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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굴러가는하루 Feb 29. 2024

지금 여기, 내가 살아 있다고

30대 백수의 러닝 기록(3) : 숨이 턱끝까지 차면 알 수 있는 것들

백수 생활 어언 4개월째. 의미도 목표도 없이 게으르게 게임만 하는 부실한 일상에 긴장감을 주고자 러닝을 시작했다. 첫 달리기의 경험은 놀라웠다. 먼 거리를 뛴 것도 아니고 속도가 빨랐던 것도 아닌데 그저 목표 시간을 채웠단 것만으로도 뿌듯함은 엄청났다. 첫 도전에서 맛본 성취와 성공을 잊지 못해 꾸준히 달려보기로 결심했다. (* 이전 글 읽기)


당연하게도 성취, 성공 같은 단어들은 고된 과정을 거치고 목표를 달성했을 때만 비로소 찾아온다. 문제는 초보 러너인 나에게 '30분 달리기' 목표는 여전히 너무나 아득하다는 것. 난 지금도 3분만 뛰어도 호흡이 무너진다. 그럴수록 더욱 정신을 집중하고 달리는 것과 숨 쉬는 것에만 신경을 기울인다. 조금씩 몸에 열이 오르고 이마에서는 땀이 흐른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심장도 미친 것처럼 쿵쾅거린다. 힘들어 죽을 같지만 실제로 죽지는 않는단 알기에 어찌어찌 30분을 달려낸다.


달리는 내내 마음속으로 외친다. '진짜 못 하겠어. 나 이거 왜 해?', '백수 생활의 성취감을 꼭 러닝으로 얻어야 해? 좀 쉬운 다른 거 해도 되잖아.' 그렇지만 볼멘소리를 하며 헉헉대면서도 한편으로는 실실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너무 힘들어 드디어 실성한 건가 의심되는, 하지만 기분 좋은 벅참이 가득한 진짜 웃음. 순간, 당연하지만 어딘가 생경한 생각 하나가 불현듯 머리를 치고 간다. '아, 나 지금 살아 있구나.' 후들대는 다리와 위태로운 호흡과 터질 듯 펌핑하심장을 감각하며 되뇐다. 내가 살아 있구나.


살아 있음을 이렇게 온전하게 느낀 적이 또 있었을까? 태어나서 지금까지 항상 살아 있었지만 그 사실을 인지하려 노력한 적은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해서 굳이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산다는 것에 무감각했는지 모른다.  


혼자 사는 백수 신분에서는 더더욱 삶을 실감하지 못했다. 나처럼 목표나 루틴 없이 눈이 감기는 시간에 자고 떠지는 시간에 일어나 느릿느릿 되는 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오늘 같다. 얼른 일어나 씻으라고 잔소리하는 부모님이나 전에 준 업무는 언제 끝나냐고 압박하는 상사가 없어 편안하긴 해도, 하루하루가 밋밋하고 생기 없다. 종일 집 밖에 나가지 않고 누군가와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날에는 스스로가 숨 죽은 채소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않는, 있어도 되지만 잠시 잊혀도 별 문제없는 희미한 존재. 그런 시기, 달리기는 내가 살아 있다고 말해주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살아 있단 걸 감각하면 뭐가 좋은데?' 나도 잘 모르겠다. 살아 있음을 아는 삶과 모르는 삶에 그렇게 큰 차이가 있을까? 그렇지만 지금 순간 여기에서 쉬고 움직이며 제대로 기능하는 나를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겨울밤처럼 휑하던 내 일상은 조금 뜨거워졌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오늘도 달린다. 여전히 30분이라는 시간은 기나길고, 나는 죽을 둥 살 둥 애쓰는 것에 비해 너무나 허술한 초보 러너다. 하지만 어떻게든 끝까지 해낸다. 그리고 살아 있는 나의 존재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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