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 애니메이션
2021년 일시적으로 코로나 국면이 소강상태일 때가 있었다. ㅡ 극장에서 영화 보는 여건이 많이 좋아진 시기 ㅡ 당시 《소울》이 개봉했고, 주변에 음악 좋아하는 친구들과 평론가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아 꼭 보고 싶었다. 하지만 ... 극장에 가는 것이 마치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경계에 가는 것 같아 포기했었다. ㅡ 고집이 세지 않다. 아니다 싶으면 바로 포기 ㅡ 그래도 ... 어찌나 아쉽던지 한 달에 한 번 꼴로 소울을 볼까 말까 고민했었다. 11번의 망설임, 시작한다. "딸깍, 딸깍"
"어린 물고기는 나이든 물고기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전 바다라고 불리는 엄청난 것을 찾고 있어요." 바다?" 나이 든 물고기가 말했다. "그건 지금 너가 있는 곳이야." 그러자 어린 물고기는 "여기는 물이에요. 내가 원하는 건 바다라고요!" _ 리바 가드너(필리샤 라샤드)
조 가드너는 뉴욕시 재즈 뮤지션이며, 한 중학교에서 시간제 교사로 밴드를 가르치고 있다. 조는 시간제 교사가 아닌 정직원이 될 것을 제안받았지만 직업 연주자가 되길 바란다. 옛 제자로부터 유명 재즈음악가인 도로시 윌리엄스의 밴드에 피아니스트가 비어 있다는 연락을 받고 오디션에 참가해 이들의 연주를 따라 하다 마지막엔 이들을 압도하게 된다. 도로시 윌리엄스는 함께 공연을 제안하고 조 가드너는 기뻐하며 집에 가다 맨홀에 빠지게 되는데 ...
《소울》을 명쾌히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불꽃 이야기'이다. 여기서 불꽃에 대한 다층적 의미는 뭘까?
ㆍ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고, 육체는 영혼을 담는 그릇이 된다. 그리고 필멸한다.(반드시 죽는다.) 영혼은 언젠가 소멸한다. 마치 불꽃의 소멸처럼 ...
ㆍ불꽃은 스스로 타오를 수 없다. 반드시 매개체가 필요하다. 매개체는 나무 일수도, 기름 일수도, 종이 일수도 있겠지만, 《소울》에서 불꽃은 하고 싶은 것의 상징이다. 재즈이다. 재즈는 주인공 존 가드너의 재즈에 대한 열정, 즐거움, 사랑을 매개로 불꽃이 되었다.
ㆍ22는 수십억 년을 지구로 내려가지 않고 '태어나기 전 세상(the great before)'에서 떠돌이 영혼으로 살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불꽃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을 사는 데(태어나고 죽는 삶의 주기) 이유는 없다. 불꽃도 없다.
관리자 제리는 영원불멸하며 전지전능했다. 하지만 '태어나기 전 세상(the great before)'에서만이다. ㅡ 결국 절대자 제리들도 더 상위의 무언가의 시스템에 따라 움직일 뿐, ㅡ 제리들은 태어나기 전 영혼에게 성향을 결정시키고, 죽어서 지구에서 되돌아온 영혼들에겐 성불成佛*을 시키고 있었다. 영혼이 지구 인간이 되기 위해선 또 하나의 특별한 과정이 있었다. 멘토를 통해 각자의 길道을 수업받아야 했다. ㅡ 단테의 『신곡』에서 연옥이 나온다. 예수님이 세상에 나오기 전 살았던 현자들의 영혼, 즉 성불하지 못한 현자들의 영혼들 ㅡ
이러한 세상에도 틈은 있었다. 지구에 내려간 인간들은 특별한 순간(몰입)을 체험하며 '태어나기 전 세상(the great before)'의 틈에 나타난다. 이곳엔 2종류의 영혼들이 머물다 떠난다. 한 종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영혼들, 한 종류는 고집苦集*의 영혼들이었다.
* 불교) 영혼의 소멸
* 도교) 외물(外物)과 자아, 객관과 주관, 또는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울려 하나가 됨
* 불교) ‘고苦’는 생로병사의 괴로움, ‘집集’은 ‘고苦’의 원인이 되는 번뇌의 모임
#트리비아 #trivia
ㆍ골든 글로브 애니메이션, 음악상 수상
ㆍBAFTA 장편 애니메이션, 음악상 수상
ㆍ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 음악상 수상
ㆍ전미 비평가 위원회 장편 애니메이션상 수상
ㆍLA 영화 비평가 협회상 음악상 수상
ㆍ초반에 "내 바지 어디 갔어?"라고 말하는 여성이 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픽사의 스토리보드 아티스트 박혜인) 또 22가 들어간 박스 안의 공간에 역대 멘토들의 명찰로 추정되는 것들이 있는데 자세히 보면 한국인의 이름도 몇 개 보인다. 그 외에 한국어로 된 간판도 보인다.(1:30 부근)
"하늘을 보거나 걷는 건 목적이 아니야. 그냥 사는 거지." _조 가드너(제이미 폭스)
순간 머리를 1 ton 해머로 꽝 맞은 느낌이 들었다. 애니를 보는 내내 주인공 존 가드너의 가늘고 긴 모습에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이 떠올렸다. 그러나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위 대사를 듣는 순간, <걷는 사람>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은 그가 평생 서 있는 존재(Être debout)라는 실존적 철학의 바탕에서 나왔다. 인간이 진정 서서 걷기 위해 몸의 군더더기를 다 떼어 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되는 것이다. 그는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수많은 죽은 사람을 본 것이다. 사람이 죽은 것인지 잠을 자고 있는 것인지 구별하고 싶었다. 실존에서 무無로 향하는 인간의 운명에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볍지만 '살아있다'를 조각으로 보여주려 했었다. 어쩌면 이러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소울》이 보여주려 한 것은 아닐까?
《소울》은 《코코》를 만든 애니메이션 팀이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ㅡ 《코코》를 매우 좋아한다. ㅡ 그래서일까? 《코코》와의 유사성이 많이 느껴졌다. 시골 감성과 도시 감성 같은 대비도 느껴지는, 좋았던 만큼 아쉬움도 컸다. ㅡ 그렇게 재즈적인 애니메이션은 아니었다. ㅡ 픽사의 22번째 애니메이션 《소울》 완성도가 좋았다. :)
☞ 하루키의 영화 생각
1. 영화는 시詩라 생각합니다.
2. 평점을 매기지 않습니다.
3. 감상은 미니멀을 추구합니다.
* 하루키 픽 OST - Parting Ways - Cody Chesnu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