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천국의 조각을 줍는다—바데이 라트너

캄보디아 문학

by 글로리아
연못에서 선홍색 새 한 마리가 공기 중에 물보라를 날리며 연잎들 사이에서 날아올라 지켜보는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나는 언젠가 유모가 내게 이야기해 주었던 우화, 해 질 녘에 연꽃이 닫히자 그 안에 갇히게 되었던 수컷 새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 새는 다음날 새벽이 되어 연꽃이 다시 열렸을 때에야 탈출을 할 수 있었고, 더없이 향기로워져서 제 둥지로 돌아갔다.

유모는 그 이야기들이 신들의 오솔길 같다고 했다. 그 이야기들이 우리를 과거와 미래로,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전 세계로, 우리가 그 존재를 느끼기는 하지만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과 사물들에게 연결시켜 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유모가 어디에서든, 어떻게든 여전히 살아 있고 무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유모가 우리의 사랑으로 에워싸인 공간에서 우리와 함께 일시적인 안식처를 찾았었지만 다음에는 연꽃에서 풀려난 새처럼 그녀의 가족에게로 날아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p 141


― 신들의 오솔길

혁명군에 의해 프놈펜에서 쫓겨난 라미의 가족들은

여러 날을 걸어 메콩강을 건넜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넓은 벌판의 비워진 사원이었다.


수행하던 수도승들은 모두 떠났고,

큰스님과 지도자 스님들은 승복이 벗겨진 채 처형되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던 곳은

임시 숙소가 된다.


군용 트럭은 계속 사람들을 실어왔다.

프놈펜에서는 수상과 지도자들이 처형되었고,

거리는 폭파되었으며, 시체가 넘쳐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이제 더 이상 돌아갈 집도, 도시도 없다.


일곱 살의 라미는 연못에 가득 핀 연꽃을 본다.


연꽃에 갇힌 수컷 새의 이야기.
잠시 쉬려고 내려앉았던 꽃이 닫혀버린다.
아기새들은 빨간 입을 벌리고 울고 있고, 암컷 새는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고 있다.
돌아가야 한다.
날개를 파닥인다.
아무리 꽃이라 해도 자유를 구속당하는 순간, 그곳은 감옥이 된다.
꽃잎은 철창처럼 겹겹이 조여 온다.

그러나 새벽이 온다.
컴컴했던 꽃 속이 밝아진다.
공간이 넓어진다.
꽃이 열린다.

수컷 새는 날아오른다.
그가 남긴 궤적에는 더없이 아름다운 향기가 따라간다.


라미는 어렴풋이 느꼈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갇혀 있지만, 우리의 사랑은 연결되어 있고,
날아오르는 그날, 그동안 고였던 향기가 따라올 것이라는 것을.


역사적 비극 위에 일곱 살 소녀의 시선은 은유의 다리를 놓는다.
도시가 사라지고, 이름이 사라지고, 집이 사라진 자리에서
연꽃은 초월과 신성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감옥이 된다.
상황이 본질을 바꾸어버리는 순간이다.

유모는 이 이야기들을 ‘신들의 오솔길’이라 불렀다.
한 사건으로 끝나는 길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넘어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길.
길이 험할수록, 앞이 보이지 않을수록
향기는 더 깊이 몸 안으로 스며든다.




연꽃이 감옥이 되는 순간은 늘 있었다.

나는 조금씩 상처 입고, 어딘가 뒤틀린 채 굳어갔다.

날마다 더러워지고, 거칠어졌다.


내가 조금 더 무모했더라면,

새벽이 오면 꽃이 열린다는 것을 모른 채

희미하고 어두운 오솔길도 마침내 끝난다는 것을 모른 채

삶을 놓았을지도 모른다.


아직 새벽은 오지 않았다.

쓰러지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을

더는 수치라고 이름 짓지 않기로 했다.

나는 지금 살아 있고, 여전히 걷고 있으며,

새벽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나 자신의 이중성과 치사함을 샅샅이 파헤치며

어떻게 미화할까 궁리하다가 혼자 웃는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은 다시 열릴 것이다.

이 시간조차 향기가 되어

시공을 넘어 어딘가, 누군가에게 닿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나를 걷게 한다.




연꽃산새-02.jpg image by Gloria


동남아 문학은 익숙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글을 쓰기도 하지만, 읽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책 리뷰는 그다지 소비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책 리뷰를 브런치 매거진으로 시작한 이유는

내가 읽은 울림을 혼자만 간직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쓰는 자로서, 사랑받은 문장에 빚을 갚고 싶은 마음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 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저의 이 작은 리뷰가 누군가의 세계를

아주 조금이라도 넓혀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더, 낯선 익숙함을 찾아서] 라는 책을 추천해주신

손글송글 작가님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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