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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Mar 21. 2021

[뚜벅뚜벅, 다시 제주] 우도 한 바퀴

(둘째 날 #02) 전기자전거 타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달리다

성산일출봉 해안가를 돌아보고 나니 우도 가는 배 시간이 애매해졌다. 한 시 배편을 타려고 했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어차피 근처에 둘러보고 싶은 가게가 있었으니 그다음 배편을 타기로 했다.

[제주 i]는 지도 앱에서 성산일출봉에서 성산항 가는 도보 길을 찾다가 발견한 작은 소품 가게다.

지난 제주 여행 때 아기자기하고 예쁜 독립 서점에 갔던 게 꽤나 좋은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에 이번 여행길 중간중간 비슷한 가게를 포함시켰다.

물론 욕심껏 가려면 며칠 더 묵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만 갈 테지만.

실내에는 기대했던 것보다 예쁜 게 너무 많았다.

마음 가는 대로라면 유리 모빌도 사고 싶고, 행잉 포스터도 사고 싶다.

갖고 싶고 선물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하지만 욕심을 내려두고 부피를 많이 차지하지 않으면서 방에 붙여둘 수 있는 엽서를 몇 장 골랐다.

그 외에 감귤 귀걸이와 컵 받침을 사고 계산하는데 가게 주인이 너무 눈에 익었다.

뻔한 드라마 대사처럼 물어볼 뻔했다.

"혹시 우리 만난 적 있지 않아요?"

간신히 말을 골라 물어봤다.

"혹시 서점도 운영하세요?"

주인은 웃으면서 여기도 책을 팔긴 하지만 따로 서점을 운영하진 않는다고 알려줬다.

"제가 종달리에서 간 서점에 계신 분이랑 정말 닮아서요."

내가 남자였다면 약간 작업 멘트 같았으려나.

아무튼 종달리의 [소심한 책방]이나 오늘 간 [제주 i]나 모두 예쁜 기억으로 남을 테다.




[제주 i]에서 행복한 기분으로 계산을 마치고 나오니 다시 배 시간이 촉박해졌다.

[제주 i]에서 성산포항까지 1.3km, 도보로 20분 거리인데 나는 무려 표를 사서 배에 타는 것까지 20분 내에 마쳐야 한다.

세상에, 예쁘다고 너무 신났었네.

숨을 헐떡이며 또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왜 맨날 시간을 촉박하게 일정을 짜느냔 말이야.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탓하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시간 맞춰 여객 터미널에 도착했다.

마스크 덕분에 반쯤 질식한 기분이 되어 급히 승선 신고서두 장과 신분증을 보여주고 배 표를 샀다.



배에 타니 멋진 조나단이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고 있다.

새를 좋아하는데 바다에 가면 역시 조나단이 제일 멋있다.

다른 갈매기들은 새우깡을 차지하려 배 주위를 열심히 맴도는데 이 조나단은 제일 멋진 포즈로 서서는 사람들한테 눈길도 안 준다.

배가 바닷물을 하얗게 부시며 나아간다.

2층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포말을 멍하니 보자니 첫날에 여행 코스에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 못 간 [아르떼 뮤지엄]이 생각난다.

코엑스 파도 영상을 만든 미디어 아트 기업 디스트릭트의 작품으로 꾸며진 [아르떼 뮤지엄]을 꼭 가고 싶었는데.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해외는 가지도 못하니까 다음 휴가에도 제주에 오면 된다고 마음을 달랜다.

우도까지는 배로 약 십분, 금세 도착한다.

출도하는 마지막 배편은 천진항과 하우목동항 두 곳 모두 17시 30분이다.

마지막 배를 놓치면 큰 일 날 것도 없지만 숙소비에 마음이 찢어질지도 모른다.

천진항 매표소 직원에 마지막 배 시간을 다시 한번 확인받고 자전거를 빌리러 간다.



첫날 식당에서 눈퉁이를 맞고 나서 허튼 데 돈 낭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만큼 항구에 바로 보이는 렌털 샵을 무작정 가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자고로 목 좋고 뜨내기 장사하는 곳에는 하이에나가 많은 법.

특히 바가지를 떠나 고장 난 자전거 잘못 빌려서 다치면 남은 여행이 엉망이 된다.

지도 앱에서 리뷰 확인이 필수다.

역시 항구에 바로 맞닿아 있는 렌털 샵들은 평점이 바닥을 긴다.

조금 동떨어진 곳에 평점 좋고 직접 겪어본 사람들의 리뷰가 눈에 띄는 [우도 플레이]로 향했다.

신분증을 맡기고 15,000원에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총 3시간 동안 전기자전거를 대여했다.

사장님이 친절한 곳이라는 리뷰를 믿고 왔는데 전기자전거 사용법과 안전상 주의 사항을 꼼꼼하게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우도 지도 한 장을 주며 경사가 가파른 구간과 섬 주민들 차량이 많아 주의해야 하는 구간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해주셨다.

세 시간 만에 우도를 다 돌 수 있을지 약간 걱정이었는데 안 멈추고 길을 따라 주욱 달리면 한두 시간 만에도 우도를 다 돌아볼 수 있다는 말에 자신감을 얻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빈백사에 도착했다.

이곳의 해변은 모래가 아닌 홍조단괴로 이뤄져 있다.

사진으로 볼 땐 그냥 좀 특이한 해변인가 보다 했는데 실제로 보니 일반 모래사장과는 달랐다.

실제로 홍조단괴 해빈은 아주 드물어서 천연기념물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우도의 해빈은 패사가 아닌 홍조사 도는 홍조단괴로 되어 있어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우도의 해빈을 이루는 홍조단괴의 직경은 1cm 내외부터 5~8cm 정도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우도의 해안가에 발달한 홍조단괴 해빈은 길이가 약 300m, 폭이 약 15m이며 이 지역에 분포하는 흑색의 현무암과 매우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우도 해안가에 서식하는 홍조류는 광합성을 하여 세포 혹은 세포 사이 벽에 탄산칼슘을 침전시키는 석회조류 중 하나로 보통 직경이 4~5cm이고 전체적으로는 구형이며 표면이 울퉁불퉁한 모습을 보여준다. 보통 홍조단괴의 내부 조직과 생식기관은 잘 보존되어 있디.
이국에서는 미국의 플로리다, 바하마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홍조단괴가 보고되고 있으며, 주로 암초 주변에서 관찰되고 있다.
하지만 우도에서와 같이 홍조단괴가 해빈의 주 구성 퇴적물을 이루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출처: 문화재청 국가 문화유산 포털 - 제주 우도 홍조단괴 해빈)

서빈 백사의 또 다른 인기 스타는 강아지였는데, 해변에서 일광욕을 하며 낮잠도 자고 사람들의 이쁨을 받으며 뛰어놀고 있었다.

어찌나 순한지 사진을 찍거나 쓰다듬거나 가만히 즐길 뿐이다.

이내 강아지는 서빈백사 근처 꽃밭에 가서 뛰어놀기 시작했다.

동네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돌보는 강아지인가?

건강하고 발랄한 게 예쁨을 많이 받고 자라나는 강아지 같았다.


자전거를 타고 시계 방향으로 도는데 돌담 너머 엄청나게 멜랑꼴리 한 집이 보였다.

듬성듬성한 돌담 사이로 보니 아무래도 폐가 같았기에 호기심에 낮은 돌담을 넘어 마당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살지 않은지 한참이 지난 듯 내부는 비바람에 잔뜩 삭아 있었다.




우도 북쪽에 위치한 망루에 도착했다. 조선시대 연기로 연락하던 통신시설인 망루 (봉수대)와 현대의 등대가 있다.

그 옆으로 돌탑과 어떤 건물의 터가 남아 있는데 어떤 목적으로 지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어느새 우도를 절반이나 돌았다.

조식만 먹고 열심히 돌아다녔더니 슬슬 배가 고프다.

망루 등대에서 얼마 안 가 [제주소품관]에 들러 우도 땅콩 초코찰떡파이를 하나 사서 먹고 나니 요기는 됐지만 아쉬웠다.

오늘 돌아다닐 생각만 했지 점심은 별 생각이 없었던 거다.

성산일출봉이나 우도나 관광지라 딱히 맛집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조식도 배부르게 먹었더니 자연스럽게 점심은 건너뛴 상황.

가다가 괜찮은 데가 있으면 먹고 아님 말고.

길을 따라 달리다가 먼저 눈에 띈 건 강아지 한 마리였다.

머리 크고 다리 짧고 보기 드물게 못생긴 강아지라는 생각에 빤히 보게 됐는데 그 강아지가 쫄래쫄래 와서는 반기는 게 아닌가.

둘러보니 해산물을 파는 집인데 여행책자에서 본 기억이 났다.

멍게는 좋아하지만 뿔소라는 관심 없는데.

어차피 배도 고프겠다 우도 곳곳에 놓인 뿔소라 조형물을 보다 보니 궁금해지기도 해서 혼자 먹기 적당한 양으로 줄 수 있는지 여쭤봤다.

다행히 할머니, 할아버지는 종종 혼자 오는 손님을 봤는지 2만 원어치 모둠으로 해주겠다고 하셨다.

생각보다 적은데?

내가 좋아하는 멍게가 조금밖에 없어서 그런 건지 하여간 좀 비싸게 느껴졌다.

아무렴 어떤가.

바다 보며 먹는 것도 운치 있고 좋은데.

다만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바람을 맞으며 달린 탓에 가만 앉아서 회를 먹으니 금세 추워졌다.

주섬주섬 패딩 조끼와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회를 마저 먹고는 다시 출발했다.



추워도 아이스크림은 포기할 수 없다.

내심 우도 땅콩 아이스크림이 궁금했기 때문에 [지미스]에서 아이스크림을 5,000원에 샀다.

역시 관광지 물가다.

검멀레해변으로 가는 길에 땅콩 아이스크림 집이 굉장히 밀집해 있다.

서로 원조라고 주장하는 모양새였는데 초행자는 알 길이 없다. 그중에 적당히 갈 뿐.

검멀레 해변으로 내려가 대충 주저앉아 파도를 보며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아이스크림은 고소하지만 역시 5,000원은 비싸다.

검멀레해변까지 왔으니 우도는 거의 다 돈 셈인데 아쉬움이 남는다.

다음에는 하루를 잡고 천천히 구석구석 돌아보고 싶다.

쇠머리오름에도 올라보고 우도 안쪽 마을도 둘러보고 싶다.

우도를 떠날 생각에 엉덩이가 무거워진다.



이제 다시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는 길.

경사가 가파른 곳이라 조심조심 너무 빠르지 않게 내려간다.

사고가 꽤 잦은 곳이라는데 그저 평화로운 풍경이다.

[우도 플레이]에 자전거를 반납하고 다시 청진항으로 걸어간다.

다섯 시에 딱 맞춰 도착해서 아직 배가 출발하기까지는 삼십 분이 남았다.

천천히 천진항 근처를 돌아본다.




우도를 떠나오는 길.

안녕.

속으로 인사를 건네고 배에 오른다.


all photos taken with the X10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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