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돈도 필요하지만, 나답게 살고 싶어요.

여러분 잘 들으세요. 우린 예술가가 아니에요!

by 하루만

"축하드립니다. 하루만 님.
인플루언서로 선정되었습니다."

이제 막 발 걸치기 시작한 블로그인데 운이 달라붙었나 보다. 체험단 선정이라니.

"풉"
체험단인데 그럴싸해 보이는 "인플루언서"라는 말을 달아주니 민망한 웃음이 터졌다.

'나 이거 할 수 있을까?'
덜컥 선정되고 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불확실한 프리랜서의 삶이란 늘 구차하기 짝이 없다. 전문직 여성처럼 프로필을 찍어봤자 이번 달 대출이자에 몇 퍼센트를 감당할 수 있을지 미리 알 재간도 없다.

그렇다고 활자 혹은 음표나 들여다보던 내가 팔을 걷어붙이고 단단히 돈을 벌기로 마음먹어본 들 상업적 수완이 옵션처럼 장착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분위기와 무드. 한 마디로 눈만 높다.(출처 unsplash)



"자신을 브랜딩 하세요."

돈을 벌려면 이제는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고 요즘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그러나 나는 중2 때 이미 평범하게 살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다. 그 당시 나만한 덩치의 악기를 메고 학교에 갔다가 모두 나만 쳐다보는 이목집중과 생겨나는 소문들로 인해 "남들 눈에 튀지 말자"를 소신으로 삼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고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 세상 두려울 게 무어냐. 눈 깜짝할 새 찾아오는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죽음과 도태뿐이다.


'옴마야, 체험단 하나에 이리 비장해질 일인가.'
속으로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의자 놓을 공간이 없는 화장대 앞에 서서 줄어든 살림밑천을 어떻게 불릴 수 있을지 고민한다.

'남들은 블로그 키워서, SNS 계정 키워 돈 번다는데 나는 왜 돈 되는 일을 못 할까?'


지금 하고 있는 레슨을 늘리고, 독서강의를 더 여러 개 한다고 해도 그것은 많은 수입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또 다른 일을 찾는다는 것이 바로 블로그이다. 자신의 계정을 만들고 브랜딩 하는 일을 이제 더는 늦춰서는 안 된다며 언제 완공될지 모르는 온라인 빌딩 짓기를 시작한 것이다.


아직은 나의 색을 찾아가며 여러 공부를 하고 있는 차에, 얼마 전 나는 블로그로 어떻게 돈을 버는지 알려주겠다는 무료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이미 자신이 얼마나 잘 벌고 있는지 입증해 놓은 게시글 덕분에 엄청난 사람들이 그 수업에 참여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홈피드에 먹히는 글은 이런 거예요. 논란이 되는 글 있죠? 카페 게시판에서 엄청 클릭률이 높았던 거. 그런 걸 퍼오세요."

바로 댓글이 달렸다.

"그건 저급한 거죠."

부정적인 댓글을 단박에 치고 나오는 그분의 대답은 단호했다.

"여러분, 잘 들으세요. 우린 예술가 아니에요! 네이버가 좋아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냥 하는 거예요."


돈 버는 법 알려달라더니 무슨 일류, 삼류를 따지냐는 그분의 말은 일리가 있다. 클릭률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블로거들의 살아남는 비법이기 때문이다. 또 그 일은(그분이 가르쳐 준 조건에 따르면) 불법도 아니지 않은가.


‘나도 저렇게 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나는 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당장 궁한 형편에 뭘 따지냐고 하겠지만, 글쓰기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직접 경험했던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진정으로 쓰는 글이 나와 같은 처지에서 힘들어하는 이를 토닥일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삶을 향해 더 넓고 깊이 살아가는 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기에 삶은 참 어렵다.

의미만으로는 전기요금을 낼 수 없고, 가치만으로는 아이의 학원비를 낼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내가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건, 나보다 앞서 자신의 가치대로 살아가면서도 먹고 살 돈을 벌고 계시는 분들이 이미 있기 때문이다.


내 안을 들여다보면 예전과 달라진 점도 분명히 있다.

"크게 벌지 않아도 돼. 얼마를 벌던 그걸로 아껴살면 되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먹고사는 게 어느 정도 보장될 때 나오는 선비정신이란 거다.


그러니 예전에 내가 '돈에 연연하지 않아’라는 말은 삶이 살만해서 억척스럽게 벌지 않아도 됨을 의미하기도 하고, 내가 하는 일에 있어 간절함이 부족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는 주어진 삶을 전적으로 책임지기 위해 갖은 수고를 감당해 내며 그 안에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오늘 도전해야 할 일의 리스트를 작성한다.

'아, 이걸 어떻게 해.'

도망치고 싶다. 난 조용히 살고 싶다고! 근데 이자도 내야 하는데..

갈등은 여전히 남아있고 선택은 매 순간 일어난다.


두우웅 두우웅

저 멀리서 들려오는 매혹적인 종소리가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퍼져나간다.

(예술하는 거 아니다. 정신 차려라.)

뭘 선택할래?

"전 예술도 하고, 옷도 사 입고 싶어요!"



keyword
이전 14화엄마, 미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