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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이션 두 송이

어버이날

by 하루만

"얘들아, 오늘 어버이날이야. 나가서 카네이션 두 송이만 사와."
철퍼덕 퍼진 상태로 폰과 티브이를 보고 있는 아들들에게 임무를 부여했다.


"아, 맞다. 어버이날이지!"

결혼기념일에는 몰래 케이크까지 사 와서 감동을 시키던 아들들이 정작 어버이날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


"나가기 귀찮은데.."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더니 나가기까지 한 세월이다.

애들이 나가자 나는 침대 위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꽉 부여잡았다. 지금 미팅하고 있을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싶었다. 감은 두 눈은 고요하고 깊은 심연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영혼의 간절함을 끌어올렸다. 뜨거워진 가슴은 소리없이 줄기 눈물을 흘려보낸다.


"띠리링"
해결됐다는 연락일까 싶어 급히 전화를 받았다.
"엄마, 꽃집이 두 개나 있는데 어디 가서 사?"

기다리던 남편이 아니다. 폰에서 들려오는 데시벨 높은 아이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저 멀리로 사라진다.


'이번에도 안 되면..'

어떤 결과이든 남편과 함께 애써 버텨온 시간들이 헛수고가 되지 않게, 오늘도 우리는 답을 찾아야만 한다.


"삐삐삐삑"
현관문 비번을 누르는 소리가 난다.
침대에서 일어나 옷소매로 얼굴을 문지르고 일어섰다.

"아들~꽃 사 왔어?"
"엄마, 안돼. 아직 오지 마."
첫째와 둘째는 바스락거리며 후다닥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작업을 하는지 형의 지령을 받은 둘째가 거실과 방을 오가며 부산을 떤다.


"엄마~아빠는 언제 와?"

안방 안으로 빼꼼 고개를 내민 첫째가 아빠를 찾는다. 그 질문에 나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괜스레 청소하는 척을 한다.

"글쎄.. 오늘 약속 있으신가 봐."

내 대답이 흐릿하게 퍼진다.


"얘들아, 일단 엄마가 먼저 받을게."

"아.. 안되는데.."

"아빠 늦으실 거야. 그냥 가져와."


잠시 후 투명비닐에 쌓인 카네이션이 등장했다. 꽃을 건네주며 아빠는 빨간색이고, 엄마는 좀 더 특별한 하얀색이라고 일러준다. 카네이션 포장지 안쪽에는 만 원권 한 장과 천 원권 세장이 곱게 깔려있다.

"꽃만 주면 되는데~무슨 돈까지 넣었어."
이런 건 어디서 보고하는 건지 굳었던 얼굴에서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엎드려 받아낸 카네이션



"엄마 꺼는 천 원이 더 들어갔어."
"그래? 고마워. 너무 예쁘다."

평소 같으면 아이들의 이벤트에 호들갑 떨 내가 오늘따라 입이 옴싹달짝 하질 않는다. 아직 집에 오지 못한 남편이 마음에 걸려 옆에 기대고 있는 아이의 머리만 쓰다듬는다. 무거운 밤이 내려앉은 거실은 개그 넘치는 우리 집 가정의 달 이벤트마저 식혀버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서로 장난치는 아이들을 보며 속으로 다짐했다.

'엄마, 아빠가 꼭 다시 일어설게. 사랑해 아들들!'



꽃병이 없어 계랑컵에 꽂은 카네이션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말에 따르면 마흔은 가장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황금이자 '인생은 고통'이라는 인식에 도달하는 시기라고 한다.


그는 고통을 두 가지로 분류하는데 출세, 부, 명예와 같이 손에 잡히는 것을 향해 달릴 때와 무게중심을 자기 자신 안으로 가져올 때이다. 두 상황 모두 고통을 수반하는데 앞은 가짜행복이고 뒤는 진짜라고 설명한다.


진짜 행복을 좇을 때 괴로운 까닭은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통찰로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부서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할 때 새로운 것, 즉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마음, 타인에 비굴하지 않고 기죽지 않는 당당함,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있는 품격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만약 오늘을 살아냄이 고통스럽다면, 자신이 좇아가고 있는 것은 어떤 행복인지 확인해 보자.


요즘 나는 돈에 대한 무지를 산산이 깨부수는 작업 중이다. 또 속도를 늦춰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지친 남편의 등을 토닥이며 거리를 좁힌다. 계속해서 깨뜨리고 부서지며 처음 발견할 보물들을 찾게 되겠지.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야 들어온 남편이 내게 툭 한마디를 던진다.

"일어나야지. 이제 잘 일어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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