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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동반자

오거스터스 레오폴드 에그

by 하루키

여행하는 동반자가 대칭형처럼 닮은 곳이 많네요.

주의를 기울여 서로 다른 곳을 찾아보세요.

일상의 지루함을 잊을 수 있을 거예요. _매일 그림, 날마다 여행


*

(작가, 미술 기법, 역사적 배경 등 일체의 객관적 사실을 배제한 하루키의 감각과 추상표현으로 쓴 감상입니다.)

1300px-Augustus_Leopold_Egg_-_The_Travelling_Companions_-_Google_Art_Project.jpg Augustus Leopold Egg <The Travelling Companions>, (1862) 출처: Wiki



+ 하루키 감상

1862년 그러니까 에그가 죽기 1년 전*. 친구 찰스 디킨스를 비롯한 가족, 의사들의 강력한 조언을 받아들여 간병인 한 명만 대동한 채 알제리로 가기를 결정합니다. 이유는 문학적으로 익숙한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보다 이국적인 문화와 원초적인 아프리카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오거스터스 레오폴드 에그는 1863년 호흡기 질환과 폐 질환으로 알제리(의 알제)에서 46세의 나이로 사망.


그 해 봄 프랑스 남부로 이동. 니스 항에서 대형 유람선을 타고 알제리로 향합니다. 최근에 잦은 기침과 예민해진 탓에 불면증이 있던 에그는 어젯밤 배가 많이 흔들려 잠을 설친 채 (비몽사몽 한) 아침을 맞이합니다. 잠시 벽에 몸을 기대자 순식간에 잠이 듭니다. 에그의 눈앞에 갑자기 끝없이 펼쳐진 황금 사막과 모래 언덕이 보입니다. 회오리바람이 지나가자 황금 모래들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하늘로 용솟음쳤습니다. 에그는 혼자였고, 낙타 위에서 사막의 지평선 한 지점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얼굴 전체를 감싼 하얀 터번 구멍 안에서 두 개의 형형한 빛이 빛나고 있습니다.


"분명 배안이었는데,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는데, 여긴 어디지. 사막? 꿈? 사후세계인가?"


에그가 눈을 깜박이자 엄청난 빛이 순식간에 쏟아져 들어왔고 정신을 차립니다. 자신의 객실에 있음을 확인한 에그. 속이 울렁거려 방을 나옵니다. 갑판으로 향하는 도중 69호실을 지나칩니다. 무의식적으로 열린 문 사이로 방안을 보게 됩니다. 방안에는 두 명의 똑같은 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 보였습니다. 영국인으로 보이는 여성. 마치 거울을 앞에 선 사람과 거울 속에 비친 것처럼 보였습니다. 기이한 두 여인의 창문 너머로 지중해가 보였고 서서히 알제리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에그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되돌아옵니다. 급히 자신의 캔버스에 목탄으로 스케치를 시작합니다. 울렁거림이나 두통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스케치를 완성합니다. 그 아래 짧은 메모를 남깁니다.


의상: 실크 애프터눈 드레스, 회색빛이 감도는 재질.

책: 오른쪽 여성이 읽고 있는 책은 작은 포켓북 크기, 갈색 가죽 표지 제인 오스틴 소설이나 밀턴의 시집 가능성.

모자: 검은색 벨벳 재질 보닛Bonnet 스타일 모자. 빨간 깃털 장식.

바구니: 오렌지와 쪽지.

꽃다발: 분홍 장미와 빨갛고 흰 꽃들.

두 여인: 백옥 피부, 브라운 헤어. 오른쪽 여인은 파란색 장갑을 착용.



&



1. 쿨럭쿨럭 알제리에 도착한 지 한 달. 흐~ 흠 기침은 줄어들었는데, 폐가 아프다. 가끔 숨이 가빨라질 때도 있다. (알제리) 알제Algiers는 기후가 따뜻하고, 한 달 내내 해를 볼 수 있어 런던과 비교해 축복받은 도시 같다. 이제 알제에 적응했으니 미루어 두었던 (유람선에서 스케치한) 두 여인의 그림을 완성해야겠다. 어쩌면 마지막 작품이 될지 모를,


"예술가의 진정한 유산은 캔버스에 남긴 질문들이다. 답을 주기보다, 세상을 성찰하게 만드는 힘" _1862년 에그의 일기 중 일부


2. 요즘엔 그림 그리는 시간 외에는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보니 사람과의 대화보다는 혼자 생각하고 혼잣말하는 일이 많아졌다. 혼자서 사색을 하다 보면, 종종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고, 밤새워 대화를 하기도 한다. 쿨럭쿨럭


3. 흐~ 흠 두 여인의 그림을 완성하며 든 생각은 삶은 여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이 여행은 혼자 만의 여행일까. 아니면 가족 혹은 친구와 함께 하는 여행일까. 모르겠다. 현재 가족, 친구, 영국을 떠나 이국에서 철저히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나'는 '나'와 단독하고 있다. 내 안에 내가 깨어났다. 목소리가 들린다.


"숨쉬기조차 고통인 이 몸으로, 어떻게 붓을 잡을 수 있을까? 하지만 캔버스는 내 두 번째 폐다.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진짜 숨 막혀 죽을 것 같다." _1862년 에그의 일기 중 일부


4. 나는 두 개다.


오른쪽 나는 갈색 머리. 흰 피부. 회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의지의 나. 의지는 단정하게 장갑을 끼고 독서를 한다.

왼쪽 나는 갈색 머리. 흰 피부. 회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무력한 나. 늘 무언가를 기다린다. 평화, 안정, 막연함을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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