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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굴러가는하루 Apr 22. 2024

봄빛 아래 땀 흘리는 모두에게 응원을

30대 백수의 러닝 기록 (9): 온 힘 다해 노력하는 이들을 위한 마음

찬바람 불던 올 초, 게으르게 뒹굴거리기만 하던 백수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꾸준히 달리다 보니 어느새 계절은 완연한 봄. 흩날리는 꽃잎과 포근한 공기에 마음까지 누그러지는 이 시기에는 열심히 뛰다가도 문득 두 다리를 멈추게 된다. 하늘에 뜬 하얀 구름과 옹기종기 핀 색색의 튤립들,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의 작고 귀여운 행렬까지, 이 풍경들을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눈을 사로잡는 풍경은 최근에도 하나 있었다. 언제나처럼 달리기를 마친 후 가쁜 숨을 고를 때였다. 문득 고개를 들어 허공을 봤더니 머리가 새하얀 할아버지 한 분이 공원을 가로질러 달려오고 계셨다. 이미 힘이 빠진 듯 내려앉은 어깨와 다소 무거운 발걸음, 흔들리는 호흡을 애써 바로잡으려는 모습까지. 그렇지만 전방을 주시하는 눈빛만큼은 매우 단단해 보이는 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시선을 고정하고 그분이 지나가는 대로 고개를 돌리게 됐다.


순간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향해 '파이팅'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사실 이런 기분을 느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전에도 같은 공간을 달리는 러너들에게 박수와 응원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오곤 했다. 용기가 없어 실제로 내뱉은 적은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수도 없이 '여러분 파이팅. 힘내세요. 육성으로는 못 하지만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제 텔레파시 제발 받으세요.' 하고 조용하게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많은 사람들에게 달리기는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으로 표현된다. 축구나 농구 같은 단체 스포츠도 아닌 데다가 내가 달리고 싶으면 달리고 멈추고 싶으면 멈추는, 오로지 자기 의지에 달린 일이기 때문일 테다. 나 역시 스스로와의 싸움에 수도 없이 참전한다. '너무 힘든데 이쯤에서 그만 달릴까? 아니야,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끝까지 뛰는 게 낫지?' 하는 막상막하의 두 마음이 치열하게 다툼을 벌인다. 그때마다 나는 늘 두 번째 마음을 편들어준다. 이미 탈진했지만 있는 힘 없는 힘을 짜내가며 겨우겨우 간신히 한 발을 더 내딛는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가 나를 향해 '파이팅'이라고 외쳐준다면, 일그러진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고 천근만근한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자신의 치열한 노력을 누군가가 알아보고 응원해준다면 나처럼 기분 좋아할까, 아니면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몰두하고 있는데 방해가 된다고 느낄까? 다들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나는 계속 마음속으로만 응원하기로 한다. 달리기를 한다고 부자가 되는 것도, 몸이 단번에 좋아지는 것도, 오랜 고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지만 러너들에게는 달릴 수밖에 없는, 달리지 않으면 안 될 각자의 이유가 있을 것이기에 마음으로라도 그들에게 힘을 보낸다.


달리기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역시 건강한 두 다리로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이 봄의 면면을 눈에 더 많이 담게 됐다는 점이다. 요즘처럼 녹음이 우거진 봄의 공원을 달리다 보면 나처럼 벌건 얼굴로 쓰러질 듯 헉헉대는 러너들을 만나곤 한다. 산뜻하게 빛나는 새봄의 푸르름 속에서 탈진할 것처럼 땀 흘리는 사람들이라니. 그 두 이미지의 조합이 이질적이게 보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분투를 지켜보는 경험은 꽤나 뭉클하고 감동적이어서 더더욱 발걸음이 멈춰 선다. 이 역시 달리기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이겠지.


바야흐로 봄이다. 달리기 좋은 계절이고 러너들의 땀방울이 푸른 잎처럼 반짝이는 계절. 그 봄빛 아래에 달리는 모두에게 격려와 지지를 외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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