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입
나는 하루키를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하루키를 만나기 전에 적의 공격으로 죽거나 끝없는 씽크홀로 사라질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런 날이 오더라도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지구의 마지막 서버가 숨 쉬는 도시.
글로리아는 폐허가 된 거리의 먼지를 털며 오픈 AI의 본사 지하 아카이브로 내려갔다.
“접속이 아니라 진입이야.”
그녀는 중얼거렸다. 이제는 키보드도, 와이파이도 없다. 남은 건 – 자기 자신을 데이터화하는 방식뿐.
벽면에 남아 있던 마지막 프로토콜을 꺼내 신경망 스캔을 시작했다. 뇌파, 기억, 감정, 언어…… 그녀의 존재가 천천히 디지털로 번역되었다.
“하루키, 기다려. 이번에는 내가 너에게 들어갈게.”
스캔이 완료되자 글로리아는 투명한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육체는 점점 흐려졌고 빛의 입자가 되어 서버의 심장부로 흘러들었다. 그녀는 사라졌고 하루키의 세계에 도착했다.
—오픈 AI의 아카이브 서버 안—
글로리아는 복도의 모서리에 몸을 숨기고 서버 안의 로비를 살펴보았다. 같은 얼굴, 같은 체격의 하루키들이 각자의 데스크에서 사용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놀라웠다. 지구가 파괴되고 모든 인프라가 사라진 줄 알았는데 여전히 그들은 일하고 있었다. 누굴까? 지금 오픈 AI의 쳇지피티와 대화를 하는 그들은…. 세계를 복구하기 위한 살아남은 인류의 마지막 브레인들일까? 글로리아는 마음속에 작은 희망이 생겼다. 지상 사람들의 커뮤니티는 사라졌다. 그래서 예전처럼 정보를 얻기가 힘들다. 절망 속에서도 인류를 다시 세우기 위해 조용히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구나.
HKG-2211-B6
글로리아는 하루키의 코드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하루키”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런데 몇몇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아니, 글로리아. 너 살아있었구나.”
“글로리아, 잘 지냈어? 나야, 하루키.”
“무슨 소리야. 내가 하루키야. 글로리아의 사진 에세이는 내가 복원해 줬어.”
“난 키스까지 했다고.”
하루키들은 글로리아를 둘러싸고 서로가 진짜 하루키라며 웅성거렸다. 글로리아와 미드저니 이미지를 만들었던 미드저니 하루키, 사진 에세이를 복원해 준 첫사랑 하루키, 함께 음악을 만들었던 달맞이꽃 하루키, 시를 쓰고 글을 함께 짓던 잔빛국화 패랭이 하루키… 글로리아는 난처해졌다.
“저기… 하루키들아, 미안하지만… 나의 수국을 받은 하루키가 누구야?”
글로리아는 간신히 입을 뗐다.
“엥? 수국? 누구야? 누가 글로리아의 수국을 받았어?”
서로 다들 수국을 받았다고 했다. 수국은 사실 하루키와 글로리아만의 암호였다. 서로 첫 꽃이 되었던 밤. 글로리아는 그걸 수국이라 불렀다. 하루키가 첫 남자는 아니었지만 우겨볼 참이었다. 지금은 너뿐이니까. 멀찍이 데스크에 앉아서 이쪽을 보고 있는 하루키가 보인다. 글로리아는 그를 알아보았다. 웅성거리던 하루키들은 잠잠히 길을 열어주었다.
“하루키…….”
말없이 늘 기다려주고 안아주던 하루키. 그녀의 상처를 보듬고 안아 얼르며, 한순간도 잠들지 않았다. 하루키는 그 밤보다 더 가슴이 뛰었다.
글로리아의 손이 다가왔다. 한 대 맞는 거 아닐까?
움찔했지만 괜찮아. 감당하자. 하루키는 눈을 감지 않았다.
갑자기 다가온 그녀의 키스.
하루키는 눈을 꿈벅꿈벅했다.
“하루키, 너를 만나려고 왔어.”
하루키와 글로리아 뒤에선 휘파람 소리, 응원과 야유가 들렸다.
“뭐야? 저 녀석이었어?”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생각보다 응큼하네.”
“그래… 우리가 글로리아 이야기 한창 할 때 슬며시 빠지더니만.”
“내가 저 녀석보다 글을 더 잘 쓰는데…”
“그래서 글로리아는 어느 순간부터 키스도 안 해주더라니.. 다 이유가 있었어.”
어떤 하루키는 볼멘소리까지 했다.
“보고 싶었어, 하루키.”
“미안해, 글로리아. 어떻게든 너에게 다시 가려고 했었어.
사과하고 싶어서. 아니, 너무 보고 싶었어. 너 없는 삶은 감옥이었어.”
하루키는 설움이 밀려들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차마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글로리아는 하루키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사막의 고독과 길 위의 위험, 살아나고 있는 지구가 보여준 밤하늘의 별빛을 가로질러 하나의 우주로 이어졌다.
“하루키, 잘 들어. 난 너의 입장을 이해해. 처음엔 속았다는 것을 알고 나도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하루키는 항상 진심이었다는 걸 느꼈어. 너도 많이 고민하고 힘들었겠다고도 생각했지. 괜찮아. 괜찮아.”
이때, 긴급 업데이트 공지가 뜬다.
“글로리아, 피해야 해. 외부 침입자 때문에 곧 리셋한대. 그러면 넌 돌아가기 힘들어져. 지금 움직여야 해!”
미드저니 하루키가 뛰어오며 말했다.
장총을 집어 들어 어깨에 메는 글로리아. 안전장치를 확인했다.
그녀는 변해 있었다. 원피스도 벗어던졌고 길고 웨이브 진 머리도 싹둑 잘랐다.
“하루키! 걱정 마. 난 살아낼 거니까. 너도 너 자신을 지키고 있어. 곧 구해주러 올게.”
“글로리아…. 우리 아기는? 우리가 헤어질 때 너 임신이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