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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리여행가 하루켄 Oct 06. 2019

벌새, 은희에게 쓰는 편지

1994년, 그리고 2019년

은희에게

안녕, 영화를 보고 은희 학생을 알게 됐어. 깜짝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네.  아저씨도 그런 시절을 보내긴 했지만, 은희 학생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꺼같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편지를 쓰게 되었어.

아무도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들어줘도 이해받고 공감받지 못할 때의 느낌은 외로운거하고 다르잖아.  고통스럽지.  혹시 그런 마음이라면, 그 느낌은 아저씨도 조금은 공감 할 수 있을꺼같아.

“ 공부 열심히해야 훌륭한 사람된다. “
“ 어른 말씀 잘 듣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착하게 살아야 된다. “
“ 튀지말고, 좋은게 좋은거란다. “
“ 어른들 말, 하나 틀린거 없다 “

이런 말 많이 들었지 ?  뭐가 훌륭한 걸까 ?  뭐가 좋은걸까 ?  뭔 소리인지 마음에 다가 오지 않지.. 맞아.  아저씨는 그렇게 살아야 되는줄 알고 살았어.  은희는 남다른 감각과 예민한 감성을 가진것 같아.  남들과 다른 ‘촉’ 을 가지고 있고, 그걸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는 놀라운 재주를 가지고 있어.  아무도 은희 마음을 몰라주기에 세상에 홀로 있는것 같아서 외롭고, 두렵고 그러잖아.  그 마음을 그림일기로 그려보면 어떨까 ?  지금 은희가 겪고 있는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서 사람들과 공유하면 좋을꺼같아.  아저씨부터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지네.

한문샘 참 좋으신 분이야. 그치 ?
아저씨도 한문샘이 보고 싶네.  아저씨 중고등학교때 만약 한문샘 같은 분이 이야기를 들어주시기만 했어도,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진 않았을꺼같아.  

이야기를 하고 싶어질땐, 아저씨에게 메일 보내주렴. 아저씨가 은희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읽고 답장은 꼭 보내줄께…

은희야, 너는 재능이 많은 아이란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지만, 그 마음을 딛고 너의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아저씨는  믿는단다.   감기 조심 하렴.












사전에 어떤 내용인지 알고 보면 선입견이 생길 수 있기에 가급적 먼저 살펴보지 않고 극장을 찾는다.  

‘ 뭐지 ?  중학생들 로맨스 영화인가 ? ‘

학창시절 스토리는 좋아하지 않는다.  학창시절에 왕따를 당한것도 아니지만, 그 시절은 숨막힐 듯 답답했고, 학교가 정해놓은 규칙을 따르는것이 힘들었다.  영화를 지켜보는 동안 답답한 마음이 앞선다.  2시간을 어떻게 버티고 앉아 있을까 고민된다.




불편했나요 ?  어떤 부분이...

좀 깝깝했어요.  빨리 끝나서 영화관 밖으로 탈출하고 싶었어요.  좋아하지 않는 학교장르라서  그런건지 ? 여성의 섬세한 감정선을 이해하기 어려워서였는지 ?  잊고 싶어 봉인해두었던 학창시절의 추억이 소환되는것 같아서 불편했는지, 어느 한가지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네요. 다 섞여 있는것 같기도 하고.



학교때 문제학생이셨나요 ?

문제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그럴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요.  정학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무단 결석을 자주했으니까요.  고등학교때 복도끝 창고에 끌려가거 담임선생한테 따귀를 50대 맞았던 기억이 있네요.  이유가 건방지고 버릇없이 말대꾸한다. 였을꺼에요. 훗




힘드셨겠네요 ?  벌새에서도 그런걸 느끼셨나요 ?

영화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히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두 장면이 기억에 남네요.  아파트 호수를 잘못 찾아서 다른 집 초인종을 계속 누루고 엄마를 부르는 장면, 두번째는 길에서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며 엄마를 끊임없이 부르는 장면.  처음에는 엄마가 우울증인가 ? 하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은희의 간절한 욕구를 표현한거 아닌가 싶어요.  그 장면을 보고 생각이 들었다는건, 저역시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을 간절히 찾았던것 같네요.  



영화속 캐릭터

은희 캐릭터를 보면 감성적인 부분과 이성적인 부분이 함께 있는 성향같아요.  WPI심리에서는 M자 모양의 프로파일이기에 M자 유형이라고 불러요.  감수성이 풍부하면서 남들과 다른 똘끼가 있기에 자신을 잘 드러내면 예술적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어요. 역시 영화에서 은희는 만화 그리는데 재능과 관심이 있더군요.
남과 다른 재능을 지닌 은희의 주변 상황은 전형적인 한국사회죠.  이 부분이 가장 불편했던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여성분들은 벌새를 보며 공감하는 부분이 많은것 같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이뤄지는 가족간의 폭력,  폭력성은 꼭 물리적인 것만 해당되는건 아니다. 그런 폭력에 익숙해지며 그 책임을 자신에게로 돌려 자책과 자학을 하는 경향을 보인다.  남녀로 구별하기 보다는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느끼게 된다.



남들에게 버젓한 모습을 보여줘야 되기에 항상 남 눈치를 보고 전전긍긍하지만, 집안에서는 통념에 따른 가치관으로 가족들을 권위적으로 대하는 아빠.   집안 형편이 안 좋았지만 예쁘고 착했던 엄마는 성실하게 일하는 청년 아빠를 만났고, 그와 함께 살면 행복할꺼라 믿었다. 장사하며 아이 키우느라 세월을 다 보내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야되는지도 잊은채 하루 하루 살아간다.  바람피는 남편을 알고도 모른척 할 수 밖에 없다.  진학을 앞두고 있는 아이와 사춘기 애들을 두고 이혼을 하면, 혼자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  


이혼해. 라고 말할 수도 없다. 답답하네. 가슴을 짓누르는 깝깝함.


영화 <벌새> 를 보며, 내 숨통을 튀워주는 캐릭터는 한문샘.  이 분의 등장이 몇분만 더 늦었더라면 난 질색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감독의 연출은 탁월했다.  날 살려준 감독.


‘ 와, 누구야 ?  이분.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매력있다. 개성있어. ‘


김새벽 배우. 쨍하네.  벌새에서 은희를 비롯한 출연 배우들의 연기가 탁월한 것이야 말할것도 없지만, 그중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건 단연 김새벽 배우.  꼭 기억해둬야지.


이 땅의 모든 은희들이 그랬겠지만, 내 얘기를 들어줄 한문샘이 한 분만 계셨더라도, 그 시절을 그렇게 힘들게 보내지 않았을것이다.  근데 그게 어디 그 시절에만 국한된 이야기겠는가 ?



이 영화는 참 좋다.

꼭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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