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운동이란 것을 해본 기억이 거의 없고, 몸 움직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 얘기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참 막막하다. 빠르면 올해 11월 후쿠오카 마라톤이나 고베 마라톤 풀코스 신청을 넣어볼 생각이다. 세상에! 풀코스라니... 내 체력과 근력으로 풀코스는 정말 쉽지 않다. 내 나이 올해로 50대 후반이 되니 없던 근력도 슬금슬금 빠져나간다. 작년 초부터 10 km 마라톤 준비를 하면서 계속 러닝을 하지만 일반적 기준에서 보자면 슬로우 러닝 수준. 1 km 평균페이스가 7:50 에서 8:10 사이를 오간다. 따라서 10 km 완주시간은 매번 1시간 20분 정도. 조금만 늦으면 컷오프에 걸려서 완주하지 못할 수도 있는 정도의 실력이다.
" 왜 일본 풀코스 마라톤 하려고요? "
무한도전, 런서울런, 마블 마라톤 이렇게 3번의 10 km 마라톤을 완주했다. 뿌듯하다. 이런 게 성취의 맛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한참 마라톤에 맛을 들였는데 작년 가을 갑자기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꼬박 6개월투병 생활하며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때 깨닫게 된 중요한 사실! 마라톤을 뛰면 머리가 맑아지고 복잡했던 사고의 흐름이 정리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마라톤을 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 점점 머리가 무거워지고 판단이 흐려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의학계는 이를 도파민으로 설명한다. 기대이상의 효과가 나온 것은 더 하게 하고, 기대이하의 성과가 나온 것은 하지 않게 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성과를 만들어 가는것이 도파민 작용이라고 말한다.
하루하루 일상에서 뿌듯한 성취감이 온몸을 휘감는 것을 체감했다. 술 마시면 기분이 좋아져서 계속 술을 찾게 되듯 마라톤은 계속 뛰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알코올이 만들어내는 도파민은 건강하지 못하지만, 마라톤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도파민은 삶을 건강하고 싱싱하게 활성화시킨다.
" 저기요, 근데 왜 일본 풀코스 마라톤을? "
맞네요. 미안요. 국내 10 km 마라톤 제한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겨우 겨우 시간 안에 들어오는데, 하프마라톤 경우 2 배수하면 3시간이 돼야 하지만 오히려 30분이 줄어서 2시간 30분이 대부분이다. 풀코스 경우는 최소한 6시간은 돼야 하는데 5시간 밖에 되지 않는다. 나 정도의 평균페이스로 뛰는 러너들은 아예 참가 신청조차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일본 도쿄마라톤, 오사카마라톤, 후쿠오카마라톤, 고베마라톤 풀코스 경우 컷오프 타임이 7시간이다. 이 정도라면 한번 뛰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런 현실적인 이야기가 그 첫 번째이고, 사실 나에게는 두 번째 이유가 더 진하다. 그동안 거의 20년간 일본 오사카, 도쿄를 오가며 수입유통업을 하면서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의 시간을 보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노력한 중요한 시간이었지만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의미를 상실하거나 혼란스러워서 힘들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기 싫어서 네이버 N드라이브에 저장된 일본 사진들을 들쳐보지도 않고 내 팽개쳐두었다. 과거를 묻어 버리고 싶었다. 8년 전에 심리상담을 받았고 좀 더 체계적으로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려 심리상담코칭, 심리상담전문가과정을 마쳤고 1급 심리상담사 자격증까지 받으며 심리를 공부했다. 양파 껍질 벗겨내듯 내 속에 있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알고 싶어서 에세이를 몇 년간 천권 넘게 읽었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나를 옥죄고 있던 통념의 사슬을 풀어낼 수 있었다.
사고의 편린처럼 내 머릿속에 마구 떠다니던 생각을 실로 엮어내듯 정리해 준 것이 바로 마라톤이다. 뛰는 순간 느끼는 고통 때문에 수없이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 과정을 견뎌내면 새로운 나를 만나게 해 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시치프스 신화 속의 시치프스는 산정상을 향해 끊임없이 돌을 굴린다. 정상에 거의 올랐을 무렵 새떼의 공격을 받아서 손을 놓치면 바위는 또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다시 또 돌을 정상으로 굴리는 의미 없는 행위를 계속 반복한다. 내 지난 세월의 상당 부분은 시치프스처럼 의미 없는 행동으로 연명하듯, 때로는 장난하듯 아무런 목표 없이 산발적으로 살아왔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기에 이 생각을 하는 것이 참 고통스러웠다.
그렇지만, 마라톤을 하면서 지난 과거의 시간이 재편집되는 것을 느꼈다. 영화 인셉션에서 꿈속에서 파리시내가 뒤틀리면서 세상이 거꾸로 재구성되는 것 같은 지각변동이 느껴져서 신기했다. 마라톤의 효과를 말로 표현하기 참 힘들다. 모든 사람에게 이 같은 느낌이 다 적용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감성적이지만 때로는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예술적인 것을 좋아하면서 새롭게 창조적인 것을 좋아하는 상반적인 성향이 공존하는 성향의 사람이라면 내 얘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럴 거면 혼자 살라고 말하는 당신에게> 최민지 작가의 글에서 마음에 콕 박히는 글을 발견해서 마라톤에 대한 글을 써야지하는 마음이 생겨서 이 글을 썼다. 나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하는 좋은 책이라 생각하기에 추천한다.
"내 관심사와 세상의 관심사가 만나게 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나 자신에게 더욱 가까우지는 것 " 멋진 표현 아닌가?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도록 그 간격을, 포인트를 찾는 노력을 통해서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분명하게 규정할 수 있게 될 것이라 나 또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