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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굴러가는하루 Apr 15. 2024

달리기 하면 몸에 근육 생기냐고? 그것보다 다른 거!

30대 백수의 러닝 기록 (8) : 나를 인정하고 긍정하는 달리기

건강한 백수가 되고 싶어 달리기를 시작한 지 몇 달째. 여전히 초보 러너인 나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취미는 러닝'이라고 말할 정도로 달리기와 꽤 친해졌다. 일주일에 3회 이상, 매번 최소 5km는 달리려 한다고 하면 지인들은 궁금증 어린 눈으로 묻는다. "달리기 하면 진짜 건강해져? 근육도 생겨?" 안타깝게도 인바디 수치상 근육량이 아직도 표준에 못 미치는 것을 보면 몸의 근육이 그리 쉽게 생기는 건 아닌가 보다. 대신 몸 외의 다른 근육에는 나름 변화가 있었다.  


돌아보면 초반에는 체력보다 마음의 근육이 허약해 뜀박질을 멈추고 싶은 경우가 더러 있었다. 일단 달리기 실력이 잘 늘지 않을 때가 그랬다. 칙적으로 꾸준히 훈련했는데도 러닝앱에 기록된 수치는 너무나 소박할 때, 나의 성장이 더디고 답답해서 '이렇게 해도 안 되는데 그냥 그만할까' 싶었다. 또 나보다 잘 달리는 사람을 발견할 때도 의욕이 떨어졌다. 쓰러질 것 같은 힘듦을 꾹 참고 겨우 달리는 나를 뒤에 오던 사람들이 가볍게 추월하는 순간이 종종 있었는데, 내가 이 공원에서 제일 못 뛰는 사람인 것 같아 부끄럽고 서러웠다.


그렇지만 언제부턴가 약한 내 모습을 수용할 수 있게 됐다. 성장이 느린 나, 체력이 강하지 못하고 물렁물렁한 나, 남들에게 추월당하는 나. 과거에는 그렇게 약한 나를 발견하고 어두운 감정을 느끼는 것이 속상했지만 지금은 딱히 그렇지 않다. 어떻게 그런 변화가 있었는지 명확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분명한 건, 숨이 만큼 오래도록 헉헉 뛰보면 마음속에 딱딱하게 뭉쳐져 있던 응어리가 한결 누그러지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자연스레 인정하순간이 온다는 점이다.


나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변화가 생겼다. 과거에는 스스로의 약점에 훨씬 집중했는데, 그 약점을 깔끔하게 수용하고 나니 오히려 나의 장점을 볼 수 있는 마음적 여유가 생겨났다. 달리기를 하는 매 순간 내가 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단 사실을 스스로 감각할 있게 됐고, 나는 이미 지쳤어도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 좀 느려도 나의 페이스로 끝까지 가는 사람임을 알았다. 이런 관점으로 나를 바라보자 전처럼 조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러너들과의 비교보단 내가 하는 달리기와 내 몸의 감각에만 더 몰두하게 됐다.


이런 변화들을 마음의 이 생긴 덕분이라고 생각해도 괜찮을까. 여전히 나는 객관적으로 잘 달리는 러너도 아니고 몸에 단단한 근육도 없다. 그럼에도 달리기를 하다 보면 나의 약한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스스로를 긍정하는 심리적 근육이 조금씩 자라고 있단 걸 느낀다. 물론 달리기에서나 삶에서나 아직 갈 길이 먼 초보 러너지만, 꾸준하고 고단한 달리기가 점점 나를 좋은 곳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다는 예감을 받는다.


몸의 근육은 쓰면 쓸수록 계속 발달한다고 한다. 마음도 마찬가지라면, 앞으로 내 마음의 근육은 어떤 모습으로 자라나게 될까? 이렇게 달리기는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을 준다. 달리기로 얻은 마음 근육들이 일상과 삶으로 이어져 나를 더 굳건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길 믿으며, 초보 러너는 오늘도 출발선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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