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인들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그곳
오사카 난바에서 우메다 방향으로 지하철로 몇 정거정 가면 되는 곳. 난바에서 시작된 긴 상점가의 끝부분에 해당되는 지역이 혼마치 역 부근이다. 10년 동안 혼마치 역 부근은 매번 출장 오면 업무차 거래처에 방문했다. 거래처 담당자와 식사하기도 하고, 차를 마시면 노닥거리도 하는 곳. 나에게 혼마치 역 부근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이다.
일본 상품을 수입하며 보냈던 그 10년의 길. 이번 여행에서는 거래처 사람을 만나지 않고 오로지 선술집 투어만 한다. 1차로 우메다 부근의 후쿠시마 다치노미야에서 얼큰하게 술을 마셨다. 과음하지 않기로 했는데 재미난 술친구를 만나서 기분 좋게 마셨다.
2번째로 찾아간 곳은 혼마치 역 부근의 로바다야끼 '와코'. 구글맵을 돌렸는데 그 술집의 위치가 가늠이 안된다. 뭐지? 그 길에 이런 술집이 있었다고? 어, 이상하다. 그런 술집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근처에 이런 술집을 본 적이 없다. 구글맵이 알려주는 곳으로 찾아갔다.
없다. 뭐지? 그 봐라. 없다니까. 말도 안 되는 위치가 술집 위치라고 표시한다. 구글맵이 미친 거다. 황당하다. 설마 저 도깨비 굴 같은 담벼락 사이에 있다는 건가? 괜히 잘못 들어갔다가는 돈 탈탈 털리고 나올 거 같은 굴속 같은 비닐장막을 걷고 들어가 본다.
있다. 일본인들 인스타에서 본 그 사진 그대로다. 그럼 그렇지. 이런 희한한 장소에 있으니까 내가 못 봤지. 이런 장소에 영업허가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허리우드 극장 뒤편에 할머니가 하는 전봇대 집이라는 밀주집이 있었다. 고등어구이 한 접시와 두당 막걸리 한통. 안주도 없고, 술 추가도 절대 안 된다. 어두컴컴한 그 술집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마셨던 기억이 있다. 지금 오사카에서 마주하는 이곳이 딱 그런 분위기다. 도깨비라도 한 마리 나타날 것 같은 요란한 인테리어, 그래 오사카 도깨비랑 한잔 마셔보자.
스미마셍. 일본에서는 이 한마디만 다 해결된다. 뜻이야 미안합니다.이지만 실례합니다. 의 의미로 쓸 때도 있고, 고맙습니다. 의 의미로 쓸 때도 있다. 나 같은 초급 일본어 실력으로도 얼마든지 그 뉘앙스를 이용해서 대화가 가능하다. 재빠르게 둘러보니 화로가 놓여있는 좌측 편 카운터 자리에는 남녀 커플이 각 2팀이 앉아있고, 회사 퇴근하고 온듯한 양복을 입은 40대 아재들 3명이 시끌시끌하게 술을 마시고 있는 중이다.
카운터 쪽에 딱 한자리 비어있다. 이런 행운을 마다할 수 없지. 직원에게 살짝 눈치를 하자, 자리를 만들어 준다. 오호, 됐다. 주인장이 화로에 해산물을 구워서 나무 삽자루로 건네주는 이 자리가 바로 명당자리다. 세상에 있는 모든 걸 다 구워 내줄 수 있는 분위기다.
뭘 먹지? 마음이 바빠진다. 슬쩍 옆 사람들 먹는 것을 보니, 고기나 햄을 먹는다. 고기는 별로 당기지 않는데, 뭘 먹지? 오호, 이거다. 읽을 수 있는 일본어 메뉴가 몇 개 없지만 '붕장어'가 보인다. 장어 대신에 아나고라도 한번 먹어보자.
어마 무시한 일본어 한자들, 애써 읽으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 손가락으로 먹고 싶은 것 가리키면 되지. 오사카에서 음식 먹을 땐 ' 오스스메, 쿠다사이 ' 요걸로 끝이다. 추천해주세요, 사실 이것만큼 막연한 말이 어디 있는가? 한국에서 음식 시켜 먹을 땐 난 추천해달라는 말을 거의 안 쓴다. 내 취향을 모를 텐데, 무슨 추천을 해줄 수 있을까? 난 취향대로 먹는다.
오사카 여행 와서는? 추천해준 음식을 먹는 재미가 또 쏠쏠하다. 랜덤으로 먹는 맛이랄까? 어차피 어떤 게 맛있는 것인지 모르고, 또 해외여행 왔으니 전혀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고 싶기도 하다. 나에 오사카 여행은 그런 해방감을 선물하는 장소였다. 아, 그랬구나. 10년간 업무를 핑계 삼아 자주 들락날락거렸던 오사카. 나를 버티게 해 준 힘을 준 곳이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때의 이야기를 새롭게 창조해보자. 그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거나, 의식하지 못했던 일들. 나의 관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한번 생각해볼까?
자정이 지난 시간, 0시 15분. 시간이 깊다. 이 늦은 시간에 이런 비밀스러운 장소에 모여서 술을 마신다. 쥔장을 이방인이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쥔장:
한국사람인가? 용케도 알고 왔네. 혼자 여기 오기 힘들었을 텐데. 일본말할 줄 아나? 오사카에 사는 사람인가? 수첩에 열심히 써 놓은걸 보니, 여행 왔나 보네. 몇 달 동안 한국손님이 온 적이 있었던가? 쇼텐가에서 일하는 킴상이 친구들하고 한번 왔었고, 처음인가? 한국 관광객들 오면 어떻게 대해야 하지? 영어메뉴판이라도 하나 만들어야 하나? 자리가 좁아서 새 손님 받기도 좀 그렇긴 하네. 붕장어 맛있게 해 드려야겠네.. 네? 츄하이요? 요~오, 츄하이 히토쯔 ~
" 아나고하고 생맥주 주세요 "
" 머리는... &*&&*&*&(* ? 할까요?"
무슨 말일까... 머리를... 어쩌란 말이지? 알아들을 수 없는데 분위기상 머리도 먹을 거냐? 아니면 머리도 구워줄까? 뭐, 이런 분위기 아닐까 싶다. 사실 지금도 그 의미가 뭔지 모르지만 우린 느낌으로 이야기하니까. 아나고 구이가 나오기 전에 생맥주를 2잔이나 비워버렸다. 술이 워낙 시원하고 맛있기도 하지만 마스터가 꼼꼼하게 아나고를 굽는 바람에 술이 벌써 알큰하게 달아오른다.
생맥주, 츄하이, 아나고는 고소하고 씹히는 느낌도 있었고, 레몬을 조금 짜서 먹으니 상큼해서 몇 번 집어먹으니 금방 없어졌다. 2차 밖에 안됐는데 벌써 취기가 오른다. 더 이상 여기서 달려서는 안 될 거 같아서
마스터에게 계산을 의뢰하면서 내 단골 멘트를 또 한다.
" 저기요, 부탁이 있는데요. 한국에서 온 관광객인데요, 분위기 너무 좋아서 기념으로 사진 좀 찍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
" 그럼요. 좋아요. "
" 저기요, 마스터랑 같이 찍는 것도 가능할까요? "
" 저요? 네. 좋지요. 여기보다는 밖이 더 좋아요. 저기, 사진 좀 찍어줄래요? "
손님이 꽉 차서 구이를 조리하게도 바쁜데 주방에서 일부러 나와서 함께 포즈를 취해주신 마스터,
역시 얼굴은 좀 무섭게 생겼지만 자세히 보면 은근히 귀여운 면도 있고, 말이 좀 무뚝뚝하지만
친절하고 미소도 잃지 않는다.
마스터 신비주의 같아서 얼굴은 가려드리고 한다.
" 한국에서 오셨군요. 너무 고마워요 "
" 네, 꼭 와보고 싶었어요 "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틈을 이용해서 비닐로 만들어진 기괴한 모양의 식당. 도저히 이런 위치에
이런 주점이 허가가 나올 것 같지 않은데 영업을 하고 있으니 대단하다. 작은 점포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단점을 단점으로 생각하지 않고 단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활용하는 멋진 아이디어가 놀라웠다.
이런 분위기의 주점은 돈으로 만들어낼 수도 없고, 오직 이 위치에서만 가능하고, 또 술집의 분위기를 든든하게 지탱해주는 마스터가 이 곳을 만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수 없이 지나다녔던 혼마치 길이지만
별다른 추억이 남아있지 않는 거리인데, 이날 로바다야끼 '와코'에서 마스터와의 짧은 대화는 앞으로도 계속 기억에 남을 것이다.
코로나때문에 재택하고 계시죠?
저는 요즘 매일 스쿼드 1세트 (4,3,2,1회) 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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