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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굴러가는하루 Feb 12. 2024

끝까지 해낸 것 자체가 성공이야

30대 백수의 러닝 기록(2) : 힘들긴 한데 죽을 정도는 아니잖아?

퇴사 3개월 차, 초보 러너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어지는 백수 생활을 이왕이면 건강히 잘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백수란 생각보다 어려웠다. 백수의 삶은 자고로 시간은 많은데 딱히 해내야 할 일은 없기에 빈둥빈둥하는 법이다. 그러다 보니 점점 게을러지고, 결국 스스로도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생활이 불규칙해졌다. 망가진 삶에 긴장감이 필요했다. 꼭 생산성 있는 일이 아니어도 나 자신과의 약속이라도 만들어 지켜내는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다.


나와의 약속으로는 주 3회 2~30분 달리기가 낙점됐다. 건강도 챙길 수 있고, 다른 준비물 없이 러닝화만 있으면 언제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물론 초보자인 내가 처음부터 냅다 뛸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러닝 어플 런데이의 가이드에 맞춰 우선 '가볍게 달리기와 천천히 걷기' 세트를 여러 번 반복해 시간채우기로 했다. 드디어 첫 번째 러닝날, 날카로운 바람이 뺨을 얼리는 날씨지만 공원으로 향했다. 이미 각자속도로 달리기에 집중한 다른 러너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집에서 뒹굴뒹굴 게으름을 피우는 동안 이렇게 건강하게 자기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많았구나 싶었다.


그렇게 인생 첫 러닝을 시작했다. 두 발이 땅을 박차며 몸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평소 운동을 소홀히 한 탓에 40초 만에 숨이 헐떡거리고 다리가 덜덜 떨렸다. '아니 벌써 이렇게 지친다고?' 내 체력이 생각보다 훨씬 별로라는 사실을 그날 처음 직면했다. 그래도 뜀박질을 멈추지는 않았다. 힘들긴 해도 죽을 정도까진 아니었으니까. 어찌어찌 목표로 한 시간을 다 뛰고 든 생각은 의외로 '해볼 만 한데?'였다. '와, 내가 러닝을 했네! 매일 집에서 게임이나 하고 누워 있던 내가!' 비로소 건강하고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는 백수에 반 걸음 가까워진 것 같았다. 기진맥진하지만 목표를 달성했다는 뿌듯함과 기쁨이 뜨거워진 몸의 열기와 함께 피어올랐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보람에 비해 기록은 매우 소박했다. 첫날 나는 23분간 2.21km를 움직였고, 달리기 페이스는 7'25", 걷기 페이스는 11'17"였다. 지각했을 때를 빼고는 평생 달려본 적 없는 사람다운 수치였다. 그때 나는 내가 얼마나 달릴 수 있는지, 30분이라는 시간을 쉬지 않고 움직이려면 얼마큼의 강도로 임해야 할지 전혀 감이 없었다. 그저 '초보자는 옆 사람과 대화해도 괜찮을 정도로 느리고 가볍게' 뛰라는 가이드에 따라 운동 강도를 최대한 낮췄다. 하지만 기록 같은 건 다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하겠다고 생각만 했던 것을 실제로 해냈다는 사실이니까.  


생각해보니 성과와 관계없이 시도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큰 만족감을 느껴본 게 참 오랜만이었다. '그냥 끝까지 해낸 것 자체가 성공이야.' '초보자인데 이 정도면 훌륭하잖아?' 달리기 한 번 했을 뿐인데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칭찬하고 응원하는 말들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달리기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여러 과제들도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끝까지 도전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고 박수쳐줄 수 있다면. 꾸준히 나를 격려하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다면. 소소하지만 확실한 충만함좋아서, 나는 계속 꾸준히 달리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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