실 기억을 못한 것도 죄송할 일은 아니지만, 어떻게라도 져주는 태도가 필요했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그런데 또 그렇게 끝내려니 오기가 솟아서 나도 모르게 장난치듯 덧붙였다. "근데.. 아까는 진짜! 그러셨어요! 진짜!" 이게 나의 한계다. 사과는 정말 잘 할 수 있지만 억울한 건 못 참는다. 내가 말해놓고도 아차 싶었다. 아, 위험하다. 이러면 싸움이 되는데... 나도 진짜 그냥 넘어가질 못하네. 참으로 다행히도 점잖은 손님이기는 해서, 불평을 하다가 사람들이 있으니 참는다면서 가게를 나갔다.
그때 나는 내 한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누군가에게는 "제가 잘못 들었나 봐요"하고 넘어갈 수 있는 대수롭지 않은 일일 텐데. 쓸데없는 일에 자존심을 부린 걸까? 내가 서비스직으로서 유연하지 못한가? 요령이 부족한 것은 맞다는 생각이 든다. 손님이 우기기 시작했을 때 비웃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만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아아, 네에." 했다면 어땠을까? "허, 참, 제가 귀신 목소리를 들었나 봐요"하고 누구 탓도 하지 않으면서 재치 있게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편의점에 있다 보면 사과할 일이 많다. 내가 잘못한 일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가격 변동이 반영되지 않은 가격표에 대해서, 다른 직원이 잘못 꽂아놓은 행사카드에 대해서, 품질이 좋지 않은 과일이나 채소에 대해서도 사과한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도 점포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사과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나는 곧바로 사과한다. 지금까지 손님들과 큰 문제가 없었던 것도 내가 사과를 잘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번은 한 여자 손님이 심상치 않은 기운을 뿜으며 계산대로 다가왔다. 손님은 계산대 위에 초록색 소주 뚜껑을 올려놓더니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는 목소리로 그날 내가 중학생 딸아이에게 소주를 팔았다고, 어떻게 그렇게 확인도 안 하고 팔 수가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머릿속에 소주 한 병과 과자를 사가던 여자의 모습이 스쳐갔다. 얼굴은 기억이 안 나지만 "수고하세요"라고 말하는 느낌이 어딘가 어색해서 외국인인가 싶었던 손님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앳되었었나. 중학생이었구나.
눈물까지 어른거리며 화를 내는 손님의 태도에 어쩔 줄 모르고 연신 허리를 굽혔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확인을 잘 했어야 되는데 너무 죄송해요.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신경쓰겠습니다. 살면서 그렇게 허리를 많이 굽히며 여러 번 사과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다른 손님들이 지켜보고 있어서 부끄러웠지만 그 손님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사장님은 그분이 딸애가 어긋나도록 놔둔 자기자신에게 화가 나서 그러는 거라며 마음에 두지 말라고 나를 다독이셨다.
다음 번 출근했을 때 사장님은 중학생 아이가 소주를 사간 당시의 CCTV 화면을 보여주며 말씀하셨다. 이거 봐요. 나라도 팔겠다. 완전히 성인 같은 모습이었다. 엄마한테 사진 보냈더니 애가 입고 온 옷이 엄마 옷이래요. 키도 크고 마스크 끼고 작정하고 변장을 하고 오는데 어떻게 중학생인지 알겠습니까. 아까 엄마가 다시 와서 미안하다고 하고 갔어요. 자기가 잘못한 것 같다고. 그 말을 듣고 약간의 오해는 풀린 것 같아 안심했다. 고개 숙여 사과한 게 아깝거나 언짢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미성년자에게 술을 계산해준 것은 나니까.
나 때문에, 또는 내가 소속된 곳 때문에 누군가 조금이라도 불편이나 수고를 겪었다면 나는 사과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건 내가 직원이라서만은 아니다. 내가 피해를 입는다면 나 역시 사과를 받고 싶기 때문이다. 사과는 상대방이 예기치 않게 감당하게 된 것들에 대한 유감의 표현이자 자신의 잘못과 책임에 대한 인정이다.
그런데 내가 아니라 상대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 내 잘못으로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건 내게 지독하게 어려운 일이다. 그건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을 버리는 일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고객의 기분을 위해 자존을 버려야 하는 게 서비스직을 맡은 사람의 본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고집이 효율적이지 않은 것도 맞다. 문제가 커지고 소문이 나면 매출에 영향이 있기도 하겠지만, 일이 커질수록 다른 곳에 쓸 에너지를 빼앗기고 다른 일상과 건강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점도 있다. 에너지가 전같지 않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라서 더 이해가 된다.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말을 괜히 하는 게 아닌 것을. 그게 오히려 나를 지키는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한쪽의 탓으로 만들지 않고 유머로 승화하는 순발력을 갖추고 싶은데, 그게 내게는 난이도 최상. 직원으로서 궁극의 경지인 것 같다. 언젠가는 그 단계에 이를 수도 있겠지.
내 주장을 하기보다는 주로 남에게 맞추며 살아온 시간이 길었다. 그러다 나에게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경험들을 나는 자주 곱씹곤 했다. 그 후 변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다 보니 작은 일에도 자존을 걸게 된 듯하다. 밟힐 때 꿈틀하지 않는 나를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그게 틀린 것은 아니지만, 밟힌다고 느낄 때 이게 정말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생각하는 습관도 필요하겠구나 싶다.
한 가지 참고할 것은, 의외로 진상 손님과 진상이 아닌 손님은 한끝 차이일 수 있다는 점이다.
하루는 담배를 사러 온 여자 손님이 앳되어 보여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는데, 그 손님은 신분증도 모바일 신분증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손님은 저번에도 사장님께 담배를 샀다면서 자주 오는 사람이고 성인인데 그냥 주면 안 되느냐고 했다. 손님 말이 거짓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확인도 없이 담배를 팔 수는 없었다. "그럼 이거 때문에 저 다시 집에 갔다 와야 돼요? 그럼 아까 마스크는 왜 내려보라고 하셨어요?" 손님은 짜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나도 순간 화가 났지만 손님의 요구와 가게의 원칙을 절충해 보려고 사장님과 통화를 주선해 주었다.
사장님은 CCTV로 손님을 확인하고 이번에는 그냥 드릴 테니 다음에는 꼭 신분증을 가져와야 한다고 하셨다. 직원 입장에서는 당연한 절차라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담배를 내밀며 내가 말했다. "언짢게 해드리려던 건 아닌데.. 손님들이 속이는 일이 많아서 그러니 양해 부탁 드립니다. 중학생이 와서 술을 사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러자 손님도 누그러진 듯 대답했다. "저도 불쾌하게 해드리려고 한 건 아닌데, 제가 오기 전에 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짜증이 났어요." "아, 그러셨어요..." 내 탓을 하지 않고 자신의 기분 문제임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손님의 태도에 나는 조금 놀랐다. 그때 그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 손님과는 웃으며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눴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간 갈등을 만드는 요소가 사람의 됨됨이만은 아니라는 점,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다양한 상황의 영향을 받으며 힘들게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을 기억해야겠다. 나 역시 손님들에게 늘 똑같은 컨디션으로 대하지는 못하니 말이다.
세상 모든 일에 정당한 결과를 얻으며 산다면 좋겠지만, 불합리함을 받아들이고 감당해야 할 때도 있다. 크고 작은 오해에 해명보다는 침묵을 택해야 하는 상황도 온다. 그건 나 자신이 못나서가 아니다. 모든 사람, 모든 상황이 내 맘처럼 움직일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게 세상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들이 사소한 일로 치부하더라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일도 있다. 그 사소함이 정말로 자신에게는 중요한 것일 때가, 자존을 흔드는 것일 때가 있다. 누군가의 무신경한 말이 단지 나의 기분을 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편견을 강화하고 누군가의 삶의 가치를 훼손할 때. 그런 순간에 나는 작게 접어 품속에 넣어두고 있던 보호장구를 꺼내려 한다. 웃음으로 무마하지 않는 용기와, 상대를 공격하지 않으면서도 내 중심을 보여주는 단호함을.
그래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판단하는 감각. 그걸 기르기 위해 나는 일상에서 나를 찾아오는 작은 사건들에 더듬이를 세운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더 나은 나날을 위한 연습일 터. 요령과 자존 사이, 유연함과 단호함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도 편의점에서 배우는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