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베를린 장벽 무너지다

독일 통일 이야기 (3)

by 하성식

베를린 장벽 무너지다.


1989년 11월 9일 저녁, 동독 정부 대변인 귄터 샤봅스키가 내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국외여행 자유화 규정이 담고 있는 내용에 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기자회견은 TV와 라디오를 통해 생중계가 되었다. 새 규정에 따르면, 국외여행에 관한 종전의 제약조건들이 없어지고, 해외장기 체류에 대한 허가도 제한없이 발급될 것이었다. 이 새 규정의 시행에 관한 공식발표는 다음 날, 즉 11월 10일 오전 4시를 기해 행해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 이 규정이 적용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샤봅스키는 잠시 머뭇거린 후, 지금부터 당장 적용된다고 발표를 해 버린다.

보른홀머 검문소로 몰려든 동독시민들

TV와 라디오를 통해 샤봅스키의 회견내용을 접한 동독인들이 서베를린으로 통하는 국경 검문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국경이 개방된 곳은 보른홀머街에 면해있던 국경 검문소였다. 시각은 저녁 9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당시 검문소의 선임 장교였던 하랄트 예거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당시 그토록 다급했던 상황에서 상부의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적절한 지시를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수 많은 인파가 갑자기 몰려왔고, 그 혼란의 와중에서 사상자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자 그는 자신의 판단 아래 국경을 개방하게 된다.


2009년 80세인 귄터 샤봅스키는 한 인터뷰를 통해 당시 그렇게 발표를 해 버린데 대해, 자신은 다만 역사의 도구로 쓰여졌다는 말로 얼버무리고, 유혈사태없이 장벽이 무너진데 대해서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베를린 장벽이 예상치 못한 시점에 갑자기 붕괴되어 버린 것에 대한 정황은 한가지 더 있다. 장벽이 무너지던 당시 서독 총리 헬무트 콜은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 중이었고, 장벽이 붕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급거 귀국하게 된다.

1961년 만들어진 후 28년동안 동서독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마침내 무너진 것이다. 베를린 장벽을 붕괴시킨 것은 동서독 시민들이 들고있던 곡괭이였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지만, 결국 장벽을 무너뜨린 것은 소련의 변화, 폴란드 연대노조의 승리와 의회 장악, 헝가리 사회주의 정권 내부의 자체 개혁을 통한 개방의 진전 그리고 동독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로 행해졌던 민주화 요구 시위를 통한 점진적인 변화였다고 할 수 있다.


1956년 헝가리와 1968년 체코의 민주화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했던 소련이 베를린 장벽의 붕괴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는(사실은 관심을 기울일만한 여력도 없었지만), 당시 고르바초프의 참모 중 한 명이었던 아나톨리 세르게이에비치 체르냐예프의 일기에 잘 드러나 있다. 며칠 전 20 년만에 공개된 일기에서 그는, 장벽이 붕괴된 다음 날인 11월 10일 아침 배달된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의 1면 머리기사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아니라, “오늘은 소련 경찰의 날”이었다고 적고 있다. 소련은 1989년 7월 7일 루마니아 부카레스트에서 열렸던 바르샤바 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 이미 브레즈네프 독트린(한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위협은 전체 사회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군사적 개입을 하겠다는 선언)을 폐기한다는 내용을 천명한 바 있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독일 통일의 시간표는 숨가픈 속도로 채워지게 된다. 이후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들을 요약해 보면,


- 11월 15일 고르바초프는 동서독 통일은 독일 내부의 문제이며, 어떤 결과든 소련은 이를 수용할 것이라고 발표

- 11월 20일 헬무트 콜 총리의 동서독 연합 10개안 발표

- 12월 1일 독일통합사회당(SED)의 통치 권한을 동독 인민의회가 헌법에서 삭제 결정.

- 12월 3일 에곤 크렌츠(호네커의 후임자) 이하 독일통합사회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원 전원 사임 결정

- 12월 9일 라이프찌히 월요시위에서 처음으로 “우리는 하나의 인민(Wir sind ein Volk)”이라는 구호 등장

- 12월 16일 독일통합사회당(SED)이 민주사회당(PDS)으로 개명.

- 12월 19일 콜 총리 동독 방문. 드레스덴 성모마리아교회 앞에서 동서독이 힘을 합쳐 노력한다면 동독이 앞으로 „번영하는 땅“이 될 것이라고 연설함으로써 동독 인민들의 기대를 한껏 고조시킴(3개월 후 있을 동독 선거에서 기민당이 승리하기 위한 책략이었다는 비난을 받게 됨)

- 1990년 3월 18일 동독 인민의회가 처음으로 자유선거에 의해 선출됨. 기민당(CDU) 승리

- 5월 5일 (2 + 4) 회담 개최

- 5월 18일 동서독 통화, 경제, 사회통합에 서명

- 7월 1일 1:1 화폐통합 실시

- 7월 12일 동독지역 5개주로 재편(서독 11주와 합해서 총 16개의 주가 됨)

- 8월 23일 인민의회가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의 헌법에 편입되는 것을 의결

- 9월 13일 소련과 불가침협정 체결. 94년까지 소련 군대 철수하고, 철수 비용은 독일이 부담

- 10월 3일 독일 통일.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2009년 11월 9일) 기념식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독일 통일은 완성되지 않았으며, 구동독과 구서독지역간의 격차가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역설했다.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리고 1조 3000억 유로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지만, 여전히 양 지역간의 경제 격차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20년전 헬무트 콜 총리가 드레스덴에서 했던 연설에 한껏 고무되었던 많은 동독인들은 이제 옛 동독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당시 동독 민주화 운동의 주역들이 우려했던 바대로, 이데올로기의 지배가 끝나고 이제 돈의 지배가 시작된 것일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 라이프찌히의 월요시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