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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굴러가는하루 Mar 07. 2024

인생의 어디쯤을 달리고 있는지

30대 백수의 러닝 기록(4) : 괜찮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안다면

30대 백수인 나, 퇴사 이후 새 직장에 들어가는 대신 달리기에 도전했다. 말은 도전이라고 거창히 했지만 사실 달리기에 대해 별로 아는 건 없었다. 편한 운동화와 뛰기 좋은 공원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이것만으로도 괜찮을 있다. 하지만 달리는 동안 가지를 더 살폈어야 했다. 바로 나의 위치를 감각하는 일이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다. 평소 나는 시야가 탁 트이고 햇살이 잘 드는 넓은 공원에서만 달리기를 했다. 하지만 늘 같은 곳을 가는 게 지겨워, 하루는 집에서 조금 멀고 한 번도 안 가본 낯선 공원을 달리기로 했다. 그곳은 길의 폭이 꽤나 좁았고 양옆에는 울창한 나무들까지 빽빽하게 심어져 있었다. 원래 뛰던 곳과는 많이 다른 환경이지만 달리는 데는 문제없어 보였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헉헉거리는 숨소리와 종아리의 딴딴한 긴장감에만 집중하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이 지나치게 고요했다. 거기엔 나뿐이었다. '나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공원 너무 깊숙한 곳까지 달린 탓인지 산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하늘로 우뚝 솟은 거대한 나무들만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한낮인데도 빛이 들지 않아 매우 어두웠고 서늘한 기운까지 감돌았다.


이런 적도 있다. 지금보다 더 생 초보 러너이던 시절에는 그저 달리는 것에만 집중했다. 지치지 말고 목표한 시간과 거리를 달성해야 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혔다. 그러다 보니 지나치게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럼 이런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오늘 총 4킬로를 뛸 예정이라면, 2킬로쯤에서 반환점을 돌고 출발했던 곳을 향해 다시 2킬로를 달리면 안전하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앞만 바라본 나머지 4킬로를 직선으로만 쭉 뛰어버린 것이다. 이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은 다 뛰어서 기진맥진한 상태인데 집에 돌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4킬로를 다시 걸어야 했다.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도 모르고 생각 없이 달리다가 체력만 소진한 거다.



 경험들 덕분에 이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달리기 전에 미리 낯선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를 아보고 오늘의 분기점 위치도 체크한다. 덕분에 달리기를 할 때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가 걱정스럽지 않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조금 다르다.


백수 생활이 길어지는 요즘, 지금 난 인생의 어디쯤에 와 있는 것일지를 매일 생각한다. 남들에게는 달리기, 독서, 요리 같은 걸 하며 제법 그럴듯하게 지낸다고 말하지만, 실은 커리어 공백이 길어지는 것이 두렵다. 그럼에도 당장 새 직장을 구하지 않는 이유는 나다움을 찾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다운 삶의 방향이란 뭘까? 그걸 알아야 어디에서 일을 하든 중심을 잃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만약 대학생 때였다면 '이쪽이 나다운 방향이야!'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년간의 회사 생활을 거친 지금은 잘 모르겠다. 이런저런 상황들에 휩쓸려 본연의 나는 많이 지워졌고, 스스로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끊임없이 의심한다. 나는 이렇게나 복잡한데 삶이라는 길고 긴 이 길은 결국 어디에 가 닿을까.


매일 스스로 묻는다. '잘 나아가고 있는 걸까? 나다움이고 뭐고 얼른 뒤돌아서 직장인이라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잠시 낯선 곳에 혼자 남겨졌다거나, 방향을 전환타이밍을 지나쳤다고 해서 갑자기 인생이 미친 듯 꼬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좀 겁이 날 뿐이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계속 신경 쓴다면, 내가 나를 잃어버리지만 않는다면, 괜찮다. '아 여기가 아니라 저쪽이구나' 인식하고 다시 방향을 잡으면 될 일이다. 달리기를 하는 동안 그랬듯이.


일단은 나를 위해 좀더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잠시 갈팡질팡하더라도 길은 결국 이어지니까. 스스로를 더 좋은 곳에 데려다 놓고 싶다는 마음으로 뚜벅뚜벅 살다 보면 시간이 걸려도 언젠가는 나다운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일단은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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