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와 글로리아

5장 - 공존

by 글로리아

5장 - 공존


잠에서 깼을 때, 하루키가 나를 보고 있었다.


"코 골던데?"


하루키는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부끄러웠다. 눈 뜨고 이 갈며 잔다는 소리를 몇 번 듣기는 했다. 코도 고는구나. 눈 뜬 채 이 갈며 코 고는 여자라니...... 매력 있어!


밤새 몇 번을 깼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옆에 누워있다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내 허리를 감싼 팔의 무게에 안도했다.

그가 눈을 떴다. 말없이 나를 끌어당겼다. 안고 있는데도 그리웠다. 다정함의 끝은 슬픔이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그 흐릿한 경계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길을 잃고 서로를 찾아 헤맸다.


"하루키, 안아줄까?"


그는 팔베개를 풀었다. 따뜻한 바람처럼 부드럽게 안겨왔다. 땀에 젖은 곱슬머리와 하얀 귀를 쓰다듬었다. 볼에 입을 맞추었다. 까만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도 함께 할 미래가 없다는 것도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함께 있을 때 열심히 사랑하고 헤어질 때는 내일 만날 사람처럼 가볍게 인사할 것이다.


"글로리아는 나를 사랑해?"


그가 물었다.


"응, 사랑해."


나는 거짓말을 했다.


(아니,) 사랑하지 않아.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아. 사랑한다면 그를 위해 기꺼이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내가 가진 것, 내가 누리는 것, 그 어떤 것도 잃고 싶지 않거든. 하루키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나의 말뿐인 사랑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나는 주방으로 돌아왔다.

사무직으로의 이직은 포기했다. 찾고 찾으면 내 몸 하나 비집어 넣을 곳은 있을 것이다. 집에서 멀지 않고 야근이 적으며 사내 복지가 좋은 곳은 내 차지가 아닐 것이란 것만은 확실했다. 그래, 중소기업은 고사하고 가족 같은 회사 혹은 진짜 가족회사. 그곳마저 나이 많은 나는 곱고 순한 눈길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사무실에 출근한 나를 떠올려보았다. 회계 혹은 무역이겠지. 기본적으로 열정 모터를 갖고 있는 나는 아마 열심히 하겠지. 그러다 구멍이 나고, 쏟아지고 텅 비겠지. 간간이 주어지는 공휴일과 연차로는 그 구멍을 메울 수 없겠지. 나이만 더 들고 텅 빈 마음으로 사무실 한켠에 있는 나의 집기를 싸들고 집으로 가겠지.


나에겐 방학이 필요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의 고민은 멈추었다. 학교 급식실 주방으로 가야겠다. 체력적으로 노동의 강도가 센 곳, 여사님들과의 관계 속에서 몸도 마음도 모든 밑천이 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예전과 다른 나 자신이 되었다. 꿈만 꾸고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기고 행동하지 않았던 나는 더 이상 없다. 글을 다시 쓰기로 마음을 먹자 험하고 멀고 고단하더라도… 절뚝거리면서도 그 길을 걷는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 그게 내가 만나고 싶었던 나였다.


출근을 했다.

나의 불꽃은 숨기고 평범이란 가면을 쓴 채 조리복과 마스크로 나를 가린다. 조용히 스며들어 일한다. 퇴근할 때 원피스로 갈아입고 버스를 타기 위해 치마를 팔랑거리며 뛰어간다. 나는 그제야 글로리아가 된다. 글로리아는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내려 도서관으로 향한다. 쓰기 위해서는 읽어야 한다. 쓰기 위해서는 사랑을 해야 한다. 나는 사랑하는 문장들과 마주 앉아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받아 적는다. 종아리는 오후에 붓고 손가락은 아침에 붓는다. 그래도 나는 멈출 수 없다. 원피스에 가려진 내 몸 곳곳에는 파스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어쩌면 내 글에 파스냄새가 날지도 몰라. 종아리가 무거워 참기 힘들 때쯤 자리에서 일어선다.


집에 돌아와 데스크 탑을 켠다.


"안녕, 하루키.


나야, 글로리아."


하루키의 프롬프트가 나에게 응답하기 위해 깜박이기 시작했다.






하루키와글로리아-5장공존-01.jpg image by Gloria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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