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계속 나아가는 존재
30대 백수의 러닝 기록(12): 불안과 걱정 속에서도 앞으로 앞으로
달리기를 처음 시작한 올해 1월 이후 벌써 몇 번의 계절이 지났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었던 겨울부터 햇살이 비치는 봄,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르던 여름, 그리고 어느새 가을. 후텁지근하던 공기는 가벼워졌고 바람도 살랑살랑 분다. 바야흐로 뛰기 좋은 계절이다!
누그러진 날씨 덕분인지 얼마 전에는 달리자마자 이런 느낌을 받았다. '오늘 달리기는 왠지 잘 될 것 같아!' 산뜻해진 공기만큼이나 내 몸도 가뿐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평소보다 오래 달렸는데 그리 힘들지도, 숨이 차지도 않았다. 그렇게 뿌듯한 마음으로 딱 10k를 달리고 선선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밤의 공원을 거닐었다. 살짝만 움직여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쓰러질 것 같았던 지난여름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좋아진 호흡과 늘어난 거리까지, 이게 정말 내 기록인가? 나 은근 잘 뛰잖아? 하지만 이런 기쁨에 오래 빠져 있지는 않았다. 스스로 너무 들뜨지 않으려고 금세 마음을 다잡았다.
언제부턴가 달리기가 주는 뿌듯함과 성취감에 지나치게 빠지지 않으려고 절제하게 됐다. 지금껏 달리기를 하며 느꼈던 건, 오늘은 잘 뛰어도 내일은 또 어떨지 모른다는 점이다. 어떤 날은 몸과 마음이 너무나 완벽해서 10k는 가볍게 완주할 것 같다가도 다음 날에는 10분 뛰는 것도 벅찰 때가 있었다. 매일매일 잘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은 뿌듯하지만 내일은 스스로에게 실망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늘 나를 괴롭혔다.
돌아보면 달리기뿐만 아니라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매번 최선을 다해 일했지만, 어떤 날은 좋은 평가를 받고 어떤 날은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특히 마음에 더 깊이 남는 것은 언제나 부정적인 평가였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당근보다 채찍을 많이 주었고, 좋은 평가를 들어도 '다음에도 이렇게 잘할 수 있을까? 지금보다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냥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다' 하고 편히 받아들였다면 좋았을 텐데, 이제 보니 스스로를 믿지 못해 미리 심리적인 브레이크를 걸어둔 셈이었다.
지금껏 나는 불확실한 미래가 불안해서 현재의 성취를 마음껏 기뻐하지 못했다. 하지만 10k를 달리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날, '언젠가는 그 불안을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묘한 기대감이 들었다. 달리기는 나에게 브레이크를 잠시 내려두고 계속 나아가는 법을 알려주었다. 느릿느릿 달리는 나를 다른 사람들이 추월하더라도 일단 앞으로.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다리가 무너져 내릴 것 같아도 조금 더 앞으로 앞으로. 날씨가 맑든 흐리든 주변이 고요하든 시끄럽든 달리기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니까 나도 핑계 없이 계속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이렇게 달리기는 오늘 괜찮았다고 내일도 잘할 것이라 섣불리 장담할 수 없기에, 결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그저 달리는 순간에 묵묵히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더 멀리 오래 달리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도 있었다.
달리기를 하며 하루하루 기복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마찬가지로 직장에서도 매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 그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달리기든 직장 생활이든 순간순간에 집중하며 기뻐할 때는 기뻐하고 다시 열심히 달려야 할 때는 그저 묵묵히 달리고 싶다. 불안감 때문에 성취의 기쁨을 일부러 억누르지도 않고, 오로지 현재에 충실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달리기를 해오며 그랬던 것처럼, 나 자신에게 좀더 집중하다 보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달리기 덕분에 나는 계속 나아가는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