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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아진 안방 멀어진 부부관계

폭삭 멀어졌수다

by 하루만

신혼시절 잠자리에 누울 때면 남편은 늘 팔베개를 해주었다.

"자, 이리 와."

하고 남편이 왼팔을 뻗으면 나는 푹신한 베개는 제쳐두고 그의 품으로 쏙 하고 들어갔다. 단단한 그의 어깨에 머리를 살포시 내려놓고 서로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있노라면, 하루 동안의 불안과 걱정은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이사 온 집 안방은 쓰던 침대와 새로 넣은 붙박이장이 딱 맞게 들어차있다. 침대 왼쪽에서 자려고 누우면 남편의 유튜브 보는 소리가 나의 신경을 긁는다.

"여보, 소리 좀 낮춰죠."

신혼때와는 사뭇 다르게 오른쪽에서 전해지는 소리와 불빛이 싫어 베개를 세워 가림막을 만든다. 그것도 모자라 등을 돌려 옆으로 돌아누워버린다.


인생이 고달파지면 눈앞에 산적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각자 힘이 빠진다. 팔다리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다 털린 상태로 집에 돌아와 누우면 약속이나 한 듯 서로의 몸이 닿지 않게 멀찍이 떨어져 눕게 된다. 뾰족하고 날카롭던 신경 안테나를 끄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결코 쓸 생각이 없다는 듯 말이다.


'이사 와서 몇 번째 생리인거지?'

그와 관계를 안 한지가 너무 오래됐음을 눈치챈 나는 좀 너무 했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대체 그럴 정신이 어디 있었냐는 하소연을 벽에다 대고 해 본다.


정신적 고통이 끝나지 않는 삶은 참으로 팍팍하다. 하지만 부부가 서로 교감하는 성적친밀감은 무엇보다 위기의 순간에 필요하다.

"무섭게 왜 이래."

스킨십에는 영 젬병인 남편이 갑자기 뽀뽀하는 내게 기쁨의 축사(?)를 던진다.


출처:unspalsh


내일의 문제를 또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모르는 불안감을 앞에 두고, 우리는 서로에게 몸을 맡긴다. 알지도 못하는 남녀가 몸을 섞는 일회성의 관계가 요즘 문화라면, 어둠의 터널을 같이 건너는 부부의 관계는 그 무엇보다 숭고하다. 삶으로 고달픈 중년부부에게 서로를 내어줌이란 싸구려 사랑체험을 넘어서는 일체감, 그것으로부터 얻는 내면의 자양 강장제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오빠, 나 오늘 홍콩 보내줘."

쾌락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은 관계를 가질 때 오직 오르가슴만 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15년 이상을 살아낸 부부에게 매번 강렬한 오르가슴이 관계의 정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쯤 되면 발을 찔러대는 가시밭길도 피하지 않고 같이 걷는 상대를 애틋하고 소중히 여기게 되고, 불쌍히 여겨 보듬게 되는 시간이 아닌가 싶다.


"꾸역 꾸역이라도 우리 오늘 잘 살아냈네."

그리하여 부부간에 누리는 황홀경이야말로 위태위태한 영혼을 강화해 주는 신의 특별한 선물이 된다.


자양 강장제를 드신 남편은 "여기가 광야야. 광야!"라고 외치며 인생의 싸대기를 맞고 새롭게 빚어지고 있으니, 그것 또한 그저 감사다.


주춤하는 그대여, 삶이 고통일지라도 이 밤에 신의 축복을 감사함으로 누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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