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달리기는 사실 정신승리의 궤적들

30대 백수의 러닝 기록(13): 사실은 정신승리만으로도 충분한

by 굴러가는하루

벌써 2025년 3월이다. 작년 1월에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으니 러너가 된 지도 어느새 1년이 넘었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백수였던 나는 새로운 직장을 찾았고, 10K 마라톤을 나가고, 달리기라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도 알게 됐다. 달리면서 나의 세상이 넓어졌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대로다. 달리기를 한다고 평범하던 내 인생이 갑자기 잘 나가는 건 아니니까. 그냥 좀 더 잘 달리게 됐을 뿐 나는 그대로 나다. 다시 직장인이 되면서 새로운 업무들을 익히느라 마음이 급하고 마감 기한을 지키느라 매일 시간과 싸운다. 일은 잘 풀릴 때도 있고 안 풀릴 때도 있는데 너무 막막할 때는 종종 야근을 한다. 경제적 사정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월세와 관리비를 내면 통장은 허전해지고, 덕분에 월말에는 마트 한 번을 가는 것도 긴장한다.


그래도 계속 달리기를 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 뿐이지만 퇴근을 하고 밤 10시 무렵 아무도 없는 깜깜한 공원을 달린다. 유독 눈이 많이 왔던 이번 겨울, 옷을 네 겹 껴 입고 강추위 속을 달린다. 참 신기하다. 피곤에 찌들었는데도, 눈이 와 길이 꽁꽁 얼었는데도 나는 계속 달리는 사람이라는 게. 사실 먹고살기도 빠듯한 직장인이 굳이 달리기를 해야 할 이유는 없다. 달리기는 돈을 가져다주지도 않고, 안 풀리는 업무를 대신 해주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난 왜 달리는 걸까. 이유는 너무나 명확하다. 뛰면 기분이 좋으니까. 스스로 약속을 지켰다는 뿌듯함, 뭔가를 꾸준히 해내고 있다는 자부심, 그 모든 것들이 주는 행복감이 너무나 가치롭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었어도, 집주인이 월세를 올릴 기미가 느껴져 한숨이 나와도, 일단 달리고 나면 전보다 훨씬 나아진 기분이 든다. 물론 안다. 나아진 건 그냥 기분뿐이지 현실은 그대로라는 거. 하지만 내가 달라졌다. 진부할지라도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내가 바뀌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달리기를 하면서 그 말을 실감했다. 달린 후 내 몸에 가득 찬 긍정적인 감정들로 현실을 바라보면, 생각보다 할만하겠다는 생각이 차오른다. 지금 이 기분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해보자. 나는 할 수 있다.


누군가는 '현실이 그대로인데 그래봤자 그냥 정신승리 아니냐'라고 말할 수도 있다. 부정하지 않는다. 때때로는 달리기를 하고 좋아진 건 건강이나 체력 같은 게 아니라 정신승리를 하는 능력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상관없다. 정신승리 역시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중요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남들이 뭐라고 하든, 중요한 것은 나의 관점이다. 내가 그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냐에 따라 내 삶의 의미와 가치는 달라진다. 달리기를 하고 난 뒤의 나는 스스로를 긍정하게 된다. 별것 아닌 나를 기특하게 여기고, 나를 믿고, 나를 응원한다. 그 정신승리의 순간순간이 모여 나를 지금 여기까지 데려왔다.


사실 달리기를 하며 브런치에 남긴 글들은 더 행복해지기 위해,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 발버둥 친 기록들이다. 달리기를 처음 하던 시절, 나는 그림자에 파묻혀 있었다. 나이는 한 살 더 먹었는데 직장은 없고 앞날은 깜깜했고 내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처럼 여겨졌고 주변에 사람이 있어도 외로웠다. 달리기는 그런 나에게 조금씩 양지를 보여줬다. 그 밝음을 잊지 않기 위해 브런치에 글을 썼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달릴 것이다. 그리고 달리기에 대한 글을 쓸 것이다.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부족하기에, 더 꾸준하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더더욱 정신승리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다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단단해진 나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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