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문학
어떤 꽃을 사랑할 때요, 갑자기 그 여자가 가버리면요, 모든 것이 그 여자와 함께 사라져요.
p 57
늙은 총각은 궁전의 정원을 돌보는 사람이다.
나무와 덤불을 다듬고, 꽃생강나무의 꽃이 더 잘 피도록 가지를 친다.
장미의 잔가지를 잘라내고, 화분을 다시 배치한다.
꽃이 핀 것은 그늘로 보내고, 아직 피지 않은 것은 아침 햇살을 받게 한다.
하루의 일이 끝나면 도구를 창고에 넣고
잘려 나간 가지와 흩어진 꽃잎으로 어질러진 안뜰을 쓸어낸다.
늙은 총각과 궁의 셰프 옴 바오는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책은 라미의 시선을 통해 그 은밀한 연애를 짐작하게 한다.
옴 바오는 모든 요리가 끝나고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
그의 방에 몰래 야참을 놓아두곤 했다.
그 보답으로 그는 매일 아침
빨간 프랜지파니 꽃 한 송이를 꺾어
그녀의 창문턱에 올려두었다.
옴 바오는 새해맞이 식재료를 구하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프놈펜 시장이 아니라 공항 근처까지 갔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내전의 소란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쏟아지는 폭격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그는 그녀의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여전히 정원을 돌본다.
어쩌면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하면
그녀도 여전히 그녀의 일을 하기 위해
돌아올 것이라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에게로 다가가 그의 얼굴을 매만져주고 싶었다. 옴 바오가 자기네 둘만 있다고 여겼을 때에 그러곤 했던 것처럼. 하지만 그가 너무도 허약해 보여서 만지면 산산이 부서져 내리지나 않을까 겁이 났다. 불과 이틀 사이에 그의 나이가 그를 따라잡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 어떻게 된 일이었을까? 나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어떤 꽃을 사랑할 때요,”
그가 마치 자기의 바뀐 모습을 설명하고 싶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갑자기 그 여자가 가버리면요, 모든 것이 그 여자와 함께 사라져요. 저는 그 여자가 살아 있어서 살았어요. 이제 그 여자는 갔고 그 여자 없이는 저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공주님. 아무것도.”
“아.”
그러니까 애도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끼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늙은 총각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고, 그러자 그는 내게서 얼굴을 돌렸다.
p43
“어떤 꽃을 사랑할 때요…”로 시작하는 그의 말은
소설 곳곳에서 반복된다.
이것은 연애 감상이 아니다.
존재가 관계로 이루어졌다는 고백이다.
꽃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세계가 사라진 것이다.
옴 바오의 영혼은 정원에 있었다.
얇고 가벼운 날개를 팔랑이며
꽃 사이를 오간다.
잠시 코코넛 나무줄기에 앉아
날개를 접는다.
라미와 눈이 마주쳤다.
늙은 총각에게 그녀가 여기 있다고
알려줄까,
소녀는 고민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애도하는 중이다.
그가 준비가 되었을 때,
잃었다고 생각한 모든 것이
형태를 바꾸어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이 돌보던 나비가
한때 사랑했던 그녀였음도.
늙은 총각만이 늘 그랬던 것처럼 대문 가까이에 늘어진 부겐벨리아 덤불 옆에 서 있었다. 그가 손을 흔들었다. 나도 그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가 대문을 닫았다.
p58
그는 떠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이 있었던 곳에
자신도 있어야 했다.
왕의 일가가 추방 명령에 따라 떠날 때
문을 열어주고, 손을 흔들고,
마침내 문을 닫는다.
사랑이 존재했던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의식처럼 보였다.
며칠 뒤, 집단 수용된 어느 사원에서
라미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깬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늙은 총각이 머리에 총을 맞았고,
새벽의 하늘빛처럼 번지는 피를
꿈에서 보았다.
이제는 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죽음이 끝은 아니라는 것이
선명해졌다.
물리적인 힘은 사람을 죽일 수는 있지만,
그가 사랑했던 세계까지
지울 수는 없다.
폭력의 공포, 가족의 죽음,
희망이라고는 없는 그곳에서
라미는 끝끝내 자신의 고귀함을 지켜낼 수 있을지,
나는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 속 발레리의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나는 마지막까지 나 자신이었다.”
사형당하기 전날
그녀가 이 독방으로 들어오게 될
다음 사형수에게 남긴 유언이다.
“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세요.”
어쩌면 고귀함이란
바로 그 선택인지도 모른다.
몸은 무너질 수 있어도
자기 자신으로 남겠다는 의지.
그리고
끝내 사랑을 남기겠다는 선택.
https://youtu.be/av7ihavmINg?si=ESTxCmpzrKb0tNX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