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는 안 된단 생각이 드는 순간
30대 백수의 러닝 기록(11): 달리기도 생활도, 기본으로 돌아갈 시간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요즘 들어 매일 하는 생각이다. 오후 가까운 느즈막에 비몽사몽 잠에서 깰 때, 이미 다 가버린 오전을 아쉬워하며 인스턴트 컵밥으로 대충 아점을 때울 때, 면접 본 기업에서 연락이 없다는 초조함에 안절부절 아무것도 못할 때. 일상을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 될 것 같은 위기감이 강하게 밀려온다.
작년 가을부터 백수가 된 나. 이왕이면 공백기를 건강히 보내고 싶은 마음에 달리기를 시작했고, 나름 규칙적인 백수 라이프를 이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그때는 자발적 백수였지만 지금은 일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잘 안 되는 타의적 백수랄까. 자발적 백수 기간을 끝내고 오랜만에 취업 활동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그다지였다. 몇 번의 불합격이 반복되니 점점 불안했다. '또 떨어졌네. 공백기가 더 길어지면 안 되는데 어떡하지.'
건강한 백수고 뭐고 언제부턴가는 그냥 취업, 취업, 취업만 바라보게 됐다. 마감이 얼마 안 남은 공고에 이력서를 내려고 허겁지겁하다 보니 달리기 같은 건 사치였고, 늦은 시간까지 서류와 포트폴리오를 검토하느라 수면패턴도 엉망이 됐다. 밥을 차려 먹을 시간도 아까워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날도 늘었고, 스트레스로 달고 열량 높은 간식을 마구 먹은 적도 많다. 건강이니 여유니 하는 건 다 제쳐두고 취업밖에 안 보이는 경주마 상태로 달리기만 했다. 아, 이것도 다른 의미로는 달리기인가.
숨 가쁘게 이력서를 제출하고 나니 시간은 어느새 밤 10시 무렵. 깜깜해진 창밖 풍경과 내 방을 차례로 돌아보니 허망함이 밀려왔다. 싱크대에 쌓인 컵라면 그릇과 이리저리 널린 과자 봉지, 각성하기 위해 있는 대로 위장에 쏟아부은 커피까지. 반면 휴대폰에 기록된 하루치 걸음 수는 겨우 70 언저리였다. 종일 외출 한 번 없이 6평 원룸에서 노트북만 봤으니 당연하겠지만 씁쓸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몇 장 서류로 취업 시장에서 나를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몸과 마음을 얼마나 갉아먹은 걸까? '진짜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그런 생각이 들 땐 역시 달리기다. 한순간도 나를 돌보지 못한 하루였지만 그래도 달리기가 있으니까,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건강한 행동이 이거라도 남아 있어 다행이라는 마음이 든다.
그렇게 짬을 내 러닝화를 신고 공원으로 향했다. 본격적으로 달리기 전에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사실 처음 달리기를 접했을 때에는 준비운동을 하지 않았다. 준비운동 없이 냅다 달리면 다칠 위험이 높다고 여러 유튜버와 블로거가 주의를 주었지만, 과거의 나는 잘 듣지 않았다. 10분밖에 안 걸리는 간단한 스트레칭이 마냥 귀찮았고, 그저 달리는 기분만 만끽하고 싶었다. 그 결과 발목과 무릎에 욱신거리는 통증을 얻었다. 한발 한발 달릴 때마다 멀쩡하던 관절들이 찌릿찌릿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달리기 전과 후에 스트레칭을 했고, 신기하게도 통증은 어느 순간 수그러들었다.
건강하게 잘 달리고 싶다면 일단 기본부터 지켜야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꼼꼼히 준비운동 하기, 러닝 양말 챙겨 신기, 달릴 때 바른 자세 유지하기, 근육 마사지하기 등등. 이런 기본들이 내 몸을 다치지 않게 보호해주는구나. 귀찮다고 대충 무시하고 넘길 게 아니구나.' 그때부터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거나, 하고자 하는 일들이 잘 풀리지 않으면 기본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려 한다. 나는 지금 어떤 기본을 놓치고 있는 걸까?
이제는 습관이 된 준비운동을 살뜰히 한 다음,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습한 여름밤의 공원을 달리며 그동안 취업을 핑계로 내 삶의 기본을 너무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하려는 것도 결국은 삶을 더 잘 만들어나가기 위해서인데 말이다. 그러니 이번에도 다시 기본부터 생각해보려고 한다. 내 손으로 영양가 있게 밥 차려 먹기, 아침저녁으로 방 안에 먼지 닦기, 그날 나온 설거지거리는 그날 처리하기, 다 마른빨래는 바로 개기, 구겨진 티셔츠는 단정하게 다려 입기 등등. 달리기도 삶도, 기본적인 것들에 충실해야 더 좋은 곳으로 달려갈 수 있다고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