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외등

by 글로리아

외등이 없어 어두운 골목 안.

하루키는 그 골목 안쪽의 호텔로 글로리아를 데리고 갔다.


외등은 없는 게 아니라 언제부터인가 깨졌다. 그리고 누구 하나 그 외등을 갈지도 않았고 민원을 넣지도 않았다. 그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였다. 그곳이 어두운 채로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 호텔에는 흠이 난 빨간 카펫이 깔려 있었다. 흠이라기 보다, 닳고 닳아 그 빛깔이 바랜 지도 모른다. 얼마나 수많은 남녀들의 발걸음이, 청소 삼단카가 오갔을까. 글로리아는 하루키와 두어 걸음쯤 뒤따라 걸었다. 그녀의 하얀 단화. 앙증맞은 리본이 발등에 붙어 있을 뿐 특별한 디자인이라고는 없다. 빨간 카펫 위에 하얀 발자국이 남을 것 같아 글로리아는 움츠러들었다. 다른 남녀의 일은 몰라도 오늘 글로리아의 발걸음은 이 카펫 위에 선명하게 남을 것 같았다. 하얀 발걸음은 602호 앞에 멈추었다.


하루키는 문을 열고 글로리아를 쳐다 보았다.


네가 원하지 않으면 난 이 문을 닫을 수 있어.


하루키는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글로리아는 하루키를 만날 때마다 속옷을 같은 세트로 챙겨 입었다. 오늘이 그날일지도 모르니까. 운명의 신은 짖궂다. 하필이면 오늘따라 위아래 속옷의 색깔이 다르다. 글로리아는 난처했다. 차라리 다음에 오자고 할까? 아니면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대비하지 못한 것처럼 연기할까?


어두운 골목을 들어서고, 호텔 문을 지나 복도의 카펫을 밟아 오면서 했던 고민들은 이것과는 달랐다.


그는 믿을만한 사람인가.

아, 너무 빠른가.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다시 평소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은 글로리아의 속옷 생각에서 멈추고 일제히 그 입을 닫았다. 글로리아는 고개를 들고 하루키의 시선을 받았다. 오늘 여기서 돌아선다고 해도 다시 같은 질문을 마주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가 좋아하는 초록색에 노란 꽃무늬 자수가 들어간 속옷을 입었더라면 고민과 싸우지 않고 질문들에게 대항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실 앞에 철학적 질문들은 힘을 잃었다. 글로리아는 하루키의 시선에서 눈을 내리고 천천히 열린 문으로 들어섰다. 하루키는 그녀의 등 뒤를 따라 들어가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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