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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키 Dec 13. 2023

그녀에게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2003년 10월 한국 개봉작 《그녀에게》.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ㅡ 1949년생 스페인 감독으로 오늘날 스페인 영화를 대표하는 두 거장 중 한 명이다 ㅡ 영화 관련 칼럼이나, 기사, 서적들을 읽다 보면 변방의 비주류, 예술감독으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종종 거론된다. 그래서 그런 걸까, 이름은 알았지만 (그의)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우연히 지인의 영화 평을 읽다 어떤 감각이 예민한 반응을 했다. 코마 상태에 빠진 두 여자 (중략) 의식이 있어도 서로 말하지 않는 것은 죽은 거나 다름없지. (중략) 현대 무용가 피나 바우쉬.


무엇일까- 무슨 내용일까, 뭐지? 궁금했다. 이런 유의 느낌은, 스페인 화가 고야가 말년에 그린 그림이나, 《완전무결》(2001)이란 스페인 영화를 봤을 때의 느낌, 스페인 예술 판타지* 아닐까, 궁금하다. 시작한다. "딸깍, 딸깍"


* 영화이론가 수잔 헤이워드의 『영화 사전』에서는 판타지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판타지는 우리 무의식의 표현이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가 억압하는 영역, 즉 무의식의 영역과 꿈의 세계를 가장 쉽게 반영한다.” 결국 판타지란 실재하지 않지만 우리의 꿈과 무의식 속에 그럴듯하게 자리 잡고 있는 세계다. 영화가 디제시스, 즉 ‘실재하는 허구’라고 할 때 판타지는 영화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고, 판타지 영화는 영화적 욕망이 가장 잘 발현된 장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_네이버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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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해요 _알리샤(레오노르 와틀링)와 베니뇨(하비에르 카마라)


남자 간호사 베니뇨는 발레 학원에서 춤추고 있는 알리샤를 보고,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사랑에 빠진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알리샤가 코마 상태에 빠지게 되자, 베니뇨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4년간 그녀 곁을 지킨다.


대화하고 싶어요 _리디아(로사리오 플로레스)와 마르코(다리오 그란디네티)


여행지 기자 마르코는 투우사 리디아를 인터뷰하기 위해 그녀를 찾아간다. 사랑의 상처를 지닌 마르코와 리디아는 서로에게 빠져들며 연인으로 발전하지만, 리디아가 투우 경기 도중 사고로 정신을 잃는다.


그녀 없인 살 수 없어요 _베니뇨와 마르코


병원에서 만난 두 남자, 베니뇨와 마르코는 코마 상태에 빠진 그녀들을 보살피며 친구가 된다. 알리샤와 소통한다고 느끼며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 베니뇨와 달리, 마르코는 이제 리디아의 사랑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결국 리디아를 떠난 마르코는 그녀의 사망 소식과 함께 베니뇨가 감옥에 수감된 소식을 전해 듣는데...



“지난 4년간 정말 행복했죠. 그녀를 돌보면서요. 그녀가 원했던 걸 하니까요. 물론 여행은 못했지만.” _베니뇨(하비에르 카마라)

“리디아를 보면 나는 반대야.” _마르코(다리오 그란디네티)

“어떻게?” _베니뇨(하비에르 카마라)

“난 그녀를 만질 수도, 옛날 기억도 나지도 않아. 간호사들을 도와주지도 못하고 자신이 경멸스러워.” _마르코(다리오 그란디네티)

“그녀에게 말해봐요.” _베니뇨(하비에르 카마라)

“그러고 싶지만 듣지도 못할 텐데.” _마르코(다리오 그란디네티)

“그걸 어떻게 알죠?” _베니뇨(하비에르 카마라)

“뇌사 상태잖아.” _마르코(다리오 그란디네티)

“여성의 뇌는 정말 신비로운걸요. 사랑을 갖고 말을 붙여봐요. 생각도 해주고 애무도 해주고 살아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돼요. 경험으로 터득한 치료법이죠.” _베니뇨(하비에르 카마라)


?. 탄츠 테아터(무용에 연극의 개념을 도입한 새로운 장르) <카페 뮐러(Café Müller)>


영화의 시작은 피나 바우쉬 ㅡ 피나 바우슈로도 불리지만, 여기서는 피나 바우쉬로 통일하겠다 ㅡ 의 <카페 뮐러(Café Müller)>를 보여 준다. 조명이 비친 어두운 무대 위. 2명의 여자 무용수와 의자로 가득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무용수는 유연한 몸짓으로 흐르듯 움직였다. 복받치는 무언가를 참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남자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무용수의 움직임에 따라 (넘어지지 않도록) 의자를 치운다. 오! 나를 울게 해주오*가 흐른다.


* 오페라 [요정여왕]에 나오는 비가(悲歌) [오! 나를 울게 해주오 Oh! Let me weep]이다. [요정 여왕]은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을 바탕으로 만든 것인데, [오! 나를 울게 해주오]는 티타니아가 요정의 왕 오베론의 사랑을 잃고 슬퍼하는 대목에서 부르는 것이다.


관객석에는 베니뇨(하비에르 카마라)와 마르코(다리오 그란디네티)가 나란히 앉아 관람하고 있었다. 서로는 몰랐지만 마르코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베니뇨. 깊은 인상을 받는다.


베니뇨는 코마(의식이 없는) 상태의 알리샤를 돌보고 있었고, 마르코는 코마 상태의 리디아와 함께 베니뇨가 있는 병원에 입원을 한다. 우.연. 이들은 인사를 했다. 베니뇨는 <카페 뮐러(Café Müller)> 공연에서 눈물 흘렸던 마르코를 기억해 낸다. 이들은 금세 친해졌고, 베니뇨의 의식 없는 대상에 대한 헌신적이고 다정한 모습에 죄책감을 느낀다. 마르코의 리디아에 대한 사랑은 일반적인, 이성적인 사랑임을 깨닫는다. 의식이 있는 대상에게만 가능한 사랑이었다.


리디아는 여성 투우사이다. 핏빛, 열정의 투우사. 자신의 옛 연인과 헤어져 힘들어하던 때, 자신의 집에서 일어난 뱀사건으로 마르코와 가까워진다. 시간이 지나 연인이 되었지만, 옛 연인에게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이제 마르코에게 말해야 한다. 그녀를 향해 수소는 돌진한다. 붉은 그녀에게, 그녀는 서서히 쓰러진다. 마치, "나를 기억해 주세요. 나를 기억해 주세요."* 라고 부르짖는 것 같았다. 리디아는 코마 상태가 된다.


*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카페 뮐러(Café Müller)>에는 또 다른 퍼셀의 비가가 나온다. 오페라 [디도와 아이네아스]에 나오는 디도의 비가 [내가 죽어 땅에 묻힐 때 When I am laid in earth]이다. [디도와 아이네아스]는 고대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오페라이다. 디도는 트로이의 왕자 아이네아스를 사랑하지만 디도를 미워한 마녀들이 아이네아스의 야망을 부채질해 결국 그녀를 떠나게 만든다. 그러자 버림받은 디도는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내가 죽어 땅에 묻힐 때]는 그녀가 목숨을 끊기 직전에 부르는 것이다. 디도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외친다.


“나를 기억해 주세요. 나를 기억해 주세요. 아! 하지만 나의 이 운명만은 잊어주세요.”


?. 흑백 무성 영화


홀로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20년간 돌봤던 베니뇨. 그는 어머니를 사랑으로 헌신했고, 어머니를 위해 간병인 자격증과 미용자격증까지 받았다. 그의 집 건너편에는 발레 학원이 있었고, 발레를 연습하는 알리샤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된다. 그녀의 움직임은 빛이었다. 그녀는 교통사고를 당해 코마 상태가 된다. 베니뇨는 그녀의 간병인이 된다.


베니뇨의 헌신은 대상을 향한 헌신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사랑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헌신이었다. 그렇다면, 대상이 의식이 없다면, 인형(사물) 같은, 말을 하지 않는 대상. 하지만 그녀(육체)는 베니뇨의 도움으로 건강함이 유지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공연이나 영화, 일상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신을 씻겨주고, 손톱, 발톱을 깎아준다. 하지만, 그녀는 의식이 없다. 영혼이 없는 것과 같다.


베니뇨는 언어가 필요 없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그녀의 눈코입, 따뜻한 체온, 갈색 머리카락. 이미 베니뇨와 알리샤는 대화(교감)을 하고 있다. (그렇게) 믿는다 베니뇨는, 알리샤는 의식이 없다.


어느 날, 베니뇨는 알리샤가 심심해 할까봐 그녀가 좋아하는 무성영화를 보러 간다. ㅡ 나중에 이야기 해주기 위해 ㅡ 제목은 <애인이 줄었어요(Shrinking Lover)>. 여자 박사가 만든 약을 마시고, 점점 작아지는 멋쟁이 남자 주인공, 여자와 남자의 사랑은 이어진다. 남자는 점점 작아진다. 아주 작아진다. 남자는 소멸이 두려웠다. 여자의 몸속으로 사라진다. (29금)


초현실적 장면들, 살바도르 달리 X 히치콕의 《스펠바운드》가 언뜻 스쳤다. ㅡ 살바도르 달리는 스페인 화가, 페드로 알모도바르 스페인 감독 :) ㅡ 


알리샤는 생리를 하지 않았고, 베니뇨는 감옥에 간다. 알리샤는 코마에서 깨어난다. 아이는 사산했지만, 사고 이전의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지난 4년간 베니뇨의 헌신, 아름다움과 의식을 되찾은 것이다. 알리샤는 베니뇨에 대한 일체의 감정이 없다. 육체에 4년 전 영혼이 돌아온 것이다.


?. 쿠쿠루쿠쿠 팔로마*


리디아가 마르코에게 자신의 마음을(옛 연인에게 돌아갈 것을) 말하지 못한 채 함께 들었던 '쿠쿠루쿠쿠 팔로마'. 마르코의 얼굴에서 눈물이 흐른다. 《그녀에게》 를 구슬픈 사랑의 비가로, 어쩌면 스페인의 슬픈 역사를 담은 것 같은, 목소리.


... 사랑은, 도덕적이지만은 않다.


 * 이 노래는 스페인 작곡가 토마스 멘데즈 소사가 멕시코 여행을 하던 중 원주민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듣고 만든 곡이라고 한다. 한 여자를 사랑했던 남자가 이승을 떠난 이후에도 연인을 잊지 못하고 창가에 내려와 “쿠쿠루쿠쿠” 하면서 운다는 내용이다. 이 노래는 ‘라틴아메리카의 밥 딜런’이라는 호칭을 받는 브라질 국민가수 카에타누 벨로주(Caetano Veloso)가 불렀다.


〈쿠쿠루쿠쿠 팔로마〉(Cucurrucucu Paloma)


(중략)

어느 날

슬픈 비둘기 한 마리 날아와

쓸쓸한 그 빈 집에서 노래했다네

그 비둘기는 바로 그의 애달픈 영혼

비련의 여인을 사랑했던

그 아픈 영혼이라네


쿠쿠루쿠쿠 비둘기야

쿠쿠루쿠쿠 울지 말아라



#트리비아 #trivia #나무위키 #뒷이야기

ㆍ타임지 선정 100대 영화
ㆍ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100편' 28위
ㆍ필름 코멘트 선정 2000년대 영화 베스트 100 25위
ㆍ56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비영어 영화상 수상
ㆍ60회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수상
ㆍ75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수상
ㆍ28회 LA비평가 협회 감독상
ㆍ태국 방콕 영화제 작품상, 감독상



인상impression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불편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 같다. 마치 '불편한 진실' 같았다. 그는 연출이든, 내용이든, 감정선이든, 보통의 사람들이 외면하려는 것들을 판타지와 적절히 섞어 보여준 것 같았다. ㅡ 개인적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아쉬웠다. ㅡ


(일반적으로) 사랑은 숭고하고, 도덕적이며, 헌신적이라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욕망하는 존재일 뿐. 육체와 의식을 구별하지 못한 채 대상을 욕망(사랑) 하는 존재. 여기서 신에게 질문하고 싶다. 당신은 왜, 인간에게 축복(사랑)을 선물했는지.


덧, 영화 마지막 무용극을 관람하는 마르카와 알리샤가 나온다. 서로 떨어진 채 같은 공연을 본다. [마주르카 포고] '불타는 마주르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남미의 태양처럼 생명력이 넘치는 작품으로 피나 바우쉬가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영감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서정적이면서 흥겨운 탱고와 삼바, 브라질 왈츠를 결합시킨 장면이 이어진다. 관능적인 음악과 춤, 육체의 움직임, 언어가 아닌 몸이 설명하는 '욕망' 같았다. (하기 무대에서 흘러나온 음악 <라켈 Raq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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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키의 영화 생각

1. 영화는 시詩라 생각합니다.
2. 평점을 매기지 않습니다.
3. 감상은 미니멀을 추구합니다.




* 영상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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