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비딩과 금융 조건 없음의 승부수
우리가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집은 개인이 아닌 리모델링 전문 업체가 내놓은 매물이었다. 업체 측은 뷰잉 시작 열흘 만에 입찰을 끝내고, 단 3.5주 만에 모든 판매 프로세스를 마무리하길 원했다. 일반적인 모기지 승인 기간이 3~6주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빛의 속도'였다.
놀라운 건 이 말도 안 되는 일정이 실제로 통한다는 점이다. 리모델링 퀄리티가 워낙 뛰어난 데다, 인기가 높은 암스텔베인(Amstelveen) 센터 인근 매물이다 보니 배짱 영업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업체는 구매자의 현금 동원 능력을 노골적으로 강조하며, 가격이 조금 낮더라도 현금 비중이 높은 구매자를 선호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뷰잉을 마치자마자 나의 모기지 어드바이저이자 구매 중개인에게 메일을 보냈다. 해당 매물의 주소와 인근 유사 매물의 실제 거래 데이터(Funda 링크)를 정리해 공유하며 적정 입찰가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네덜란드에서 일반 소비자는 매물의 '희망 판매가'만 무료로 볼 수 있다. 실제 낙찰가는 Walterliving이나 Kadaster 같은 유료 서비스를 이용해야 확인 가능하다. 물론 공인 중개사들은 이 데이터에 실시간으로 액세스할 수 있다. 참고로 Walterliving은 월 20유로대로 저렴하면서도 중개인과 거의 동일한 가이드를 제공하니, 중개인 없이 '셀프 입찰'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꽤 유용한 도구가 될 것 같다.
내 중개인은 내게 희망가의 111%를 적어낼 것, 그리고 '금융 조건 없음' 조항을 넣을 것을 제안했다.
여기서 '금융 조건 없음'이란, 만약 내가 모기지를 받지 못해 계약을 파기할 경우 페널티 없이 물러나는 게 아니라 주택 가격의 10%를 위약금으로 지불하겠다는 서약이다. 내게는 꽤 유리한 상황이었기에 과감히 이 조건을 수락했다.
1) 높은 소득 증빙이 확실했고
2) 이미 보유한 부동산과 현금이 충분했으며
3) 필요한 모기지 금액이 내 한도의 60% 수준으로 낮았기 때문이다.
집이 너무 탐났던 나는 중개인의 제안가에 2,000유로를 더 얹었다. 네덜란드에서 희망 판매가 (asking price)는 사실 낚시용 미끼에 가깝다. 오버비딩을 몇 퍼센트 했느냐보다, 결국 판매자의 입맛에 맞는 조건을 갖췄느냐가 승패를 가른다.
운명의 금요일. 중개인은 입찰 마감 시각인 오후 12시를 딱 5분 남기고 금액을 써냈다. 부동산 중개인들끼리 미리 입을 맞춰 2순위 입찰자에게 연락해 가격 경쟁을 붙이는 '꼼수'를 차단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후 2시 반, 판매 중개인으로부터 짧고 강렬한 이메일이 도착했다. 내가 낙찰되었다!
나중에 다른 후보들의 입찰가와 조건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나는 굳이 열어보지 않았다. 혹시라도 내가 너무 높은 금액을 써서 낙찰된 것이라면 속이 쓰릴 것 같았으니까.
당시에는 자신만만했지만, 사실 다시 돌아간다면 촉박한 일정 속에서 '금융 조건 없음' 카드를 다시 꺼내지는 않을 것 같다. 모기지 승인 과정은 예상보다 변수가 많았고, 추가 서류를 요청받을 때마다 10%의 위약금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 스트레스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물론 플랜B에 C까지 마음 속으로 대비하고는 있었지만, 그 심리적 압박감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