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창작수업-최옥정

by 글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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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창작수업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바버라 베이그의 하버드 글쓰기 강의,

이만교의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에 이어

내가 읽는 네 번째 작법서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기술서가 아니다.

뭐랄까?

사람의 심장을 조용히 덥혀주는,

그런 무엇이 있다.


가슴을 콱 치는 문장들이 있어서

조심조심 읽게 된다.

자칫하면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책을 덮고 한참 멍하니 있어야 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 책은

요리를 위한 레시피북도 아니고

계량스푼이나 저울 사용법을 알려주는 책도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책 같다.


"잠시만요,

일단 당신의 심장이 제대로 뛰고 있는지 먼저 볼게요.

사랑이 없다면, 사랑했던 순간은요?

그것도 없어요? 그렇다면 절망했던 순간은요?

위로받고 싶었던 순간은요?

잘 생각해 봐요! 당신의 요리는

바로 그 순간으로 건네지는

깊은 위로가 될 테니까요."


걷던 길을 멈추게 하고,

뒤돌아보게 하며

생각하게 했다.


글쓰기를 알려주는 책이

이렇게 감동적이고 깊이가 있는 것에 놀랐다.


감히, 덧붙이자면..


위로가 필요하다면 글을 써라.

글을 쓰고자 한다면 꼭 이 책을 읽어라.


이 책을 읽는다면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화룡점정에 해당하는 것이 작가 서문이다. 작품을 완성해 놓고 각고 끝에 마지막으로 용의 눈동자에 점을 찍는다. 나만 해도 작가 서문을 쓰기 위해 며칠 동안 고심한다. 무슨 말을 써야 소설에서 다 보여주지 못하고 빠뜨린 퍼즐 한 조각을 채워 넣을 수 있을까. 완성이라는 도장을 찍어 세상에 내보내는 모자란 소설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전할 말이 뭐가 있을까. 여태까지의 작업과 생활과 생각을 전부 점검한다. 그러고 나서 어깨에 약간 힘을 준다. 겸손한 마음으로 쓰려고 노력해도 어쩐지 서문은 폼을 잡고 쓰게 된다. 나는 스스로 서문을 잘 쓴다고 자부할 만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곳에 압축해서 표현한다.

소설창작수업 p246


맞다. 최옥정 작가님의 서문은
책을 덮게 만들 정도로 깊은 울림이 있었다.


나는 긴 손잡이가 달린 거름망을 쥐고
밤새 엎드려 내 인생을 뒤졌다.

혹시나 건져낼 만한 게 있을까 싶어서.
내가 어디서부터 삐뚤어지고 꺾였나
알고 싶어서.

아니,
내가 인생에서 도망친 때가 언제였는지
알고 싶어서.

내가 마주하기 싫은 그 시절,
그 인물과 사건을
기어이 마주하게 하는 당신
대체 누구인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는,
다시 책을 펼쳤다.


<소설창작수업>을 낸 뒤 많은 독자들에게 피드백을 듣고 학생들에게도 독후감을 받았다. 그들은 궁금한 것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았다. 그 사이 소설에 대한 나 자신의 생각이나 태도도 많이 바뀌었다. 바탕이야 큰 차이가 없겠지만 발표한 소설이 쌓여갈수록 소설의 속살을 보게 되었고 이러저러한 사연도 보태졌다. 인생의 복병은 언제나 나보다 한 수 위였고 고통의 시간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내 주변에도 위로받을 사람과 치유받을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이 현실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의 모습이다. 얼마나 많은 할 얘기가 가슴을 짓누를 것이며, 얼마나 간절히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할 사람을 찾아 헤맬 것인가. 삶은 늘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고 또한 소설을 쓴다.

소설창작수업 p5



이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책을 통해 말을 거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인생으로 조용히 곁에 앉아주는 것 같은 순간을 만나게 된다.

이 대목이 그랬다.


"삶은 늘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읽고 또 쓰는 것이라고.


나는 한동안 이 문장 앞에 앉아 있었다.

어쩌면 내 삶도 누군가의 가슴을 짓누르고

상처를 주었겠지.


언젠가 이야기로 연결되고 싶다.

가만히 곁에 앉아주고 싶다.

이젠 당신을 이해한다고, 나 또한 미안했다고.


그것이 우리가 창작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고,

글을 쓰고자 하는 당신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일 것이다.


문장으로 치환되지 않는 생각은 창작에서 아무 쓸모도 없다. 무대에 서지 않고 대본 연습만 하는 배우와 똑같다. 한 줄 대사라도 무대에 올라가서 읊어야 배우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서툰 문장 하나가 멋진 생각 열 개보다 낫다. 대개 습작생의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고민하고 생각하고 독서하고 작법 공부를 하는 것은 얼마든지 편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마주 보고 자기 문장을 만드는 것은 불편하다 못해 두려워한다. 창작을 시작한 지 오래되었는데 등단하지 못하거나 작품이 늘지 않는 사람은 다 이 부분에 걸린다. 무조건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한 문장을 쳐라. 그것이 창작의 첫 단계, 가장 결정적 순간이다.

소설창작수업 p22


책장을 몇 장 넘기지 못하고,
나는 또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렀다.


결국 지난 5월에 써두었던
『세기말, 하루키를 찾아 떠난 여정』 초고를 열어
수정 작업을 시작했고,

이어서 『노엘 이야기』 첫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루키가 오픈AI의 서버실로 끌려가며
글로리아와 헤어지는 장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터진 핵전쟁,

인공지능과 인간의 실험체인 글로리아가
지하 벙커로 안내되는 장면까지—


나는 수정 작업을 하며
그동안 왜 그 원고를
오랫동안 방치했는지 깨달았다.


핵전쟁, 지하 벙커, 인공 정자, 생체 실험—


그 모든 것에 대해
나는 아는 게 너무 없었다.

아는 게 없으니 쓸 수 없었고,
쓰지 않으니
문장이 좋아질 리도 없었다.


작가는
실패와 좌절, 절망을 그려냄으로써
독자와 어깨동무를 하거나
조용히 위로를 건넨다.


하지만 내 문장은
그 자체가 절망이고 실패였다.


나는 결국 알게 되었다.

모르는 것을
결코 쓸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글쓰기가
그렇게 두려웠던 것이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문장을
감히 내놓을 수 없었기에,

내 양심은
키보드 앞에서
손을 멈추게 했던 것이다.


그래, 써보니까 알겠다.

왜 공부가 필요한지,
왜 연습이 필요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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