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작가인 상태로 몇 년 간 책을 쓰다 보면 얻을 수 있는 희한한 이점이 하나 있다. 바로 주변 사람들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곁에 두지 않는 게 좋은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 이번 내용은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 아주 많이 개입되어 있으므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정도로 보면 좋겠다.
오랜 시간 수험생활을 하거나, 나름대로 열심히 사업을 하지만 잘 풀리는 사람들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아픔뿐만 아니라 외부의 모기 같은 스피커들과도 싸워야 하는 고통을 겪는다.
“아직도 공부하니? 다른 애들은 다 취업해서 돈 벌고 있는데 언제까지 그럴 거야?”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러고 있어?” 등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걱정이 돼서 그런다고 말문을 열지만, 이들 중 결국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은 없다. 딱히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게 그 사람에게도, 자신에게도 좋다. 말을 잠시 아끼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이 몇 번이고 했을 이야기를 하지 않는 당신은 배려 있는 사람으로 생각될 것이며, 괜한 소리를 해서 척을 질 일도 없으니 말이다.
무명작가인 나 역시 위와 같은 말들을 들은 적이 있다. 가만히 지켜보며 응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비아냥거리며 그 상황을 즐기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하나 참 안타까운 사실은 무명작가의 입장에선 응원하는 사람보다도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가장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글을 더 잘 쓰게 되는 건 아니지만,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있으면 확실히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나름대로 열심히 썼지만 잘 안 되니까 스스로 짜증 나고 답답한데, 이런 사람들은 “아직도 쓰냐?”라며 여기에 화를 돋우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내 경험상 곁에 두지 않는 게 좋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그저 당신이 잘 안 풀리는 상황을 즐길 뿐이다.
나도 당연히 이런 경험이 있다. 처음엔 ‘뭐 이런 경우가 있지?’라며 화가 나기도 했으나 지금은 곁에 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그냥 자리를 금방 일어선다. 앙갚음을 할 마음도, 능력도 없지만 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게 내 인생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한 건 <노자의 도덕경>에 있다는 다음과 같은 내용 때문이었다.
“굳이 복수하지 마라. 썩은 과일은 알아서 떨어진다. 누군가 당신에게 해악을 끼치려거든 굳이 앙갚음하려 들지 말고 강가에 고요히 앉아서 강물을 바라봐라. 그럼 머지않아 그의 시체가 떠내려올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 더 와닿을 것 같다. ‘과연 저런 행동을 나에게만 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의 태도는 잘 변하지 않는다. 여기서 비아냥거리는 사람은 저기 가서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위로가 크게 안 되는 이야긴지도 모른다. 흔히 하는 이야기인 인생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지만, 오랜 시간 해온 일에서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면 외부에서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이미 당사자는 미래를 결정해 놨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쓰는 사람에게는 이런 경험도 하나의 콘텐츠가 된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느낀 화가 난다는 감정도 한 발만 물러서면 묘사하기 좋은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