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서로의 메이리들이란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메아리들이란다, 라미.”
p210
혁명군 중에서 누군가 라미 아빠를 알아보았다. 며칠 후, 그들은 라미의 가족들이 수용된 곳으로 몰려왔다. 라미를 지목했다. 아빠의 이름을 적으라고 했다. 겁에 잔뜩 질린 라미는 아빠의 이름을 말했다.
시소와스 아유라반.
왕자이자 시인이었던 아빠는 가족의 몰살을 막기 위해 혁명군 앞으로 나선다. 그 걸음이 죽음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라미가 아기였을 때 소아마비를 앓고 더 이상 평범하게 걸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부터 아빠는 라미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날개.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서였다.
“네가 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네가 날 수 있다고 믿게 해주고 싶었어.”
아빠의 목소리는 다른 날 저녁의 다른 대화와 마찬가지로 온화하고 편안했다.
“내가 네게 이야기들을 해준 건 네게 날개를 주기 위해서였어, 라미.
그래서 네가 어느 것에도, 네 이름에건, 네 칭호에건, 네 몸의 한계에선,
이 세상의 고통에건 절대로 갇히는 일이 없도록.”
p230
아빠는 마지막 순간까지 라미에게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주었다. 절망과 분노에 갇히지 않고 여전히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바랐다. 아빠는 끌려가고, 동생은 말라리아로 열에 들떠 고생하다가 배고파하며 죽었다. 친척들도 죽은 몸을 누이지 못한 채 매달려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라미는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는다.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하고, 모든 것에서 아빠의 모습을 찾아낸다.
그 힘은 어쩌면 아빠에게 건네받은 날개 덕분이 아니었을까.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극한에서도 다시 일어서야는 힘은 그 사랑에서 온다.
아빠는 떠났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라미는 아빠의 바람대로 상실에 갇히지 않았다. 그의 존재는 일정한 형체는 없었지만 모든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그들의 정적과 침묵 속에, 그리고 그들의 찢어지고 부서진 마음에 스며 있었다.
라미는 탈출에 성공하고 책을 써낸다.
내전과 강제노동, 배고픔과 폭력,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 보호와 울타리라는 것의 허약함까지.... 구걸하기 위해 들어 올린 손에도 고결함이 있듯, 상실과 비극이 한 인간을 이렇게까지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것에 경외감마저 들었다.
시간이 흘러 현재의 국왕을 공식적으로 알현했을 때, 라미… 아니 바데이 라트너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쌀을 가져왔다고 말을 하다가 목이 메인다.
그 방문은 단순히 아버지의 이름을 공유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날개가 바데이 라트너에게 이양되었음을 세상에 알리는 조용한 대관식이었다.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든, 어떤 모습이든 누구나 삶 속의 고통은 틀림없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삶이 지속되기를 원하기에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그러기에 어떠한 삶이든 존중과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라미는 어느 걸인에게 무언가 도움을 주고자 물건을 전하려 했을 때, 아버지가 샌들 벗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캄보디아에서 샌들을 벗는다는 것은 수행하는 스님들에게 시주하면서 경의를 표할 때 하는 행동이다. 라미의 아버지는 말한다.
우리 모두는 걸인이라고.
그의 삶에는
우리의 삶, 다른 누구의 삶에
못지않은 고결함이 있고
우리는 거기에 위엄을 주어야 한다고.
내 삶은 어쩌면 걸인의 삶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여정이 지속되기를 원했기에 어떠한 고통이 있어도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았다.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내 삶이 이렇게 귀하고 중한 것이었구나.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살았던 한 인물이 나에게 말해주고자 했던 것이 이것이었을까.
내 삶이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타인의 삶도 같은 무게로 다가왔다. 우리는 서로의 메아리라는 말이 그제야 이해되었다. 라미 아버지가 딸에게 건네었던 날개는 한 개인의 소유로 갇히지 않고 나에게까지 전달되었다.
아빠는 말과 글이 아빠에게 날개를 준다고 했었다. 그 말도 위안이 되지 못했다. 날개. 나는 아빠가 그 날개를 잘라내어 내게 넘겨주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나 스스로 계속 날 수 있도록.
p242
김명희 작가님의 [더, 낯선 익숙함을 찾아서]라는 책에 소개된 캄보디아 문학을 읽고 이 책을 읽었다. 처음 내가 꽂혔던 단어는 단연 ‘날개’였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날아오르는 개인의 해방을 예상했다.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가 떠올랐다.
환경과 결핍, 과거와 말 더듬 증세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미조구치는 결국 금각사를 태워버린다. 아름다움을 파괴해서 자유를 얻으려는 방식이다.
그런데 바데이 라트너는 다른 길을 간다.
끊고, 파괴하고,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어져 있다는 메시지다.
그래서일까, 이 문장.
“우리는 모두 서로의 메아리들이란다.”
여기서 세계가 완전히 달라진다.
라트너에게 인간은 단절된 존재가 아닌 연결된 존재이다.
그래서 ‘날개’의 의미도 바뀐다.
“나는 아빠가 그 날개를 잘라내어 내게 넘겨주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건 자유의 선언이 아닌 사랑의 계승이다.
이 책은 단순한 극복을 말하지 않는다.
고통을 없애라고도, 과거를 부정하라고 하지도 않는다.
고통을 통과해서 더 큰 의미로 올라가는 것.
승화.
진흙에서 피어난 연꽃을 보여준다.
책을 덮었다.
책을 다 읽었지만 마음속에 마침표는 찍히지 않았다.
고마움이 컸다.
라미의 아빠. 시소와스 왕자가 자신의 정신을 남겨둔 것에,
생을 포기하지 않고 끝내 아빠의 유산을 높이 들어 올린 라미에게.
그리고....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공을 들이고
어떻게 번역해야 한국 독자들이 이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지
끝까지 고민했을 황보석 번역작가에게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