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서 집 사기 대장정 1

나는 새벽마다 침대 위에서 나무늘보가 된다

by Yoon

침실 안의 정적, 나는 나무늘보가 되기로 했다

2020년, 나는 암스텔베인의 투 베드룸 아파트를 대출 없이 마련했다. 당시엔 꽤 여유로운 시작이라 생각했지만, 아이가 태어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부부가 모두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방 하나는 오피스로 고정되었고, 남은 침실 하나에서 세 식구가 복작거리며 잠을 청해야 했다.

처음엔 견딜만했다. 잠귀가 어두웠던 신생아 시절엔 복도에 아기 침대를 두고 조심조심 걸어 다니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생후 4~5개월을 지나 소리와 빛에 예민해지기 시작하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해가 밤 10시까지 떠 있는 네덜란드의 여름, 결국 아이 침대를 침실 구석으로 들였고 그때부터 우리 부부의 '슬로모션'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이가 8개월 차에 접어들자 예민함은 극에 달했다. 조용히 방문을 여는 소리, 침대에 눕는 기척, 심지어 남편의 작은 코골이에도 아이는 번쩍 눈을 뜨고 서럽게 울어댔다. 결국 남편은 추운 한겨울 거실 소파로 쫓겨났고, 새벽에 깨는 아이를 달래는 건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자다 깨서 물 한 잔 마시러 가거나 화장실에 가는 건 사치였다. 이불 속에서 팔 하나 까닥할 때도 '나는 지금 나무늘보다'라고 최면을 걸며 극한의 슬로모션을 선보여야 했다. 한 달 넘게 나무늘보 빙의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현타가 왔다.

image.png 자다 깨면 나는 나무늘보다라고 되새기며 몸을 조심조심 움직였다.

불확실한 미래, 그러나...

사실 이사를 서두르지 못했던 이유도 있었다. 작년 여름부터 팀 상황이 여의치 않아 해외 발령설이 돌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2026년 말까지는 암스테르담에 머물 수 있게 힘써보겠다고 했지만, 반년 넘게 구체적인 업데이트가 없었다.

불안함에 마냥 기다리기만 하던 어느 날, 기분 전환 삼아 부동산 사이트인 Funda.nl을 켰다. 그런데 이게 웬걸? 보자마자 마음을 빼앗겨버린 집이 나타난 것이다.

'어라, 일단 구경이라도 해볼까?'

가벼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최근 집을 산 친구에게 중개인 추천을 부탁했다. 친구는 일 처리가 깔끔하면서도 정찰제(Flat fee)를 받는 구매 중개인 겸 모기지 어드바이저를 소개해 주었다. 그렇게 나의 '네덜란드 집 사기 대장정'은 번갯불에 콩 볶듯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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