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까머리를 하던 중학생까지만 하더라도 엄마와 나는 함께하는 시간이 길었다. 마땅한 놀잇감이 없던 것도 아니었는데, 나의 어린 날은 언제나 심심하고 따분했다. 좀이 쑤셔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주제에 밖에 나가는 건 내켜하지 않는 게 꼭 겁 많은 강아지 같았다. 심심할 때면 종종 안방에 찾아가 TV를 보고 있는 엄마 곁에 누워 말을 걸곤 했다. 무뚝뚝한 엄마는 나를 귀찮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투정하는 것을 일일이 다 받아 주었다. 그러면 또 나는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놀아 달라고 보채기 일쑤였고.
TV를 보는데 흥미가 떨어지면 우리는 라디오를 틀었다. 딱히 채널을 고정해 놓고 애청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수신이 잘 되도록 안테나를 길게 뽑아서 감도가 좋은 방향을 찾아 고정한 다음, 채널을 변경하는 동그랗고 작은 원형의 휠을 돌려 괜찮은 노래가 나오는 곳에서 멈추곤 했다. 라디오가 언제나 내가 듣고 싶은 노래만 틀어주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몇 번씩이나 채널을 바꿔댔다. 언제 어디서 마음에 드는 노래가 나올지 모르는 우리의 작은 라디오는, 마치 ‘포레스트 검프’에 나오는 초콜릿 상자처럼 설렘과 실망을 번갈아 주었고, 그래도 보이지 않는 라디오 속 세상을 부유하는 일상이 즐거웠다.
대낮의 라디오에는 신세대 가수의 노래들이 즐비했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은 노래들도 종종 나왔다. 나의 별들이 부르는 노래와 엄마의 별이었던 이들의 노래가 번갈아 흐르는 신기한 음악상자 덕분에 나는 자연스레 옛날 노래에 익숙해져갔다. 당시의 엄마는 라디오를 듣다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녹음을 하고는 그걸 몇 번이고 다시 들으며 공책에 가사를 받아 적기도 했는데, 그러면 나는 얼른 배를 깔고 엎드려 틀린 가사를 지적하면서 우쭐하곤 했다. ‘엄마는 나 없으면 안돼.’ 엄마는 무정하게도 귀찮으니 저리 가라고 말했지만. 그러고 나면 나는 또 가족들이 귀가할 때까지 엄마와 투닥거리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엄마와 내가 함께 반복하던 하루는 생각보다 빨리 끝이 났다. 고등학교 1학년을 보내는 동안 키 17센티가 훌쩍 자랐다. 키가 크고 학교와 친구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나는 차츰 바빠지기 시작했다. 나이를 먹은 후에도 여전히 라디오를 즐겨 들었지만 라디오의 위치는 어느새 내 방 머리맡으로 바뀌었고, 모르는 사이에 엄마와의 대화는 시계 바늘이 돌아가는 딱 그만큼씩 줄어들었다. 키가 너무 빨리 커버려서 그랬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은 한다.
대단치 않은 일상의 기억들인 것 같은데,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그걸 풍선처럼 마구 부풀려 나의 중요한 일부인 마냥 소중히 간직하려고 발버둥 친다. 여전히 엄마에게 잘해 주는 건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나는, 어린 시절 엄마와 들었던 노래가 우연히 고막을 울리기 시작하면 이내 겪은 적 없는 애절함으로 어딘가 한쪽이 아려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