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실을 맺기 위해 투입해야 할 노력을 회피하는 나
예전에 우리 아버지께서 내게 했던 이야기 중 하나가 일이 끝나기도 전에 샴페인을 먼저 터뜨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진즉 내가 단발성 결과에 만족하고 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들뜨지 말고 기다리며 계속 나아가자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발단은 지금까지 글을 써오며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제안들을 받은 것에서 시작됐다. 2014년 첫 책을 출간한 후 지난 7월 9번째 책을 냈지만 그전까지 누군가 나를 '작가'로 생각하고 연락을 해온 일은 거의 없었다. 연락 자체도 별로 없었기에 내 글과 관련된 연락을 하는 분들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다 최근 글과 관련된 제안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제안은 말 그대로 제안이고, 이걸 받아서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결과물을 낼 것인가는 아예 다른 차원의 일이다. 그런데 나는 그 제안을 받은 것 자체가 기쁜 나머지 앞으로 해야 할 것들에 집중하지 않고 제안받은 일 자체에 더 많은 의의를 두고 말았다. 이런 모습은 연휴가 끝난 후 머릿속으로 정해둔 계획을 이행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당연히 나도 이런 모습이 싫고 개선하고 싶은데 잊을만하면 이런 일이 생기니 왜 이럴까 생각을 해봤다. 정말 너무 좋아서 그랬을까? 아니었다. 나는 제안을 받은 이후 해야 할 일에서 수반되는 '고통'은 감내할 자신이 없고 그저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답만 하면 되는(감내해야 할 일이 없는) 제안에 대한 응답만을 즐기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 '누가 내게 이런 제안을 해왔다. 역시 난 잘하고 있어.'라며 스스로 위안만 삼고 그 이상은 나아갈 생각이 없는 게 내 모습이었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내가 보낸 과거 시간들의 결과물이다. 얼마 없는 제안을 앞두고 지금처럼 제안 이후 해야 할 일에서 오는 고통을 감내할 자신이 없다면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제안도 볼 일이 없을 것이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에 쓰는 다소 한심한 나의 모습이지만 인정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기에 기록해 본다.