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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굴러가는하루 Apr 04. 2024

이건 노력일까 강박일까

30대 백수의 러닝 기록(7) : 답은 언제나 내 안에

잉여롭던 백수, 달리기를 통해 일상에 전환점을 만났다. 백수의 삶이란 원래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게으름을 부리기 시작하면 한없이 늘어질 수 있는 것. 그렇지만 달리기를 하며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멀리 더 빨리 뛰려고 노력했다. 노력이라니. 직장인일 땐 당연하단어인데 백수가 되니 왠지 무겁게 느껴지지만, 어쨌든 퇴사 후 몇 달 만에 드디어 최선을 다할 일이 생겼다. 그렇게 달리기는 백수 일상에 유일한 목표가 되었다.


최근 목표는 한 달 동안 총 거리 70km 이상을 뛰는 것이었다. 절대 쉽진 않겠지만 목표란 살짝 높아야 도전할 맛이 난다고 생각했다. 시간 많은 백수니까 자주 달리겠단 의지만 있으면 무리도 아닐 것 같았다. 실제로도 스스로 정한 목표에 도달하려 부단히 애를 썼다. 이틀에 한 번은 반드시 4~5km씩 꾸준히 달렸고, 이렇게 노력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모든 게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줄 알았다.  


하루는 예상치 못하게 편도염을 진단받았다. 고열에 인후통, 두통까지 와버렸는데 그 와중에 달리기를 걱정하는 나를 발견했다. '오늘 꼭 나가야 하는데. 그래야 이번 달 목표를 달성하는데.' 하지만 생각보다 컨디션은 얼른 돌아오지 않았다. 달릴 의지는 충만한데 몸의 이슈 때문에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게 짜증스러웠다. 문제는 그 언짢음이 하루 내내 이어졌다는 것이다. 날이 어두워지고 잠에 들 시간이 됐는데도 오늘치의 달리기를 못 한 것이 신경 쓰였다. 하루 안 달린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마음 불편할 일인가?


건강하게 행복하고 싶어 시작한 달리기인데 무언가 주객전도 됐음을 깨달았다. 찬찬히 내 언짢음을 돌아봤다. 얼른 나아서 자유롭게 뛰고 싶다기보다, 반드시 했어야 할 오늘치의 계획을 완료하지 못했다는 찝찝함이 크다는 걸 발견했다. 당연히 쉬는 게 맞는 상황인데 찝찝함이라니. 그제야 내 감정을 알 것 같았다. 난 뛰고 싶은데 못 뛰어서 몸이 근질거렸던 게 아니라, 내 손으로 정한 계획과 목표에서 벗어나면 안 될 것 같은 의무감에 짓눌렸던 거다.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달리기를 '하면 좋은 일', '잘하고 싶은 일'을 넘어 '안 하면 안 되는 일'로 여기고 있었나 보다. 달리기에 대한 내 마음이 노력을 넘어 강박으로 가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난 자유로운 영혼이라기보단 모범생 스타일이다. 일을 할 때도 규칙에 충실하고 계획과 질서를 잘 벗어나지 않는다. 또 나는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목표가 아예 없으면 몰라도 일단 생기면 어떻게든 이뤄내려고 근면히 애쓴다. 그래서 결국은 끝까지 해낸다. 문제는 목표와 계획에 지나치게 붙잡혀 내 몸이 소진되는 줄도 모르고 경주마처럼 노력한다는 건데, 그 면모가 달리기에서도 드러난 것이다.


그동안 달리기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꾸준히 땀 흘리면서 목표를 이루는 보람과 성취를 경험했고, 스스로의 인내력과 지구력을 온몸으로 확인하며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다. 밋밋하고 잔잔한 백수 일상에서 손에 꼽게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그 좋은 것들을 가져다준 달리기가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자칫하다가는 오히려 괴로워질 수도 있단 걸 이번 기회로 되새겼다.


스스로를 위해 건강하고 올바른 노력을 기울이는 건지, 목표와 계획이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아등바등하는 건지는 나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서만 알아낼 수 있겠지. 어쩌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노력이 아니라 목표와 계획을 조정하는 유연성일지도. 그러니 순간순간 내 마음을 돌아보자는, 뻔하고도 당연한 다짐을 또 한 번 되뇐다. 나를 들여다보면 안에는 언제나 답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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