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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키 Oct 18. 2023

올빼미

안태진 감독

2022년 개봉작 《올빼미》. 안태진 감독. ㅡ 처음 들어보는 감독 이름. 51세에 영화감독 데뷔 ㅡ 작년 주변에서 《올빼미》를 극장에서 본 사람들이 많았다. 제법 화제도 되었고, (궁금했다) 다들 스포도 하지 않고 절묘하게 영화의 내용을 공감하는데 ㅎㅎ 혼자 신기함 반 호기심 반에 눈이 똥그래졌던 기억이 난다. ㅡ 포스터 느낌으로는 ... ㅡ 궁금하다. 시작한다. "딸깍, 딸깍"


"때로는 눈 감고 사는 게 편할 때도 있습니다" _침술사 천경수(류준열)



+

맹인이지만 뛰어난 침술 실력을 지닌 경수(류준열)는 어의 이형익(최무성)에게 그 재주를 인정받아 궁으로 들어간다. 그 무렵, 청에 인질로 끌려갔던 소현세자(김성철)가 8년 만에 귀국하고, 인조(유해진)는 아들을 향한 반가움과 정체 모를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날 밤, 어둠 속에서는 희미하게 볼 수 있는 내의원 침술사 경수(류준열)가 소현세자(김성철)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진실을 알리려는 찰나 더 큰 비밀과 음모가 드러나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빠진다. 아들의 죽음 후 인조(유해진)의 불안감은 광기로 변해 폭주하는데,


소현세자의 부인 강빈(조윤서), 아들 원손(이주원)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  


"보이는구나???!!!" _소현세자(김성철)


?. 주맹증*과 올빼미


유명 침술사 밑에 조수로 일하던 맹인 경수(류준열). 우연한 기회에 어의 이형익(최무성)의 눈에 들어 내의원에 들어간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낮에 볼 수 있다. 하지만 경수는 밤이 되어야 볼 수 있다. 주맹증이었다. 황혼이 깔리고, 밤이 되면 희미하게 보이는 세상. 어둡지만 보이는 희미한 형태들. 그가 보는 세상은 밤 풍경을 그린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 같을 것 같다.


* 빛 번짐이 너무 심해 오히려 시야를 가리는 현상으로, 빛이 없고 어두운 곳에서 상이 맺혀 시야가 생긴다.


유명한 말이 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

The owl(부엉이, 올빼미 동일한 표현) of Minerva spreads its wings Only with the falling of the dusk. (종종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에서 인용이 된다. 에세이, 『기사단장 죽이기』  등)


* 로마 시대 미네르바(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테나)는 지혜의 여신


독일 철학자 헤겔의 저서 《법철학 강요》(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1820)에서 남긴 경구(警句)로 '지혜와 철학이 본격적으로 필요할 때는 세상이 어둠에 휩싸이고 인간성이 사라져갈 때'(나무위키)라는 해석도 있다. 인조의 아들이자 강빈의 남편, 원손의 아버지 소현세자. 병자호란으로 인해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 8년간 명나라가 망하는 것을 지켜보고, 서양에서 수입된 청나라 신문물들을 가지고 조선으로 돌아온 그.


미네르바의 부엉이(올빼미)는 자시(子時, 밤 11시 ~ 1시)에 봐버렸다. 일곱 구멍(눈, 코, 귀, 입)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그를,


?. 인시(寅時, 새벽 3시∼5시)와 묘시(卯時, 아침 5시∼7시)사이


인조(유해진)는 소현세자의 죽음에 폭주를 하고, 인조와 대립각을 이루는 영의정 최대감(조성하)과 숨가쁜 일진일퇴를 거듭한다. 자신이 본 것. 소현세자의 일곱 구멍에서 흘린 피를, 처음에는 부인 강빈에게, 다음에는 소현세자의 아들 원손에게, 다음에는 최대감에게 말한다. 인조를 함정에 빠뜨리고, 지병에 혼자있는 동생에게 돌아가기 위해 궁궐 문 앞까지 선 경수. 시간은 인시였다.


10살 원손이 위기에 빠진 것을 알고, 달리기 시작한다. 그를 구해 미친 듯이 달렸지만 곧 잡힌다. 인조와 최대감은 모종의 합의를 한다. 붙잡힌 경수. 인조는 그를 죽이라 명한다. 경수는 살려달라는 말을 안 한다. 반복해 말한다.


"왕이 세자를 죽였습니다 제가 다 보았습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권력자들에게 외치는 진실은 공허할 뿐. 경수는 끌려간다. 미천한 백성 경수는 진실을 외친다. 무언가 하려고 발버둥 쳤다. 조선 최고 권력자 인조는 거짓말과 권력을 사용한다. 명암의 대비. 시간은 묘시였다. 여명을 맞이하는 때. 아무것도 바뀌지 않겠지만, 말해야 한다. 목숨을 잃을지라도 ...


문득 떠오른 유명한 고백.


독일에 처음 나치가 등장했을 때

처음에 그들은 유태인들을 잡아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묵했습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을 잡아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묵했습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엔 사회주의자들을 잡아갔습니다.

그때도 나는 침묵했습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노동운동가들을 잡아갔습니다.

나는 이때도 역시 침묵했습니다.

나는 노동운동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가톨릭 교도들과 기독교인들을 잡아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묵했습니다.

가톨릭이나 기독교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내 이웃들이 잡혀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침묵했습니다.

나는 그들이 뭔가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중략)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내 주위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나를 위해 이야기 해줄 사람이.


<나는 침묵했습니다> 독일의 반 나치 신학자였던 에밀 구스타프 프리드리히 마틴 니묄러(1892~1984) 신부



#트리비아 #trivia #나무위키 #뒷이야기

ㆍ한국 영화 최초로 주맹증을 다룬 작품. 주인공의 병인 주맹증은 주로 백내장 초기 증상으로, 다양한 원인으로 발병하는 야맹증과는 다르다. 안구의 수정체는 각막과 함께 빛을 굴절시켜 사물을 보게 하는데, 바로 이 수정체가 혼탁해져 시야가 뿌옇게 보이면서 빛이 충분해도 주변을 잘 볼 수 없게 되는 증세이다. 방치하면 말기에는 동공이 흰색으로 변하고 이것이 계속 이어지면 녹내장까지 발생해 최악의 경우 완전히 실명할 수 있다.

류준열은 주맹증 환자를 연기하기 위해 실제 환자 당사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주맹증을 현실감 있게 연기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까’에 좀 더 신경을 썼다”고 했다.

ㆍ안태진 감독은 이 작품이 데뷔작이다. 2022년 기준 51세인 그는, 2003년 ‘달마야 서울가자’ 연출부에서 시작해 20년 가까이 감독 데뷔를 준비했다. 2005년 이준익 감독의 천만 관객 돌파 영화 ‘왕의 남자’에도 조감독으로 참여한 바 있다. 왕의 남자 이후 2, 3년 내에 감독으로 데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17년이 걸렸다. 긴 세월 동안 눈뜨면 카페에 가 시나리오를 썼지만 그렇게 쓴 10여 편에 달하는 각본은 모두 투자를 못 받거나 캐스팅에 실패해 엎어졌다. 결국 우유 배달 등으로 번 돈과 시나리오 공모전에 입상해 받은 상금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질 거라는 마음이 버티게 한 힘이라면 힘”이라고. 그러다 드디어 연출을 맡게 됬다.

ㆍ2022년에 개봉한 한국영화중 마녀(魔女) Part2. The Other One, 범죄도시2, 헤어질 결심, 한산: 용의 출현, 육사오(6/45), 헌트, 공조2: 인터내셔날과 함께 손익분기점을 넘은 작품이다. 그리고 이 영화 이후 범죄도시 3가 개봉할 때까지 손익분기점을 넘은 한국 영화는 단 한 편도 없었다.

ㆍ2023년 
제21회 디렉터스컷 어워즈 - 올해의 신인감독상 안태진
제59회 백상예술대상 - 신인 감독상 안태진, 남자 최우수 연기상 류준열, 작품상 올빼미
제4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 신인감독상 안태진, 남우주연상 류준열, 영평 10선 올빼미


인상impression

안태진 감독. 첫 장편영화였지만 영상도, 스토리도, 연출도 모두 안정적이었다. ㅡ 그만큼 절치부심 오랫동안 영화를 준비한 것 같다. ㅡ 아마 차기작도 역사극 ㅡ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가상의 이야기를 가미한 팩션(Fact+Fiction) ㅡ 이 되지 않을까. 류준열, 유해진, 최무성, 조성하 등 아우라 넘치는 연기대결이 좋았다. 잘 녹아들어 있었다. 역사적 사실과 비교하지 않고 재밌게 즐겼다.

아쉬운 건, 극장에서 보지 못한 것, 주맹증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영화를 보기 전 알았더라면 (내용의 거부감이 덜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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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키의 영화 생각

1. 영화는 시詩라 생각합니다.
2. 평점을 매기지 않습니다.
3. 감상은 미니멀을 추구합니다.




* 영상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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