밟고 올라서기
"여기 위에서 그릇 좀 꺼내줘."
남편이 파스타가 거의 완성되어 갈 때쯤 담을 그릇이 필요하다고 알린다.
이사 와서 하부장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대부분 그릇을 상부장에 넣게 되었다. 삼단이나 되는 상부장에서 그릇을 꺼내려면 2층은 발꿈치를 들고서 팔을 쭉 뻗어야 하고, 3층은 남편이 꺼내야 한다.
"파스타 그릇은 겹쳐져있어 위험하네."
발뒤꿈치를 들고 겹쳐진 그릇들을 2층에서 모두 꺼내려니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우리 그거 사자. 접었다가 펼치는 거."
이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접이식 발판이다.
"왜 이걸 진작 안 산 거지?"
처음 써보는 발판은 꽤나 매력적이었는데 그것을 밟고 올라서는 순간, 구석진 안쪽코너며 꼭대기 삼층에 놓인 그릇들까지 모두 한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찾아도 없던 게 이 안쪽에 있었네."
상부장의 코너가 되는 부분은 사실 버려지는 공간이다. 안쪽 깊숙이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잘 안 쓰는 것들을 넣어둘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발판을 밟고 올라서서 머리를 왼쪽으로 기울이면 오른쪽 깊은 곳에 숨겨진 것들도 파악이 된다.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게 이렇게 속 시원한 일이구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면 사실 그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그나마 가족들에게 어려움을 토로해 볼 수는 있겠지만, 듣는 이도 같이 낙담되는 무거운 내용을 자꾸 펼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도 내 삶을 미리 속속들이 들여다봤다면..'
때로 우리는 삶의 상부장처럼 손 닿지 않는 높은 곳에 문제들을 그냥 두곤 한다. 당장 해결할 필요가 없다고, 귀찮고 한편으론 무서워서, 괜히 꺼냈다가 감당이 안 될까 봐 미루고 미룬다.
하지만 꺼내 보지 않으면,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불안이 산더미처럼 쌓여간다. 무섭더라도 조금 더 일찍 들여다보고, 더 솔직하게 마주했다면 어땠을까? 더 빨리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후회가 되더라도 지금 이 순간, 나는 접이식 발판을 꺼내 들고 있다.
"밟고 올라서십시오."
발판을 펼치자 주문처럼 문장이 튀어나온다.
지금의 압박을 밝고 올라서면
숨겨져 있던 모든 문제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날이 오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모르겠고,
고민고민해도 닥쳐오는 매일을 나는 또 살아낸다.
훗날 남편과 이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라며.
"눈물 젖은 골짜기를 기어서라도 결국은 우리 지나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