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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낀다]라는 폭력

꽃이 피지 않았던 겨울

by haru

며칠 전, 첫눈은 가히 폭탄 수준이었다. 관리사무소가 따로 있지 않아 내리는 눈에 맞서 몇 번이고 바닥을 쓸었지만, 물기를 머금은 눈의 공습은 밤이 깊어질수록 조용하고 맹렬해졌다.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무들이 뚜뚝꺼리는 비명과 함께 쓰러져 갔다.


"동백이 들을, 들여놨어야 하는 거 아닐까?"

와이프는 작업실 밖에 꺼내 놓은 동백나무 세 그루가 걱정이었다.

"글쎄, 작년 생각하면 그냥 둬야 하지 않을까?"

어제오늘 다른 날씨 덕분에 식물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 변덕스러운 날씨에 잘 적응하려나, 다 죽으면 어쩌지? 등등, 말 못 하는 식물에 대한 걱정이 늘어갔지만 작년 겨울을 생각하면 더 이상의 걱정은 접기로 했다.




"아! 너무 추워~!"

작년 겨울은 눈보다 추위가 걱정이었다. 영하 15도를 웃도는 겨울 한파는 삼한사온의 전통적인 겨울날씨 패턴마저 어딘가로 날려버린 지 오래여서 열흘이상 추위가 지속되곤 했다.

여름까지 견디는 식물들은 차례차례 작업실 한구석씩 차지했지만 동백나무는 달랐다.

겨울이 제 계절이라 오밀조밀하게 크고 작은 봉오리가 하나 둘 맺혔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앞섰다. 영하 20도에 가까운 날이 지속되다 보니 동사하지 않을까, 이러다 다 죽는 거 아니냐는 둥 때아닌 동백나무 걱정에 휩싸였다.

결론은 이랬다. '날씨가 미쳤으니 이대로 둘 수 없다. 비교적 따스한 실내에 들여놓자' 이렇게 우리 부부는 의기 투합하여 당장 실행에 옮겼다. 온도가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지면 들여놓고 영하 10도 이상이면 내보내기.

이 녀석이 뭘 원하는지는 알지도 못한 채 얼어 죽이지 않겠다는 일념하에 동백이는 안팎을 오가기 바빴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사달이 나버렸다.

단단하게 여물줄 알았던 봉우리들이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영양제도 아무 소용없었다.

제 작년, 너도 나도 피어났던 동백꽃이 조용히 시들어가니 애가 탈 노릇이었다.

매서운 날씨로부터 동백을 지켜내겠다던 비장한 각오가 피지도 못한 봉우리로 후드득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대체 왜일까?


문제는 동백이 아니고 우리에게 있었다.

뚝 떨어지는 아침 기온과 찬바람을 견뎌야만 꽃이 피는 동백의 시간을 우리가 제멋대로 앗아가 버렸다. '아낀다'라는 일방적인 애착심에 근심을 더하고 기대와 걱정을 담아 쏘아보며 왜 안 피는 거야? 그만큼 정성을 들였는데 라는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니....

사랑한다는 것이 이렇게 폭력적일 수 있을까.



생명이 잘 자라는 집들의 비밀은 바로 '내버려 두기'이다. 때가 이르면 대상 주변에 머무를 뿐 과하게 돌보거나 필요 이상의 양분을 쏟아붓지 않는다. 몇 보 떨어져서 저 혼자 시간을 바라볼 줄 아는 무관심(?)이 오히려 자생력을 갖게 하여 단단하고 생기 있게 자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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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은 좀 무심해볼 작정이다.

저 혼자 견딜 시간은 우리도 동백이도 필요하단 걸 알았으니까.



하루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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