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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키 Dec 20. 2023

타르

로드 필드 감독

2023년 2월 한국 개봉작 《타르TAR》. 로드 필드 감독. ㅡ 제목이자 주인공의 성 타르TAR는 눈물(tear)이라는 뜻의 아이슬란드어이자 RAT(쥐)와 ART(예술)의 애너그램*이다 ㅡ 


* 일종의 말장난으로 어떠한 단어의 문자를 재배열하여 다른 뜻을 가지는 다른 단어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고대 유대인들이 히브리어로 하곤 했고, 중세 유럽에도 큰 인기를 끌었다.


지난 9월 13일 우연히 한 기사를 봤다.


이런 내용이 있었다.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SFO) 음악감독으로 있는 김은선은 내년 4월 베를린 필하모닉의 객원 지휘자로 무대에 서게 되었다. 오랜 역사의 베를린 필하모닉은 까다롭고 보수적인 것으로도 유명해서 동양계 여성인 김은선이 객원 지휘를 맡게 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꼽히고 있다. 올해에는 한국에서의 공연은 없었지만,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우리의 여성 지휘자이다. _여성신문 2023.09.13


베를린 필하모닉? 《타르TAR》가 생각났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최초 여성 지휘자. ㅡ 포스터에서 읽었다. :) ㅡ 그리고, 얼마 전에는 티빙에서 (여성 지휘자 이야기) 이영애 주연 <마에스트라>가 방영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타르TAR》를 봐야겠다. 기묘한 동시성* 하나의 길로 인도하는 것 같다. 궁금하다. 시작한다. "딸깍, 딸깍"


* 동시성은 개별적인 인과관계를 가지는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연속적으로 발생했을 때 이 둘 사이에 어떠한 연관관계도 없지만 실제로는 우연이 아닌 비(非)인과적 법칙이 있는 현상



+

<타르>의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지휘자 리디아 타르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타르는 감독이 블란쳇을 염두에 두고 창조한 가상의 존재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첫 여성 상임 ‘마에스트로’, 독보적인 예술가, 위선적인 야망의 화신, 레즈비언, 젊은 여성 음악가 육성 프로젝트의 설립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 추문 속 가해자. _'영화 <타르>의 무의식에 깔린 것' 인용


타르(케이트 블란쳇)는 클래식 계에서 누릴 수 있는 영광을 모조리 거머쥐었다. 그녀의 숙원은 말러가 생전에 남긴 교향곡 9편을 자신의 지휘 아래 도이체 그라모폰(유명한 독일의 클래식 음반사)과 함께 녹음해 영원히 기록으로 남기는 것. 마침내 영광스러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최초 여성 지휘자로 마지막 단 한편의 교향곡을 지휘할 기회를 앞두고 있는데 ...


 “음악은 항상 어딘가로 이동하고 변화하며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흘러가는 움직임이며, 그 움직임은 백만 마디 말보다 우리가 느끼는 방식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_타르가 동경한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비디오에서 번스타인이 한 말


?. 예술가의 사적인 삶(윤리)과 창작물을 필연적 관계로 봐야 할까


초반 40분은 인터뷰 장면으로 할애가 된다. 인터뷰 진행자는 타르(케이트 블란쳇)의 천재성과 업적을 찬양하고, 예술론과 가치관 등에 대해 질문을 한다. 그녀는 예술가의 사적인 삶(윤리)과 창작물은 분리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오케스트라의 지휘는 시간을 조정하는 것. 작곡가와의 교감과 악보를 통해 과거와 현재란 시간의 벽을 제거해 재현하는 것.


“Schönheit ist Form der Zweckmässigkeit eines Gegenstands, sofern sie, ohne Vorstellung eines Zwecks, an ihm wahrgenommen wird.”(Kant, Kritik der Urteilskraft, p. 61.)
(“미는 합목적성이 목적의 표상 없이 대상에게서 지각되는 한에 있어서 합목적성의 형식이다.”) _칸트 『판단력 비판』


스승 번스타인에게 배운 유대교의 개념 ‘테슈바’와 ‘카바나’를 그녀의 오케스트라 지휘의 핵심으로 삼는다. 테슈바는 회개, 귀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하고, 카바나는 방향성, 집중, 의도였다. 리디아는 거장의 발자취를 따라 의도와 삶, 영혼까지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리는 별개일 뿐.


1803년에서 1804년 사이에 독일 바이마르 공국을 방문해서 괴테, 쉴러, 셸링 등을 직접 만났던 프랑스 낭만주의자 콩스탕(Benjamin Constant)은 자신의 한 일기(1804년 2월11일)에서 칸트의 미학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L'art pour l'art, et sans but ; tout but dénature l'art.”(Encyclopédie Larousse, ‘L'art pour l'art’ 항목에서 재인용.)
(“예술을 위한 예술, 그리고 목적없는 예술. 모든 목적은 예술을 변질시킨다.”)


타르의 예술론은 목적이 없는 상태, 가장 순수한 상태의 아름다움. 이를 재현하고자 합일을 이뤄야 하는 상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궁극적 도전은 말러 교향곡 5번. 특별히 4악장 아다지에토*다.


* ‘아다지에토’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던 뮤즈 알마 쉰들러에게 말러가 바치는 연애편지다. 19살 연하의 알마에게 첫눈에 반한 말러가 열렬한 구애 과정에서 이 악장의 악보를 편지로 보냈고, 이에 알마가 감동했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


?. 아마존 부족 쉬피보-코니보의 노래 r'caro


타르는 과거 몇 년 간 원시 부족에서 음악을 연구하고 생활한 적이 있었다. 쉬피보-코니보. 그들의 노래 r'caro를 부르는 가수는 마치 원작자와 영혼의 교류를 하는 것처럼,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없는 것 같이 노래를 부른다. 그녀는 일이 없을 때는 동성 배우자 샤론 굿나우(니나 호스)와 딸 페트라(입양한 딸로 추측)와 함께 생활을 했지만, 작곡은 아파트를 따로 얻어 혼자 작업을 했다. 뒤셀도르프 사진학파의 사진들로 벽을 가득 매웠지만, 한 사진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정면을 응시하는 한 여인과 뒤편엔 원시 부족의 남자가 있는 흑백 사진. 볕이 잘 드는 곳에는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었다.


타르는 가족(동성 부인과 딸)과 보내는 시간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지휘와 작곡뿐. 그녀는 매일 조깅을 하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글로브를 끼고 샌드백을 친다. 환청이 들리고 환시가 보인다. 카메라는 시종 4가지 상징을 비친다.


거울, 침대, 메트로놈, (원시부족 전통 상징의) 미로 문양.


거울을 통해 깨어있음에도 불안한 의식을, 침대를 통한 의식과 무의식의 교차, 메트로놈으로 시간 통제의 암시, 미로 문양이 갑자기 나오면 예술과 영혼이 일체화 되기 전 징후 같았다.


그녀는 서서히 무너져 갔다.


의사의 감각이상성 등 통증(Notalgia) 진단을 노스탤지어(Nostalgia)라 잘못 알아듣고 흠칫한다. _얼굴을 다치고 병원에서


?. 거장 마에스트로(지휘자)의 재림, 케이트 블란쳇


이건 연기가 아니다. 진짜 마에스트로다. 예술적 광기, 금기의 욕망(여성이 여성을 탐하는 육체적 욕망), 여성이지만 권력을 쥐었을 때 남성 권력자의 행태와 다를 바 없는 부패의 답습. 정말 대.단.하.다. (케이트 블란쳇의 지금까지 연기중 최고 아닐까) 4글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잘나가던 그녀는 자신이 만든 젊은 여성 예술가 육성 프로그램 여성 지휘자 크리스타(실비아 플로트)의 죽음. 성 추문에 휩싸이고, 자신을 오랜 시간 따랐던 비서 프란체스카(노에미 메를랑)는 말없이 그녀를 떠난다. 동성 배우자도 그녀를 떠난다. 점차 고립되고 혼자가 되어가는 케이트 블란쳇. 그녀는 방황 끝에 동아시아의 어느 곳(필리핀 같은 곳에 태국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그녀는 연주를 한다. <몬스터 헌터> 사운드트랙을, 코스프레를 한 관객 앞에서 처음으로 시간 조정자가 아닌, 신호에 맞춰 연주를 한다.


(신의) 처벌을 받은걸까? 아니면, 반성과 지속적 활동을 통해 (기다리다 보면) 재기하려는 걸까?  


덧, 영화의 마지막 타르는 안마를 받기 위해 안마시술소에 간다. 그곳에는 2열로 앉아 있는 안마 지명 소녀들이 있었다. 5번 소녀. 그녀만은 타르를 똑바로 쳐다본다. 타르는 갑자기 안마시술소를 뛰쳐나간다. 구역질과 구토를 반복한다. 말러 교향곡 5번을 향한 그녀의 불순한 욕망의 자각처럼 느껴졌다.


“이 교향곡은 열정적이고 거칠고 비극적이며 엄숙한 인간의 모든 감정으로 가득 찼으나 단지 음악일 뿐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형이상학적 질문의 자취도 남아 있지 않다.” _말러가 설명한 5번 교향곡.



#트리비아 #trivia #나무위키 #뒷이야기

ㆍ《인 더 베드룸》과 《리틀 칠드런》 등으로 주목받은 토드 필드의 16년 만의 복귀작
ㆍLydia Tár라는 이름 전체가 가명이다. 나중에 주인공의 실명이 Linda Tarr임이 드러난다.
ㆍ엔딩에서 몬스터 헌터: 월드 사운드트랙 연주회를 배경으로 게임 도입부 나레이션이 나오는데, 한국어 자막은 "일단 이 배에 타면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게임 정식 번역 기준)에서 배를 우주선으로 오역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는 우주로 간 적이 한번도 없고, 월드 역시 신대륙이 배경으로 주인공들 역시 배를 타면서 등장한다. 자막 번역가가 게임에 대해 모른 채 대사만 번역해서 생긴 실수. 이외에도 루키노 비스콘티에 관한 언급을 비롯해서 일부 대사가 누락되는 등, 한국어 자막 번역이 다소 부실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ㆍ제79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볼피컵 여우주연상(케이트 블란쳇) 수상
ㆍ제32회 고섬 어워즈 각본상 수상
ㆍ제88회 뉴욕비평가협회상 작품, 여우주연상(케이트 블란쳇) 수상
ㆍ제80회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드라마) 수상, 작품상(드라마)
ㆍ제28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영화 여우주연, 음악상 수상
ㆍ제76회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



인상impression

로드 필드 감독. 그의 영화는 처음이지만, 영화의 완성도와 영상미에 매우 심혈을 기울였다는 느낌이 든다. ㅡ 16년 만에 만든 영화라 그런 걸까 ㅡ 두 가지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거울과 침대의 이미지에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러시아 영화감독)가 생각났고, 또 하나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생각났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미술이었다면, 《타르》는 마에스트로 이야기. '타오르는' 느낌이다. 로드 필드 감독의 연출은 100점, 마지막 <몬스터 헌터> 지휘 장면은 이질적(갑툭튀)이어서 감당하기 어려웠을 뿐, ㅡ 배경 지식을 알고 영화를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ㅡ


마지막으로 ... 타르(케이트 블란쳇)가 가족과 함께 사는 현대 건축 양식의 시멘트 집. 거실에는 커다란 검은 분위기의 그림이 있었다. ㅡ 영화 속 그림과는 다르지만, 비슷한 느낌의 안젤라 키퍼의 그림이 생각났다(하기 그림) ㅡ 마치 음악은 폐허 위에 피어난 꽃 같다는 생각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예술이 가져다준 권력에 폐허가 된 타르의 영혼에 다시금 열정이라는 꽃봉오리가 피어나려는 것이. 느껴졌다.


Anselm Kiefer | 태어나지 않은 자Die Ungeborenen, (2007 - 1012)


덧, 딸 페트라가 학교에서 부모가 레즈비언이라고 괴롭힘을 당하자 딸을 괴롭히는 독일 여자아이를 독일어로 혼내던 장면이 생생하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신이 널 지켜보고 있다는 독일어였다. 섹시했다. 장면은 전환되고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들과 독일어와 음악으로 소통을 하고, 일상에서는 영어를 사용한다. 독일어와 영어를 오가는 케이트 블란쳇. 마치 욕망하는 예술가와 사적인 개인을 오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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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키의 영화 생각

1. 영화는 시詩라 생각합니다.
2. 평점을 매기지 않습니다.
3. 감상은 미니멀을 추구합니다.




* 영상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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