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국수 두 그릇의 추억
크게 믿진 않지만 심리 실험에서도 따뜻한 물이 담긴 컵을 쥐고 있는 사람이 차가운 물이 담긴 컵을 쥐고 있는 사람보다 긍정적인 대답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온도 차이가 응답에 영향을 준 것입니다.
어떤 책에서 보았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어떤 사람은 당신이 지난 일주일간 먹은 음식을 말해준다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먹는 음식을 통해 신분, 생활 습관 등을 추측하는 것입니다.
이런 음식은 타인에게 있어선 우리를 파악하는 단서가 되지만, 우리 자신에게는 '추억'을 소환하는 장치가 되기도 합니다.
저희 부부에게는 얼마 전 먹은 '잔치국수'가 그랬습니다. 분명 잔치국수는 흔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저희가 사는 집 근처엔 포장마차 형태로 잔치국수와 우동을 판매하는 작은 가게가 있습니다. 다시 추워진 날씨에 저희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갔습니다. 이제는 이곳이 익숙해 좁은 자리와 알아서 빨리 먹고 나가는 분위기가 낯설지 않지만 저와 아내의 연애 땐 그러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처음 그곳에 갔을 땐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이 있어 말도 잘 안 할 때였습니다. 자리에 앉으니 괜히 그때 생각이 났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내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 냉랭한 분위기로 들어간 그곳에서 주문한 잔치국수 두 그릇에 마음이 녹아 즐거운 마음으로 나와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1년 전쯤 상황은 이랬습니다.
대화를 하다 기분이 나빠진 우리는 이곳 근처에서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않고 추운 바람까지 맞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리 눈앞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잔치국수가 보였습니다. 테이블도 몇 개 없는 작은 가게였고, 그곳엔 뜨끈한 국물이 담긴 그릇을 잡고 언 손을 녹이며 '후후' 국물을 불어 먹는 아저씨가 보였죠.
우리는 서로 배고프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 그곳에 가 잔치국수를 주문했습니다. 나란히 앉아 먹으니 몸도 녹으며 조금은 불편했던 감정도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식사를 열심히 했습니다. 어찌나 열심히 먹었는지, 저희를 바라본 한 아저씨는 원래 국수를 먹을 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먹고 싶어 졌다며 저희에게 말했으니까요. 좁은 테이블에 불편할 수도 있었지만,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미안한 마음에 당시 아내에게 가까이 가기 민망했는데 가까이 있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 덕분인지 식사를 마칠 무렵에는 서로 미안하다고 말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나이가 들수록 경험한 것이 많아 일상에서 흥미와 재미를 느낄 일이 적어진다고 하던데, 달리 생각해 보면 그만큼 누군가와 쌓는 추억은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이 우리가 특별할 것 없다고 느끼는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