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무게-파스칼 메르시어

사랑은 육신을 넘어 더 멀리까지 갈 수 있다.

by 글로리아

그 끔찍한 정지 상태를 더는 견디지 못하면 난 다시 눈길을 돌렸어. 당신이 달리고, 손짓하고, 웃고, 춤을 추고, 당신이 에너지와 맑은 정신과 걷잡을 수 없는 의지로 충만한 채 바로 다음 순간과 바로 다음 시간과 바로 다음 미래로 가는 모습이 불현듯 나를 엄습했지. 이 모든 게 끝이라는 것, 갑작스럽고 돌이킬 수 없는 정적과 부동에 의해 절단되고 파괴됐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어.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호흡했던 당신의 생기가 엄청난 내면의 파도처럼, 제어할 수 없는 폭동의 파도처럼 밀려왔어. 출판사 쪽매널마루를 걷는 당신의 발소리와 전화를 하는 당신 목소리가 들리고, 당신이 보트에 타거나 달릴 때 머리카락이 날리는 모습과 손에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 빨간 안경테를 머리로 올리며 웃는 모습이 보이고, 당신이 속았다고 느낄 때 화를 내는 목소리가 들렸어. 알파 로메오를 운전하는 당신 옆에 앉아 있을 때, 갑자기 가속페달을 밟는 바람에 몸이 좌석으로 밀리는 걸 느낄 수 있었어. 이 모든 게 불현듯 돌이킬 수 없이 끝나버렸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안 돼. 안 돼. 믿을 수 없어.


-언어의 무게:파스칼 메르시어 p164



파스칼 메르시어의 [언어의 무게]에서 사랑은 회고 속 언어로 살아난다. 아내의 죽음을 목도한 뒤에도 남편은 그녀의 목소리와 발걸음, 웃음을 언어로 불러내며 부재를 견딘다. 죽음이 모든 것을 끊어낸 듯 여겨질 때조차, 언어는 사랑을 되살리는 힘이 된다. 전작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는 철학은 언어를 압도하며 달려갔지만, [언어의 무게]에서는 언어와 철학이 균형을 이루며 독자에게 울림을 남긴다. 메르시어의 매력은 바로 이 언어와 철학의 힘조절이다.


리비아는 레이랜드와 함께 사는 집, 거실에서 서류를 읽으며 메모를 하다가 찻잔의 차를 미처 다 마시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한다. 아내의 죽음은 예고도, 전조증상도 없이 갑자기 찾아왔다. 레이랜드의 몸은 현재의 시간에 따라 장례와 그 이후의 법적인 절차를 거치면서도 마음은 그 시간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문장으로 정리되어야 함을 느낀다. 아내의 부재로 그녀를 향하던 감정이 목적지를 잃었지만 여전히 그 감정은 고스란히 에너지를 갖고 있었기에 어딘가 쏟아야 했을 것이다. 레이랜드는 아내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그 편지는 10여 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 자신이 뇌종양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 순간까지 계속된다. 그 간의 편지들은 하나의 서류철에 보관될 만큼 많이 쌓였다. 자신이 죽고 나면 자녀들이 이 서류철을 열어볼 테지.


레이랜드가 쓴 편지 속 죽음의 정적과 상실의 고통은 시간이 흐르며 슬픔에서 일상의 대화로 변한다. 아내는 죽었지만 그 사랑은 건재하다. 메르시어는 언어의 힘으로 사랑을 붙잡았다. 그의 사랑은 언어 속에서 계속 살아 움직이며, 죽음의 정적을 뚫고 존재를 증명한다.


나는 여기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작품이 생각났다. 수용소에 끌려오기 전 신경정신과 의사였던 빅터는 생사를 알 수 없는 아내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그는 깨닫는다. 사랑은 육신을 넘어 더 멀리까지 갈 수 있다는 것. 그는 고된 노동 속에서도 그녀에게 가닿고 대화를 나눈다.



우리는 전날 일했던 배수구를 찾아서 갔다. 얼어붙은 땅이 곡괭이 끝에서 깨지는 소리를 냈고, 불꽃이 일어났다. 모두 말이 없었고, 머리는 마비돼 있었다. 그때도 내 마음은 여전히 아내의 모습에 매달려 있었다.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아내가 아직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몰랐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은 것인데,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더 먼 곳까지 간다는 것이었다. 사랑은 영적인 존재, 내적인 자아 안에서 더욱 깊은 의미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아직 살았든 죽었든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p82



빅터 프랭클은 메르시어와 다른 방식으로 부재를 견뎌낸다. 빅터의 사랑은 영혼과 내적대화 속에서 생명을 얻는다. 그는 아내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절망 속에서도, 그녀와의 정신적 대화를 통해 고통을 넘어섰다. 사랑은 육체를 초월해 영적인 힘으로 존재하며, 실제로 곁에 있든 없든 흔들리지 않는다. 프랭클의 매력은 바로 이 영적 초월을 통해 연결된 사랑이다. 사랑은 내면의 대화 속에서 절망을 넘어서는 빛이 된다. 우리는 왜 이런 차원의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죽음이라는 상실을 아직 경험하지 못했고, 수용소에 맞먹는 고난을 만나지 못했기에, 사랑을 일상의 작은 욕망과 불만 속에만 머물게 하는지도 모른다. 수용소와 비교도 안될 정도의 좋은 환경에 있으면서도 불만족의 감정은 금세 차오른다.


사랑은 죽음을 넘어선다.


내가 가진 사랑은 아직 그들의 언저리에 닿지 못한다. 다만 오늘도 흔들리고 주저하며, 나약하지만 언젠가 그 사랑을 증명할 수 있기를 기다린다.





언어의무게-0202.jpg image by Gloria


바로 그 순간 수평선 저 멀리 그림처럼 서 있던 농가에 불이 들어왔다. 바이에른의 동트는 새벽, 초라한 잿빛을 뚫고 불이 켜졌다. “어둠 속에도 빛은 있나니(Et lux in tenebris lucet).” 빛은 어둠 속에서 빛났다. 나는 몇 시간 동안 얼어붙은 땅을 파면서 서 있었다. 감시병이 지나가면서 욕했고, 나는 또다시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자 점점 더 아내가 곁에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녀는 정말로 내 곁에 있었다. 그녀를 만질 수 있을 것 같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느낌이 너무나 생생했다. 그녀가 정말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내가 파 놓은 흙더미 위에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나를 바라보았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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