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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미원!

밉다고 미원

by 하루만

첫 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때쯤, 나는 초품아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한 날은 이제 막 6학년으로 올라간 지인분의 아들이 집에 와서 대성통곡을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엉엉, 엄마. 우리 가난해? 돈이 없어서 이 아파트에서 제일 작은 평수에 사는 거야? 다른 친구들은 다들 큰 평수에 사는데 왜 나만 이렇게 좁은 집에 사는 건데!"


이제야 세상물정을 좀 알게 된 아이는 유독 집 크기에 그리 집착을 했다. 그 집은 전혀 못 살지 않았고, 능력자 아버님께서는 두둑한 월급을 척척 가져다주셨다.


지인분은 현금을 전세금으로 묶어두는 게 아까워 작은 평수를 선택하셨고, 그 점을 아이에게도 잘 설명하셨다. 그러나 결국 그 지인분은 이사를 결정하고 말았다. 추측건대 아이들 간에 예민한 신경전 같은 게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00 이가 곧 졸업인데 전학 가면서까지 이사를 가겠대요?"

"거기 집은 48평이야. 지은 지도 얼마 안 됐고. 집을 보더니 신이 나서 바로 전학 가겠대."


그분이 떠나시면서 자신과 같은 평수에 살고 있는 내게 신신당부를 하셨다.

"어휴, 절대 제일 작은 집에 살지 마. 웬만하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큰 평수 가야 해. 애들 자존심 상하기 전에."


만약 그 당시에 내 아들이 자존심이 꺾여 울고 있다면, 나도 속이 상해서 무슨 방도를 마련해서라도 아들 어깨를 쫙 펴지게 해 주고픈 마음이 간절했을 거다. 하지만 아이의 날개가 꺾인 매 순간마다 부모가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그 또한 아이를 위한 참된 교육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만 지나면 깨닫게 된다.


"얘들아, 집이 작아져서 속상하지?"

"그러니까.. 나는 이 집이 좋은데. 이사 가기 싫어!"

둘째가 징징거리며 자기 속마음을 드러낸다.

"거기 가면 이제 이사 안 갈 거야?"

첫째는 더 이상은 익숙한 곳을 떠나 환경의 변화가 생기는 것이 달갑지가 않은 모양이다.


"이제 이사 가지 말고 거기서 평생 살자. 나중에 시골에 집이나 하나 짓고 4도3촌하는 거 어때?"

"그거 괜찮네. 그럼 주말마다 가서 쉬고 고기 구워 먹고."


나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워볼 생각으로 목소리 톤을 높이고 오버하며 답을 한다. 환상이 아닌 현실에서 이룰 수 있는 최선으로 아이들과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다.



나는 부모가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 아이들과 어느 정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질적으로 고된 시간들을 견뎌내는 것은 부모뿐만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의 일이기 때문이다.


"엄마, 도수치료가도 뭐 딱히 해주는 게 없는데 내가 집에서 스스로 해볼게."

발목삼면골절로 수술을 받았던 아이가 퇴원 후 도수치료를 갔다 와서 꺼낸 말이다. 30분에 10만 원이라는 치료비에 깜짝 놀라는 엄마를 본 아들의 깊은 속내였다.


"치료 더 안 받아도 괜찮겠어? 우리 아들이 엄마 생각해서 그렇게 말해준 거 같은데?"

"나도 집안에 도움이 돼야지. 수술비도 많이 썼는데."


돌봄을 받던 어린아이가 어느새 함께 돌봄을 자청하고 나섰다. 미안한 마음에 눈이 시큰거렸다.


이사 온 지 세 달, 요즘 부쩍 내 잔소리가 늘었다.

"공부 안 하고 계속 놀면 어쩌니? 그래서 기말시험 칠 수 있는 거야? 시험계획은 다 세웠고? 일단 네가 좋아하는 과목부터 시작해 봐. 영, 수는 기본적으로 매일 해야 되는 거 알지? 모르는 거 있으면 사촌형한테 좀 물어보고.. 쏼라쏼라"


엄마의 걱정은 늘 잔소리로 대변된다. 알면서도, 고치려 해도, 참 쉽지가 않다.

반성하는 의미로 카톡으로 아들에게 사랑을 표한다.


그날 오후,

"어머, 너 지금 자고 있는 거니? 책은 읽었어?"

오전에 사랑을 고백했는데, 침대에서 퍼질러 자는 아들을 보니 어쩜 잔소리는 자동반사다.


그런 엄마가 미울 때면 아들은 살짝 애교를 넣어 소리친다.

"엄마, 미원!"

이에 질세라 둘째가 뒤를 받는다.

"다시다!!"


아들아, 미워서 미원? 감칠맛 나는 너의 인생을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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