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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만 9시간전

아빠밥이 치료제

#돈코츠라멘

"얘들아, 아빠가 돈코츠라멘 해주신."

늦어진 주말 아침을 남편에게 토스시키며 아이들에게 통보를 한다. 준비를 도울 참으로 냉장고에서 보쌈 자투리 고기를 담아둔 통을 꺼냈다.


'이걸 미리 찍어둘까?'

이번 주 먹은 메뉴 중 어떤 걸 글로 쓸지 모르니 우선 다 찍어두자. 조심스레 뚜껑을 여니 맛깔나게 썰어내고 남은 못생긴 고기 몇 점과 자작한 국물이 초라하고 보잘것없이 담겨있다.


"찰칵"

인증샷 사명감에 버튼을 눌러보는데 첫째의 고개가 거북이목처럼 카메라 안으로 쑥 들어온다.

"엄마, 이걸 왜 찍어?"

갑작스러운 첫째의 질문에 나는 사진창을 후다닥 닫고 폰을 손에 꼭 쥔다.

"이거? 아.. 왜 찍냐면 말이지.."

내 연재 얘길 할까 말까 고민하는 찰나 심장박동수가 마구 솟구친다.


"여보~~ 빨리 나와서 애들 돈코츠 해줘."

자연스럽게 남편을 호출하며 뜸을 들여본다.

"있지.. 엄마가 요즘 글을 연재하고 있거든."

"글? 그게 뭔데?"

첫째 눈이 동그래졌다.

"브런치라는 글 쓰는 앱이 있는데 거기에 연재하는 거야. 제목이 뭐냐면.."


막상 입으로 말하려니 살짝 부끄다.

잘 알아들으라는 마음에 한 글자씩 또박또박 소리 내어 말했다.

"요. 리. 하. 는. 남. 편. 은."

내가 여기까지 말하자 첫째는 자신의 안경테 한쪽을 잡아 추켜올렸고, 속옷차림에 나온 남편은 냄비를 꺼내다 말고 쳐다본다.

"사랑입니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한 호흡에 남은 문장을 훅 내뱉었다.


제목을 들은 첫째는 입꼬리를 올리면서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린다.

"하하하, 에이 엄마!" 

그러더니 날 부르고는

"허구를 쓰고 그럼 안돼."

검지손가락을 쭉 빼서는 도리도리를 친다.

"뭐야 너~~~"

나는 소리를 지르고 남편은 자신과 똑같은 개그를 구사하는 중1 첫째의 대답에 빵 터지셨다. 정작 무슨 내용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고 말이다. 으이그, 여하튼 이 집 남자 셋은 엄마 놀리기에 늘 혈안이다.




둘째는 잘 몰라도 첫째는 엄마아빠가 다투는 이유를 우리가 서로에게 내질렀던 수많은 단어와 문장 속에서 이해를 했던 것 같다. 한 번도 부모의 싸우는 모습을 본 적 없던 아이가 돌변한 눈빛과 싸늘한 표정으로 서로를 비방하고 육탄전을 불분위기 조성할 때 과연 기분이 어땠을까?


"엄마, 우리 가족은 왜 행복하지 않은 거야?"

이 말을 듣고 가슴이 미어졌지만 엄마가 살려고 싸운다는 말차마 하지 못했다. 그저 행복해지려는 과정 중에 있다고 말했을 뿐이다.


"저 때문에 엄마 아빠가 싸우는 거 같아요."

아이들은 부모의 싸움을 자기 탓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부모 간의 다툼이 가족의 안정감을 깨트릴 때 아이는 이를 피하려고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고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고 한다. 가정의 붕괴를 막으려는 무의식적 책임감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잘하면 엄마, 아빠가 다시 사이가 좋아질 거야."

아이는 자신의 전부인 부모의 사랑을 잃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에 스스로 노력하기로 한다. 그래서인지 첫째도 우리가 싸우는 걸 방에서 듣고 있다가 긴장감이 최고조에 다다른다 싶으면 뛰쳐나와 내 앞을 가로막고 중재를 했다. 예민한 기질에 풍부한 감성을 가진 첫째가 너무 걱정이 된 나는 남편과의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동안 아이를 위해 심리상담도 받았다. 미술치료와 음악치료 같은 것인데 사실 나 스스로 위안 삼으려는 몇 회의 상담이었던 거 같다.


남편과 다시 살아보기로 작정 4년의 시간 동안 나는 모든 관계를 끊었다. 남편과 아버지 간의 불화가 있던 시댁은 완전히 연락을 끊었고, 친정은 전화로 연락은 해도 얼굴을 마주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아주 오랜만에 친정을 방문했을 때다. 아빠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해 요리 솜씨를 발휘해 저녁을 차리자 아이들은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며 아빠의 손맛을 알리기 바다.


"얘들아, 너네 아빠가
아무리 요리를 좋아한다지만
이건 보약이다.
저저 저게 보통 정성이니!"


차려진 음식을 드시던 친정아버지는 흥분하시며 말까지 더듬으다.


남편이 친정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오징어숙회와 어묵국수를 뚝딱 만들어낸다.


맞다. 그가 가족을 위해 내놓은 한 끼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자신의 허물까지 품고 용서하 안아주신 장인어른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고, 나와 아이들을 위한 헌신이었다.


아빠와 같이 시장구경하며 재료를 사고 아빠가 그걸 손질해서 밥상 위 요리로 내놓는 걸 보며 아이들은 '내가 사랑받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분명 느꼈을 거다. 결국 아이에게 진짜 치료제는 심리상담이 아니라 아빠의 따뜻한 밥이었던 것이다.


"애들이 너무 밝게 자랐다. 첫째는 말하는 애어른이구만. 아빠하고 저렇게 놀고 시간 보내는 진짜 좋은 거야."

부산 외할아버지 댁에 간다고 하니 유튜브에서 장산범이야기를 꺼내는 아이들. 결국 아빠랑 장산범을 찾으러 일부러 저녁 늦게 장산으로 나갔는데 모습을 보시곤 하시는 말씀이다.


내가 더 이상은 아빠랑 못 산다고 첫째에게 말했을 때 밤새 울던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셨던 친정아버지는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건강하게 자라준 손자를 대견스러워하셨다.


보잘것없던 보쌈 귀퉁이 고기의 대변신


보쌈 귀퉁이 고기처럼 못생기고 비루했던 우리 부부가 아이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었지만, 완성된 음식에 대한 열망이 남은 고기 점을 고소한 돈코츠라멘으로 변신시키듯, 갈등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상처로 얼룩졌던 마음을 열어 서로에게 사랑을 주고 사랑을 확인받는 관계로 변모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지만 이젠 안다.

조금 투닥거려도 아빠가 다시 웍질을 할 테고 집에는 솔솔 맛있는 음식냄새가 풍기게 될 것을.

이제 아이들은 집으로 들어서며 아빠부터 찾는다.

"아빠, 오늘 저녁은 뭐야?"

한 때 불안에 떨었던 아이들은 그렇게 아빠사랑을 매일 먹고 자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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