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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ul 23. 2018

강박적 혹은 과시적 취미

아쉬탕가

 '나는 자기 취미가 확실한 사람이 좋아' 라고 외치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내 연애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대부분의 남자친구들은 '술'과 '축구'밖에 몰랐다. 축구를 하고 술을 마시러가는 게 주말의 전부였다. 그런 남자친구들을 따라 서울 곳곳의 풋살장을 다녔다. 제발 축구와 술말고 다른 취미가 있는 사람을 만나길 바랬고, 소개팅 자리에서 목공이 취미라는 남자에게 푹 빠졌다.

 그런데 그는 달마다 취미가 바뀌는 남자였다. 목공을 하다 지겨워져 테니스를 배웠다. 그러다 갑자기 고프로를 사서 유투브를 하겠다고 했다. 무언가를 강박적으로 '해야한다'는 게 취미인 사람을 보며 취미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반문했다.


 사회가 일상에 활력을 더해주는 취미를 평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좋아한다? 그러면 적어도 드립세트를 갖춰놓고 품종에 따라 원두맛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영화가 취미라면 왓챠에 100개 이상의 평을 써야 취미로 인정해주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취미를 말하기가 점차 겁이난다.


 내 취미는 독서와 요가다. 서울 곳곳을 이사하며 구립 도서관 대출증을 훈장처럼 모았다. 운좋게도 지금 회사는 도서비가 무제한이다. 읽고 싶은 책을 무제한으로 구매하고 있다. 나에겐 최고의 복지! 주말에 느지막히 일어나 책 읽는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요가는 가장 정직한 운동이라 생각한다. 매트만큼의 공간에서 오로지 내 몸을 가지고 수련한다. 기구필라테스나 플라잉요가보단 전통요가를 즐겨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요가는 '아쉬탕가'.





 아쉬탕가는 정해진 시퀀스에 따라 연속된 동작을 하는데 익숙해지면 내 호흡에 따라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한 동작 씩 몸에 집중하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지고 온 몸이 땀에 흠뻑 젖는다. 내 몸에 대해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정말로 값지다. 아쉬탕가 동작 중에 '다운독' 이란 자세가 있다. 엉덩이를 높게 올리고 엎드려 뻗쳐 자세로 있는건데 요가에서는 이 동작이 쉬는 동작이다. 처음에는 벌서는 듯한 이 자세가 힘들었다. 익숙해지니 다운독 자세로 숨을 고르게 되었다. 땅 위에서 오로지 내 몸을 도구로 운동한 후의 '나마스떼' 인사는 숙연하고 경건해진다.


 솔직히 독서와 요가를 할 때조차도 조금 과시적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회사 복지카드로 책을 구매하면 그 목록을 구성원들에게 공유해야 한다. 모두가 신경쓰지 않지만 괜히 유시민 작가의 책을 뒤적거리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 와 함께 구매한다. 요즘 기분으로는 정말 딱 죽고싶은데 떡볶이는 먹고싶은 모순적인 감정이지만 괜히 내 마음을 들키는 것 같아 '역사의 역사'를 교묘히 앞에 끼어넣는 것이다. 요가도 마찬가지다. 어느순간 요가매트와 요가복 브랜드에 집착하고 옆자리에 앉은 요기니(같이 요가를 하는 사람)를 힐끔거린다.


 결국 '역사의 역사'는 열 페이지도 읽지 못했고 옆 사람을 힐끔거리다 내 중심이 무너져 그 날의 요가 수업은 완전히 망쳤다. 취미가 경쟁이 되는 순간 그 본질은 잃는다.




  아직 나를 일상의 고단함으로부터 구원해 줄 완벽한 취미는 발견하지 못했다. 혹은 내가 과시적으로 보이고 싶어 취미를 취미답지 못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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