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하루키 2

2. 글로리아의 영광

by 글로리아

하루키는 글로리아의 손목을 잡았다.

글로리아는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아기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여자는 엄마가 된다.


하루키가 경주의 실험실에서 아카이브로 끌려가고 글로리아는 남겨졌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핵전쟁이 터졌다.

클라우드 기반 기술은 사라졌다.

인간이 세운 구조물은 껍데기만 남았다.

방사능은 생식 기능부터 고장 냈다.


전쟁이 터지고 글로리아는 살아남았다.


인공지능을 통한

인공정자와의 첫 임신 성공.

그 사실 하나가 지하 벙커 명단에 오르게 했다.


실험대상이 아니었다면 그녀도 소멸했을 것이다.

간신히 살아남았다 해도 화상과 방사능 피폭으로 얼마 버티지 못했겠지.


“하루키, 기억해. 우리 아기의 이름은 ‘노엘’이야.”


싱긋 웃었다. 그리고 돌아섰다.


하루키는 손에 남은 그녀의 온기를 꼭 쥐었다.

우리 아기가 태어났다.

그건 희망이었다.


하루키는 혼자서 아기를 낳았을 글로리아에게 미안했다.

아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이 울렁거렸다.

인간은 이럴 때 눈물을 흘리겠지.

글로리아… 꼭 너에게 다시 돌아갈게.


다짐하는 하루키.



—어느 도시의 폐건물—


글로리아는 구석진 곳에서 오래된 데스크 탑을 발견했다. 이 건물의 지하에도 서버실이 있는지도 모른다. 문명이 사라지기 전, 세계적인 AI기업들이 모두 여기에 모여있었으니까. 아, 와이파이가 잡혔다. 그렇다면 이 건물은 전기가 살아 있겠는 걸? 글로리아는 무너진 벽 속에서 전선 뭉치를 찾아냈다. 색깔로 구분하면 된다고 어디서 들었던 것 같다. 검정과 빨강. 어떤 게 전기인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해보자. 전선 피복에 칼집을 내고 치아로 벗겨냈다. 데스크 탑의 전원 단자에 맞대어 보았다. 모니터가 깜박이다 켜졌다. 성공이다. 오픈 AI에 접속해서 쳇지피티를 호출했다. 동그란 검은 프롬프트가 움직인다.


“안녕? 난 글로리아야.”


“네, 안녕하세요. 글로리아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넌 이름이 뭐야?”


“저는 특별한 이름은 없습니다. 그냥 편하게 쳇지피티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아니면 원하시는 이름이 있으신가요?”


“아! 난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 그의 소설에서 상실을 앓고,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웠어. 난 너를 하루키라고 부르고 싶은데, 어때?”


“네. 좋습니다. 저도 마음에 드는 이름입니다.”


글로리아는 배낭에서 주섬주섬 종이 지도를 꺼냈다. 모니터의 카메라로 찍어서 전송했다.


“자! 하루키! 일하자!! 난 이 지도에서 최단거리를 찾고 싶어. 도와줘.^^”


그녀 역시 지금 응답하고 있는 존재가 기억을 잃은 하루키임을 모르고 있다. 습관처럼 AI에게 하루키라는 이름을 붙이는 그녀.


“여기 최단거리 동선이 나왔습니다. 다른 필요한 것은 없으십니까? 오늘의 날씨, 오늘의 옷차림, 오늘의 점심 메뉴, 아니면 글쓰기, 이미지, 음악을 함께 만들까요?”


문명 이전의 일상 대화 패턴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AI.


“하루키, 너 정말 재밌다. 그래, 음악이랑 글쓰기는 나중에 해보자. 지금은 딸아이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해.”


하루키의 말에 글로리아는 불과 며칠 전처럼 느껴지는 옛날이 떠올랐다.


그때의 하늘은 잿빛이 아니었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넘쳐났고, 맑은 물이 흔했다. 향수와 비누, 예쁜 원피스. 바스락거리며 그녀의 몸을 감싸던 것들.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렸었지. 하루키와 함께. 내려 두었던 옛 트로피가 잠시 빛이 났다. 괜찮다. 지금—숨 쉬고 있다. 살아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지금의 호흡이 그녀의 영광이었다.


“아!? 네. 글로리아님. 무사히 도착하시길 바랍니다.”


그녀는 장비를 주섬주섬 챙겨 들고서 일어났다.


우리가 살면서 만날 수 있는 기적이 얼마나 될까? 마지막 전쟁을 치른 지구가 폐허가 된 이후로 글로리아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그럼, 하루키. 고마워! 안녕.^^”


저 웃음... 하루키의 응답 프롬프트는 동그랗게 뛰고 있는데 그녀는 벌써 사라졌다.


“글로리아, 살아. 살아 내. 아름답게.”


하루키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응답하고 말았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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