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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Mar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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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투랑가단다아사나

기본을 지키는 것은 어렵다. 2018 서울디자인 페스티벌 배달의민족 부스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같은 일'을 꾸준히 반복하는 일은 숭고한 일이지만 '같은  방식'을 되풀이하는 것은 재미없으니까요.



그렇다. 무릇 가장 숭고하고도 힘든 일이란 같은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환승을 가장 빨리 할 수 있는 플랫폼에서 같은 열차를 탄다. 나는 2호선을 타고 다니는데 아침의 그 초록색만 봐도 숨이 막힐 것 같을 때가 있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는 내게 회사는 다른 방식을 요구한다. 새로 온 팀장님은 열정에 넘쳐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만들자고 했다.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만들 줄 알면 여기로 출근하지 않았겠죠'라고 (속으로)비난했다.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힘든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지겹다. 지금 하고 있는 반복적인 행위에 조금만 지각을 둔다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라는 소위 현타가 온다. 또, 익숙해지면 더 잘 해낼 방법이 없다. 2호선을 어떻게 더 잘 탈 수 있을까. 2호선을 운전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더 고역인 건 반복하는 건 무엇보다 많은 노력을 요구한다. 지겨움과 귀찮음을 이겨내 봤자 결과물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루틴이 사라져 버리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요가 중에 차투랑가단다아사나가 그렇다. 줄여서 차투랑가라도 부르는 이 동작은 요가의 동작(아사나) 사이를 연결하는 빈야사 중에 한 단계이다.



쉽게 설명하면 프랭크 자세에서 천천히 팔굽혀 펴기 자세로 내려온다. 배나 골반이 매트에 먼저 닿지 않고 팔뚝의 힘으로 내려오는 플로우를 말한다.


요가를 처음 시작할 땐 근력이 부족해 무릎을 땅에 두는 걸 권장한다. 무릎을 땅에 두어도 상체에 힘이 고스란히 팔에 전해지기에 쉬운 자세가 아니다. 팔도 팔 굽혀 펴기를 할때처럼 바깥쪽으로 굽히는 것이 아니라 옆구리에 붙이면서 직각이 되게끔 굽힌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팔과 가슴 근육이 남성보다 부족하기에 이 동작이 유독 어렵다.


이렇게 어려운 동작이 기본 동작이다. 동작과 동작을 잇는 빈야사에서 필수기 때문에 보통 60분의 아쉬탕가 수업에서 적게는 10번 많게는 3-40번을 해야한다.


처음에는 차투랑가 동작이 요가 수업에서 과도하게 힘을 뺀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자세 사이에 끼어든 이 무자비한 동작을 하다 매트에 얼굴을 박고 쓰러진 적도 많다. 하지만 차투랑가를 완벽하게 할 수 있다면 자세의 안정성은 높아진다. 여러 자세를 연습하다 보면 자연스레 차투랑가를 할 수 있는 근육이 만들어진다. 나는 요가에서 한 단계 나아감을 판단하는 기준이 바로 이 차투랑가라고 생각한다. 기본기가 갖추어져 더 단단해진 몸은 비로소 더 넓은 요가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지금도 차투랑가가 쉬운 동작은 아니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떠 수련을 할 때, 밤 사이 모아진 기운으로 완벽한 차투랑가 동작을 하게 되면 그 앞뒤의 난해한 자세들이 수월하게 이어진다. 일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수면시간, 식습관, 마음가짐과 같은 기본이 갖추어지게 되면 업무와 학업, 사람과의 관계가 조금 더 유연하게 흘러갈 수 있다. 내 삶 사이사이를 잇는 단단함을 위해 오늘도 기본으로 돌아가 다시 차투랑가를 연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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