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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보살과 민바람 Oct 25. 2024

이 정도 꼰대스러움은 괜찮을까

동네 으른의 역할

오랜만이다! 너 이름이 호석이 맞지? 아닌데요. 어, 아닌가? 저 영준인데요. 어 진짜? 네. 미안. 아니, 근데.. 진짜로? 아니었던 거 같은데. 정색을 하고 있던 중학생 남자아이 입이 슬금슬금 벌어지더니 "아이 진짜 참겠네"하고는 깔깔깔 웃어버린다. 무방비하게 속아버린 나는 살짝 때리는 시늉을 한다.


- 그치! 너 호석이지! 야 내가 전에 네 이름 잘 어울린다고 했던 거 다 기억하는데.

- 아니 왜 이렇게 잘 속아요? 영준이는 우리 집 위층 사는 앤데. 크크크큭.

- 니가 그렇게 연기를 잘하는데 어떻게 안 속냐?

- 아이, 진짜 재밌네. 크크큭.


 이 애는 눈부터 장난기가 가득하다. 처음 눈에 띈 건 점포에 같이 온 친구 앞에서 오징어처럼 흐느적거리며 이상한 춤을 추고 있는 걸 봤을 때다. 그걸 보고 파안대소를 했는데, 그게 만족스러웠는지 다음부터는 혼자 와서도 나를 따라다니면서 흐느적거렸다. 중1인 주제에 담배 주세요! 생탁 주세요! 김치찌개에 쐬주 한 잔을 똑, 하면서 혀로 입천장을 튕겨 소주 넘기는 소리를 흉내내고 까부는 아이. 한 번은 점포에 들어와 나를 향해 직진하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드릴 말이 있어요" 하고는 자기 휴대폰을 보여줬다. 휴대폰을 들여다 보니 머리가 있던 곳에 드릴을 합성한 말 사진이 있었다. 


 평소에도 자주 보거나 인상적인 아이들에게는 이름을 묻고 되도록 이름을 불러주는데, 오랜만에 만나서 이름이 가물가물해졌던 거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전과 다르게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더니 타고난 장난기는 그대로인 모양이다. 호석이는 뭐가 그렇게나 재밌는지 침까지 흘리며 웃다가 이 말을 남기고 점포를 나갔다.


- 사람을 너무 쉽게 믿으시네. 세상 험해요.


 물론 그것도 농담이었을 테지만, 그 애가 나간 뒤 어쩐지 나는 입이 썼다. 혼자 그 말을 곱씹었다. 사람을 너무 쉽게 믿으시네. 세상 험해요.


 아닌 게 아니라 몇 년 사이 세상은 피부로 와닿을 만큼 더 험해졌다. 아이들이 휴대폰을 빌려달라고 할 때,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빌려줬다. 휴대폰이 꺼져서, 또는 휴대폰을 잃어버려서 엄마나 친구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고 찾아오는 아이들이 종종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 손에 내 휴대폰이 들려 있으면 불안해졌다. 혹시 뭔가 결제하는 건 아닐까? 내가 모르는 신종 피싱이 있는 건 아닐까? 결국 앞으로 휴대폰을 빌려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어느 날 열일곱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머뭇거리며 다가와 무척 난처한 얼굴로 휴대폰을 빌려쓸 수 없는지 물었을 때, 엄마에게 전화해야 한다는 그 애의 말을 믿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외를 만들고 싶지 않아 결국 빌려주지 않았고, 그 애가 나간 다음 한동안 마음이 쓰였다. 절박하면서도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어물어물하며 뒷걸음질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가 세상 어른의 매정함에 상처를 받지는 않았을까.




 예전에는 내가 어린 아이와 청소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교사도 해보고, 논술학원에서 중학생들도 가르쳐 보고, 자기소개서 첨삭을 하면서 고등학생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늘 뚝딱거렸고 어색한 느낌이었다. 왜 그런지 약간 무서워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편의점에서 날마다 많은 아이들, 학생들을 보고 대하면서 그들의 매력에 젖어들었다. 아이들이 한바탕 점포를 휩쓸고 지나가면 바닥에 눌러붙은 음식물을 치우고 엎지른 컵라면 국물을 닦아내느라 몸이 힘들긴 하다. 하지만 그들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 이상의 활력을 준다. 눈빛과 표정과 몸짓과 목소리와 웃음에서 생명력이 솟아난다. 표정이 굳은 중고등학생들도 삼삼오오 점포에 들어와 별것 아닌 일로 서로 야유하며 옥신각신하는 모양을 보고 있으면 슬쩍 슬쩍 웃음이 난다. 


 매주 월요일마다 우리 점포에서 저녁을 해결하던 초등학생 희원이는 말투가 아저씨스러워서 나를 웃게 했다. 그애가 "안녕하~쎄요!" "저 왔슙니다~!"하며 우렁찬 목소리로 들어오면 나는 "왔어? 오늘 월요일이구나!"하고 반겼다. 희원이는 "오늘은 뭐어를 좀 먹어볼까나아"하고 가락을 넣어가며 저녁거리를 고르고 계산을 한 뒤에는 꼭 건들거리며 다가와서 "가위 쫌 빌려주시죠잉"하고 레토르트 음식 포장을 잘랐다. 학원에 가기 전까지 한 시간 동안 시식대에 앉았다가, 이것저것 계산을 하며 너스레를 떨고, 또 먹고, 하다가 갔다. 처음에는 존댓말도 잘 못 쓰길래 사회적 기술이 떨어질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저 이름 기억해요?" 묻고서 내가 성을 틀리면 맞출 때까지 "땡!"을 반복하며 서운한 표정으로 기다리는 귀여움도 있었고, 어느 날은 오늘은 학원을 안 가는데 그냥 인사하러 왔다며 진짜 아무것도 사지 않고 인사만 하고 가서 살짝 감동을 받았다.


 일일 알바생을 쓴 적도 있다. 8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젤리를 한 봉지 사먹고 언니가 학원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며 앉아있다가, "심심해요. 제가 도와드릴게요"하면서 일을 시켜달라고 애교지게 졸랐다. 마지못해 유통기한 점검하는 법을 알려주고 개방형 냉장 칸의 유통기한 점검을 부탁했다. 아이는 까치발을 들어가면서 열심히 일했다. 날짜 보는 법을 잘 몰랐는지 자꾸 날짜가 한참 먼 것을 가져와서 묻기에 내가 다시 봐야겠구나 생각하긴 했지만. 나는 30분 동안 열일한 귀여운 알바생을 그냥 보낼 수 없어서 붕어빵을 세 개 사주었다. 아이는 자기와 꼭 닮은 언니 팔에 붙어 키링처럼 달랑거리며 가게를 나갔다.


 그렇게 아이들과 대화하고 노는 게 익숙해지면서 내가 왜 아이들 대하기를 꺼렸었는지 알게 됐다. 나는 아이들이 스펀지 같아서, 도화지 같아서 내가 얼룩을 만들까 봐 걱정스러웠던 것 같다.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부터 됐던 것이다.


 - 바람이는 초등학생들한테도 존댓말을 하네?


 스무살에 일한 편의점에서 점장님이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내가 "제가 어렸을 때 어른들이 존댓말을 해주면 좋았거든요"라고 대답하자 점장님이 신선한 충격을 받은 얼굴로 나를 봤었다. 그랬다. 어릴 때, 내가 어린이라서 어른들이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고 그게 싫은 순간들이 있었다. '어른들은 왜 그럴까? 자기들도 어린이였으면서.' 일기장에 그렇게 적었던 기억도 난다.


 편의점 계산대 앞에 어린 아이들이 줄서 있으면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끼어들어와서 계산을 하려는 어른들을 꽤 자주 본다. 나는 괜히 좀 언짢아져서 목소리에 힘을 주고 말한다. "먼저 오신 분부터 해 드릴게요." 그분들은 일부러 그런다기보다는 무의식에서 아이들을 중요치 않게 여겨서 무심코 그러는 것 같다. 그게 느껴지기 때문에 더욱 순서를 확실히 지켜주고 싶은 기분이 든다.


 이런 감정은 사실 모순적이다. 나 역시 다른 일을 하다가 어린이 손님이 계산을 해달라고 하면 어른이 나를 부를 때보다 서두르지 않게 된다. 요즘은 존댓말도 잘 안 쓴다. 존댓말로 "감사합니다" 할 때보다 반말로 "고마워" 할 때 아이들이 더 나에게 인사를 잘해주고 친근하게 대하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말이야 그렇다치더라도, 나이가 많은 것을 권력으로 쓰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아 내심 머쓱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동네 어른으로서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그 사실을 확실히 깨달은 계기가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일을 마치고 점포 옆에 세워둔 자전거를 타려고 보니 자전거 바구니에 담아둔 판초우의가 보이지 않았다. 비소식이 있어 챙겨온 비옷이었다. 점포에서 달아둔 CCTV가 자전거 위에 있기에 방심하고 바구니에 그대로 넣어둔 것이다. 비가 오니 누군가 들고 가 버린 모양이었다. 여러 번 익혜아에 방문해서 산 두꺼운 비옷이었고 추억도 있어서 그냥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사장님이 CCTV를 확인했다. 범인은 점포에 종종 오는 여자 중학생이었다. 내가 형사님이라 부를 정도로 수사력이 보통 아닌 우리 사장님은 어떻게 알음알음 그 애 가족의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그 애는 모르는 사람이라면 깜빡 속을 만큼 딱 잡아뗐다. "저 아닌데요??" 그러다 사장님이 CCTV 화면을 찍어 그 애에게 보내자, 결국 비가 많이 오는데 비옷이 눈에 띄길래 가져갔다고 실토했다. 죄송하다는 말 없이 "그거 얼마예요?"라고 물었다는 말을 전해듣고 나는 무척 놀랐다. 사장님은 그 애에게 내가 일하는 시간에 와서 비옷을 돌려주고 직접 사과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 애는 비옷을 곧바로 버렸으니 사다 주겠다고 하면서 계속 오지 않았다. 학원에 있다며 전화도 잘 받지 않아 나는 점점 더 화가 났다. 직접 통화를 했을 때도 사과는 듣지 못 했고, 점포로 오기로 한 날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겨우 중학교 2학년 학생이었지만 그래서 더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애의 부모도 교사도 아니다. 그러나 살면서 만난 어른 한 명의 역할이 인생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계속 연락했고, 한 번 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경찰에 연락할 수밖에 없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마침내 그 애와 다시 통화하게 됐을 때, 나는 최대한 차분하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별거 아닌 거 같은 그 물건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날 비옷이 없어서 내가 어떤 불편을 겪었는지, 그 애가 저지른 것이 왜 범죄인지, 물건값을 떠나서 사과를 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정직하지 않은 태도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그 애는 그제서야 사과했고,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내가 물건을 받은 건 그로부터도 한 달쯤 지난 뒤였고 점포에 와서도 그 애는 인사 없이 물건만 놓고 갔지만 말이다.


 사장님은 내 대응을 듣고 적절히 잘한 것 같다고 칭찬을 해 주셨다. 우리가 그 애를 다 바꿀 수는 없지만, 적어도 머릿속에 잘못된 개념을 만들어주지는 않은 거라고. 나도 다행스러웠다. 그 애를 정말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었고, 그 애가 조금이나마 변하려는 모습을 보여준 게 다행스러웠다. 내가 뭐라고. 그런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그렇게만 생각했다면 나는 귀찮음에 돈만 받고 지나갔을지도 모른다(어차피 돌려받은 것도 같은 상품이 아니었다).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던 건, 나이를 떠나서 사람이 사람에게 주어야 할 진짜 도움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 나는 '동네 으른'으로서 각성을 한 것 같다. 비록 내가 나이 먹고 내 한 몫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쭈구리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만,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존중을 요구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익히게 하는 일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을 보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줘야 하나 싶기도 하다. 일단, 계산대 앞에서도 이어폰을 끼고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느라고 내 질문을 못 듣는 아이들, 그리고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카드를 끼웠다 빼는 동작으로 계산을 마무리하는 아이들은 너무나도 많다. 키오스크가 일반화되면서 결제라는 과정이 사람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기계적인 작업으로 아이들 머릿속에 박히게 된 게 아닌가 짐작한다. 처음에는 이제 다섯 살이나 될까 싶은 어린 아이가 자연스럽게 신용카드를 꽂았다 빼는 것을 보고 놀랐었지만, 아이들의 세대는 그런 세대니까.


 그래서 조금씩 꼰대스러움을 발휘해본다. 대신, 아이들이 무안해하거나 반발심을 느끼지 않게끔 가르쳐주는 기술을 몸에 장착한다. 중요한 건,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면서 즐거운 리듬을 넣어 말하는 것이다. 한 장 한 장 4등분으로 꼼꼼히 접은 지폐 다섯 장을 올려놓고 기다리는 아이에게는 "다음에는 돈 펴서 주세요오"라고. 돈이나 물건을 던지듯 올려놓는 아이에게는 안타까운 얼굴로 "던지면 안 돼요오. 예의가 없는 거예요오"라고. 돈을 언짢을 정도로 한 손으로 내미는 아이에게는 "원래는 두 손으로 주셔야 됩니다아"라고. 반말인 줄도 모르고 '계좌이체'만 외치는 아이에게는 곤란하다는 듯 웃으며 "반말하지 말고, '할게요' 붙여 주세요오"라고 덧붙인다.


 그런 잔소리들의 뜻은 '너희들은 규칙을 따라야 해'가 아니다. '나도 존중받고 싶어. 나를 존중해 줘'라는 의미다. 어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못 들은 것처럼 행동하지만, 대부분은 당황하며 태도를 바꾼다. "네" 하고 대답하는 아이, 사과하는 아이, 하지 않던 인사를 하면서 나가는 아이, 거스름돈을 두 손으로 조심스레 받는 아이. 그럴 때 아이들은 스펀지이고 도화지라는 것을 다시 실감한다. 물론 중학생만 되어도 이렇게 고나리를 하기는 어렵고, 내가 오지랖을 뻗어보는 건 초등학생까지다.

 



 어쩌면 지금의 아이들은 남들보다 자기자신을 존중하기가 더 어려운 환경에 있는지도 모른다. 호석이가 남긴 말처럼 '험한 세상'에서 아이들의 하루는 어른 못지않게 힘들어 보인다.


 한 번은 초등학교 고학년 남자아이가 계산대에 커피를 올려놓고 갑자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 아, 진짜 힘들어요. 커피를 마셔도...(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 너네 커피 마셔??

- 네. 애들 다 마셔요.


 그러고서 아이는 바쁜지 정신없이 가게를 나갔다. 내가 초등학생 때는 커피를 마시면 큰일 나는 줄 알았고 대학에 가서야 마시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하긴 중고등학생들이 제일 많이 사가는 음료가 고카페인 에너지 음료이니, 초등학생이 공부하려고 커피를 마시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성적의 압박이 얼마나 크면 그럴까, 얼마나 힘들고 답답했으면 말도 안 섞어본 나에게 푸념을 했을까 싶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9화에는 편의점 장면이 길게 나온다. 초등학생 아이들이 학원이 끝나면 우르르 편의점으로 달려가서 삼각김밥이며 컵라면, 고카페인 음료를 사먹고 또 정신없이 다음 학원으로 달려간다. 지금의 점포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 똑같은 상황을 보고 놀랐다. 현실고증이 치밀한 드라마였구나. 아이들 주식이 다 컵라면과 소시지, 핫바, 삼각김밥, 튀김꼬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들 날마다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나에게 제일 많이 하는 질문은 "지금 몇 시예요?"다. 또 수시로 서로 묻는다. 몇 시야? 3시 49분. 야 1분 남았어! 학원 쉬는 시간에 잠깐 나온 것이다. 동동거리며 빨리 계산을 해달라고 재촉하고 카드 결제 완료를 알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스프링처럼 밖으로 튕겨나간다. 시식대에 자리가 두 개밖에 없는 우리 점포에서 전자레인지 앞과 아이스크림 매대 위에 컵라면을 두고 선 채로 식사하는 학생들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학교 방학기간에도, 심지어 주말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편의점에서 왁자지껄 떠들고 장난치는 아이들의 모습이 안쓰럽게도 보인다. 저렇게 넘치는 에너지를 학교와 학원에서 내내 억누르느라 애쓸 아이들. 하루종일 공부를 하면서도 느긋하게 몸에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아이들. 미래의 자신을 향해 전력질주하느라 현재의 자신을 위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그래도 편의점은 잠시나마 현재를 살게 해주는 공간인 걸까.


 결국 한정된 종류이긴 해도 많은 상품 중 그날 그 순간 자신이 먹고 싶은 것, 마시고 싶은 것을 고르는 게 그나마의 스트레스 해소법인 듯하다. 다들 너무 매워 우왕좌왕하며 바나나 우유를 입에 부어넣으면서 굳이굳이 불닭볶음면을 사먹는 것도, 한때 마라에 버무려진 곤약이 아이들 사이에 유행한 것도, 자극적인 맛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욕구가 한몫할 것이다.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순간 하나.


 겨울의 어느 날, 사장님과 같이 계산대를 보고 있었다. 검은 정장으로 잘 차려 입은 앳된 청년이 계산을 하러 왔다. 대부분의 학생들을 알고 지내는 사장님은 무심한 듯 말을 붙이셨다. 오랜만이다, 윤호야. 어디 다녀오길래 차려입었노. 장례식장에요. 동주가 죽었어요. 청년은 담담했다. 사장님은 깜짝 놀라 그의 팔을 잡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한참 뒤에 돌아온 사장님은 어두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동주는 재수생이었다. 공부를 무척 잘하는 학생이었는데, 원하는 대학에 떨어진 뒤 스스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했다. 어때부터 손님이어서 사장님도 자라는 것을 쭉 지켜본 아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그런 일로 죽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 학생에게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세계의 전부였을 거라는 걸.


 경쟁과 경쟁의 결과가 세상의 전부가 된 세상에서, 누군가를 믿는 게 약점이 되고 자신도 쉽게 믿을 수 없는 세상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계산대를 지나는 아이들을, 그래도 이내 웃고 떠드는 아이들을 본다. 올 때마다 주머니에서 젤리나 스티커를 하나씩 꺼내 내밀던 아이는 2년 사이 몰라보게 키가 크고 무뚝뚝해졌고, 교복을 입고 라면을 먹던 고등학생은 어느새 머리를 염색하고 담배를 사러 온다.


 그 애들의 삶에 동네 가게에서 몇 년 스쳐가는 어른인 나는 어떻게 남을까. 기억이라기보다 녹아서 마음속에 스며든 어떤 감정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서로 아무런 공통점도 없지만 월요일마다 친근한 인사와 근황을 나누던 어른. 유치한 장난에 파안대소하던 어른. 흐르는 피를 닦아주고 가지고 있던 밴드를 붙여준 어른. 물건을 사지 않아도 엄마를 기다릴 수 있게 자리를 내어주던 어른. 물건을 훔쳤을 때 자신에게 진심으로 충고해 준 그런 어른으로 녹아들었으면 좋겠다.


 점포 바닥에 실례를 하고 창피함에 울음을 터뜨려버린 여자아이를 껴안고 "괜찮아. 이모도 옛날에 그랬어"라고 얘기할 때, 그 말에 아이가 울음을 그쳤을 때, 나는 바랐다. 세상에는 부모님과 선생님이 아니어도 위로를 주는 어른이 있다는 사실이 아이들에게 흡수되기를.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게 세상이라고 믿게 되기를.



* 아이들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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